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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백만 Sep 14. 2022

어른 동화

도토리

 시골 마을에 다람쥐 가족이 살고 있었다. 아빠 다람쥐는 일하기 싫어하고 매일 놀기만 좋아했다. 할 수 없이 아빠를 대신해 엄마 다람쥐가 열심히 먹이를 구하려 다녀야 했다. 

 엄마 다람쥐는 나무 위 열매를 따러 분주히 움직이느라 손톱 발톱이 갈라졌고 나뭇가지에 할퀴어 온몸이 상처 투성이었다. 첫째 딸과 둘째 아들 다람쥐는 엄마 다람쥐가 가져다준 도토리 밤, 버섯 등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그런데 어느 날 산에 불이 나고 말았다. 불은 밤나무, 잣나무를 태웠고 버섯과 흙 속에 있는 곤충까지 태워버렸다. 다람쥐 식구는 뜨거운 불을 피해 정신없이 도망쳤다. 뜨거운 불은 산 전체를 통째로 태워버렸다. 푸릇한 산은 어느새 검은 재로 변해버렸다. 


 다람쥐 가족은 집을 잃었고 그동안 모았던 재산도 다 잃었다. 울고 있는 엄마 다람쥐를 위로하며 첫째 딸이 먹을 걸 찾으러 나섰다. 

 첫째 다람쥐는 들판에 나갔다. 들판에는 추수 끝나고 떨어진 쌀알들이 떨어져 있었다. 고소하게 잘 익은 쌀을 보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첫째는 부지런히 쌀알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작은 손으로 쌀을 주워 입안 가득 물었다. 볼이 터질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하늘 위 새들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첫째 다람쥐는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새들에게 잡히면 죽을지 모른다. 다람쥐는 구석에 몸을 숨겼다. 다행히 새는 그냥 지나쳐 갔다. 새가 떠난 것을 본 첫째는 다시 나와 쌀을 줍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쌀을 모으는데 저 멀리서 번뜩이는 뭔가가 보였다. 들고양이였다. 들고양이가 첫째를 향해 몸을 낮추고 공격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엄마야!”     


 첫째는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고양이한테 잡히면 바로 목덜미를 물려 그 자리에서 즉사할지 모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짧은 다리를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속도가 나지 않았다.     


“제발!”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너무 힘들어 이대로 포기하고 싶었다. 그래도 뛰어야 했다. 굶고 있을 가족들을 생각해 뛰고 또 뛰었다. 


 얼마나 뛰었을까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 가족들이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첫째는 모아 온 쌀알을 가족들 앞에 꺼내 놓았다. 엄마도 아빠도 둘째 동생도 쌀알을 맛있게 먹었다. 그 모습을 보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다음날 첫째는 집일 짓기 시작했다. 네 가족이 함께 쉴 집이 필요했다. 첫째는 잠도 자지 않고 집을 지었다. 나이가 든 아빠 다람쥐는 하루 종일 누워 잠을 잤고 엄마 다람쥐는 젊었을 때 너무 일을 많이 해 몸이 아파 집을 지을 수가 없었다. 이제 성인이 된 첫째 다람쥐는 엄마 다람쥐를 보면 한숨이 나왔다. 자신도 이렇게 일만 하다가는 엄마 다람쥐처럼 아파서 병이 들 것 같았다. 첫째는 동생 다람쥐에게 부탁을 했다.     


“너도 이제 다 컸으니까 나 좀 도와줘.”     


둘째 다람쥐는 누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세상은 너무 무서워.”     


둘째 다람쥐는 엄마 다람쥐 뒤에 숨어서 첫째가 가져온 쌀알을 먹기만 할 뿐이었다.     


“첫째야, 둘째는 몸이 약하잖아.”     


 엄마가 둘째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둘째는 태어날 때 남들보다 작게 태어났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둘째를 키우면서 흔한 감기만 걸려도 밤을 새우며 둘째를 간호했다. 지금은 누구보다 건강하지만, 아직도 엄마 눈에는 아픈 아기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집을 짓고 먹을 것을 구해오는 건 첫째 혼자서 해야 했다. 낮에는 곡식을 구해오고 밤에는 집을 짓느라 첫째는 너무 피곤했다. 그렇게 꼬박 한 달 만에 작지만 아늑한 집이 완성되었다.     


