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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화 Jun 21. 2020

[고복례 배추김치 (feat 청각)]

하교 후 빈 집에서 떡볶이나 김치볶음밥을 해 먹으며 친구들과 허기를 달래던 중학교 시절. 베프로 지내던 나와 친구들에게 어린 동생 한 둘은 필수였고 부모님들은 맞벌이나 간단한 부업으로 대부분 집이 비어있었다. 동생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반겨줄 엄마가 없는 집은 텅 빈 외로움 그 자체였다.


외로움이 허기를 낳았을까? 비슷한 형편의 나와 친구들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그렇게 요리를 해댔다. 요리라고 해봐야 라면, 짜장라면, 떡볶이, 김치볶음밥 정도가 다 였지만 초5 때 서니 사이드 업을 마스터한 내공 있는 장녀들에겐 각자 내 멋대로 레시피가 있었고  같은 메뉴라도 누구 집에서 해 먹느냐에 따라 늘 새롭게 맛있었다. 그맘때쯤 친구는 데려와도 가스불은 켜지 말라던 엄마의 당부가 시들해졌다. 친구들과 해 먹는 요리로 동생까지 한 끼 때울 수 있게 되니 엄마는 밥이 가득 채워진 전기밥솥을 항상 보온으로 해놓고 출근했다. 부디 배고프진 말아라. 엄마 마음을 가득 담은 전기밥솥을...


엄마의 바람대로 우린 굶지 않았다. 일주일에 서너 번, 적어도 한 번은 서로의 집 주방에서 복작거렸다. 내 동생을 데리고 친구 집에 가기도 하고 친구가 동생을 데리고 우리 집에 오기를 여러 번. 같이 밥을  나눠 먹던 우리는 부모가 달랐지만 자매였고 남매였으니 가족과 다름없었다. 그러다 각자 잘하는 메뉴가 생기기 시작했다. 모든 요리에 능숙했던 나리는 단단한 양배추를 박자에 맞춰 예쁘게 썰고 양배추 떡볶이를 자주 만들어 줬다. 떡이나 어묵보다 양배추가 훨씬 많아 우리는 양볶이로 불렀는데 달달하게 졸여진 양배추가 얼마나 맛있던지 남은 국물에 밥을 비벼 먹으면 꿀맛이었다. 물 조절이 관건인 짜장라면은 새침했던 혜신이가 탑이었고, 유일하게 오빠가 있었던 윤영이네 집에서는 시험기간이라 일찍 마친 날 조금씩 돈을 보태 짜장면 탕수육 세트를 시켜먹었다. 그런 날은 동생과 설거지라는 근심을 중국집 그릇에 함께 넣어 내놓으면 그만이었다. 맛있게 잘 먹고 참 많이도 웃었던 그 시절의 나.


우리 집에서는 엄마가 가득해놓고 간 밥으로 김치볶음밥을 주로 해 먹었다. 엄마가 찌개용으로 모아둔 신김치 한 포기를 꺼내 가위로 반을 가르고 반만 쫑쫑쫑 썰어 팬에 가득 채운다. 불을 켜고 들기름을 살짝 부어 볶다가 밥을 넣어 비비고 엄마가 하던 대로 설탕을 뿌려 볶아주면 다들 맛있다고 잘 먹어주던 국화표 김치볶음밥 완성. 친구들은 내가 하는 김볶이 제일 맛있다며 쌍 따봉을 선물하곤 했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우리 할머니가 전라도 사람인데 원래 전라도 음식이 맛있다며 공을 할머니에게 돌리곤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 집 김치가 제일 정말 맛있었다. 김치냉장고 따위 없었지만 계절에 따라 알맞게 익어가는 김치 하나로 나와 친구들은 배불리 한 끼를 때울 수 있었고 배가 부르다 못해 터질 듯이 먹고 드러누워 가위바위보로 설거지 당번을 정했던 지난 날들. 지금도 김치볶음밥을 좋아하는 나지만 20년도 더 지난 그 시절의 김볶만큼 맛있지 않은 건 기분 탓일까?


그런데 친구들이 처음부터 우리 집 김치를 좋아했던 건 아니다. 사실 우리 집 김치를 처음 접한 친구들은 맛에 한 번 놀라고, 맛있다고 집어 먹다가 먹던 걸 멈추고『 으~ 이거 뭔데 지렁이가?』,『 야! 김치에 벌레 들어 있다』이렇게 물어보곤 했다. 그렇다. 우리 집 배추김치에는 벌레는 아니지만 벌레로 보일만한 특별한 것이 들어 있었는데 보기엔 별로이나 우리 집 김치 맛의 비법이라면 비법이 바로 그것이었다!


해조류인 '청각'을 김장김치 재료로 쓰는 할머니 덕분에 친구들은 경상도에 앉아서 전라도식 김치를 맛볼 수 있었다. 김치찌개를 끓이면 영락없이 벌레처럼 둥둥 떠다니는 청각 때문에 어릴 땐 나도 우리 집 김치를 싫어했었다. 하지만 익을수록 시원하고 깊은 맛을 내는 '청각'의 효과는 할머니가 일러준 대로 특별한 김치 맛을 선물해 줬고 훗날 김치볶음밥을 제일 맛있게 하던 나에게  '청각'이 든 김치는 나만 갖은 유일한 보물이 돼주었다.


곡성에서 할머니가 오는 날이면 문 밖에서부터 맛있는 냄새가 가득했다. 한 번에 오는 열차도 없는데 저 많은 보따리를 혼자 들고 왔을까 싶은 할머니를 보면 무작정 달려 나가 와락 안기에 바빴다. 그런 날은 냉장고가 가득 차서 저 안에 든 게 시원해 질까 걱정이 들 정도였다. 겨우 하룻밤 자고 할머니가 돌아가는 날이면 내가 하교할 때까지 기다렸다 나를 보고 가셨는데 엄마 없이 끼니를 때울 손녀들이 눈에 밟혔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마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면 새 밥을 지어놓고 기다렸던 할머니가 칭찬을 많이 해주셨는데 내가 요리를 잘한다고 엄마가 자랑을 한 덕분이었다. 그리고 서둘러 채비를 마친 할머니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 아가, 배추김치에 마늘이랑 청각이랑

많이 쪼사였응께 굶지 말고 맛나게 묵어~ 』


할머니의 걱정 어린 눈빛, 청각이 든 우리 집 배추김치, 전기밥솥 한가득 엄마가 마음을 눌러 담았을 뜨끈한 밥 덕분에 나는 그나마 덜 외로웠을 것이다.


어설프지만 모든 것이 완벽했던 그 시절, 서로의 집을 오가며 각자의 레시를 뽐내던 장녀들은 지금쯤 살림 9단이 되었을까? 나는 나이 들수록 친구들과 해 먹었던 그 시절 한 끼가 날로 그리워진다. 하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결혼 6년 차인 우리 집 김치냉장고에는 여전히 청각이 든 '고복례 표 청각 배추김치'가 한가득 있으니 마음이 허기진 어느 날 반포기 쫑쫑 썰어 들기름 살짝 붓고 달달 볶아 김치볶음밥을 해 먹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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