“그만 쉬고 싶어.”     


지친 첫째가 엄마에게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둘째 다람쥐가 여자 친구라면서 처음 보는 다람쥐를 데리고 왔다. 이제 식구가 한 명 더 늘어난 것이다. 첫째는 예전보다 더 열심히 먹을 것을 구해와야 했다.     


“엄마 나 분가시켜줘.”     


어느 날 둘째가 폭탄선언을 했다. 엄마, 아빠 다람쥐는 집을 지어 줄 힘이 없었다. 모아둔 식량도 없었다.     


“첫째야, 둘째가 결혼을 시켜달라니 어쩌겠니. 네가 집 하나만 지어줘라.”     


첫째는 기가 막혔다. 결혼을 할 거면 자신이 직접 집을 지은면 되지 왜 그걸 지어 달라고 요구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집을 지을지 모르잖아. 몰라 분가시켜줘.”     


둘째는 매일 엄마, 아빠를 괴롭혔다. 첫째는 그런 둘째를 보며 화를 냈다.     


"네가 해. 너는 이제 어른이야. 도대체 무슨 짓이야!”     

“난 원래 못났어. 그러니까 잘난 너는 상관하지 마!”     


둘째는 분가시켜달라고 매일 엄마, 아빠를 졸랐고 늙고 병든 엄마, 아빠는 집을 지어줄 힘이 없었다.     


“첫째야! 미안하지만 네가 한 번만 도와줘라!”     

“엄마! 이건 아니잖아.”     

“어쩌겠니. 살겠다는데 네가 한번 도와줘라.”     


 첫째는 엄마의 부탁에 할 수 없이 동생 집을 짓기 시작했다. 다 큰 동생이 이런 식으로 민폐를 끼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집을 짓는 내내 화가 났지만, 그대로 꾹 참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작고 아늑한 집 한 채가 완성되었다. 동생 부부는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했다. 첫째는 집을 지어주면 모든 게 끝이 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동생 부부는 매일 엄마에게 달려와 먹을 것을 가져갔다. 스스로 먹이를 구할 생각이 없었다.     


“엄마! 왜 계속 동생 부부한테 먹이를 주는 거야!”     

“네가 봐줘. 쟤네들이 능력이 없잖아.”     


매일 동생 부부에게 먹이를 퍼 주는 엄마에게 불평을 하면 돌아오는 말을 늘 똑같았다.     

첫째는 점점 화가 났다. 고양이를 피해, 개를 피해, 새를 피해 목숨을 걸고 먹이를 구해오면 동생 부부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가져온 음식을 몽땅 가져갔다. 시간이 흘러 동생 부부에게 조카가 태어났고 첫째는 두 배로 더 열심히 먹이를 구해와야 했다.     


 어느 날 첫째는 생각했다. 이 생활이 끝날 것 같지 않다고... 이렇게 살다간 정말 고양이나 개한테 잡혀 먹히거나, 일하다 지쳐 쓰러져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나 이제 독립할래. 나 혼자 살 거야!”     

“어머, 네가 나가버리면 우리는 어떡하니. 너만 생각하다니 이기적인 거 아니야? 못됐어.”     


 첫째는 서운했다. 이제껏 열심히 일했는데 못됐다니 이기적이라니...     

첫째는 밤새 울었다. 자신을 키워준 엄마를 생각하면 집을 나가면 안 될 것 같았지만, 동생 부부만 아끼는 엄마를 생각하니 속상하고 서운했다. 무엇보다 동생 부부가 너무 싫었다.     


그렇게 첫째는 엄마 몰래 집을 나왔다. 멀리 아주 멀리 도망쳐 나왔다. 가끔 엄마 아빠가 보고 싶으면 몰래 찾아가 나무 뒤에 숨어서 지켜보곤 했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가긴 싫었다. 이대로 혼자가 좋았다. 그게 살 길이었으니까.     


가족이라는 이름에 갇혀 희생을 강요당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억울하고 힘들지만 벗어날 수 없는 이름 가족.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오는 것에 대한 용기와
가족을 버렸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용기를 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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