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계동
그날은, 새벽부터 집을 나서 거리를 배회하다 미술관 한구석에서 오후를 맞았다.
예약까지 하고 들어간 열람실이었지만 계획한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자리를 털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일찍부터 부산을 떨었기 때문인데, 배고픔보다는 빈 속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추위를 견딜 수 없었다.
미술관 뒷길 그늘 속에 나서자 몸속에 맺혀있던 한기가 요동쳤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할 틈도 없이 바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속을 풀어줄 뜨끈하고 훌훌한 국물이었다. 부담 없이 넘어갈 잘 퍼진 면발에 칼칼하고 서걱한 겉절이 정도 곁들이면 좋을 것 같았다. 오늘은 칼국수, 칼국수가 좋겠다.
현대미술관 뒷길에서 창덕궁까지에는 오래 유명하거나 새롭게 떠오르는 칼국수집이 몇 있지만, 1시께의 점심시간, 배를 채우러 나온 인근 직장인들과, 일부러 맛집을 찾아온 사람들로 어디든 만석이었다. 사람 생각 비슷하니 모두들 칼국수의 기분인가 보았다.
기다리는 끄트머리에 이름을 덧대고 서있기도, 붐빔 속에 테이블을 차지하고 몸을 욱여넣기도 탐탁지 않아 넘겨만 보고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몇 집 건너다 문득 오래전에 m과 함께 갔던 가게가 떠올랐다. 김가루 소복 얹은 맹숭한 칼국수, 서울서 잘 못 먹는 늙은 호박전에 고향 맛이 난다 좋아하던 어렸던 우리를 무심히 챙겨주던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 그곳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상호는 모르고 위치도 얼추였다. m과 갔던 것이 언제였는지도 정확히 모르겠다. 7년 전이었는지 10년 전이었는지, 지금은 몇 년에 한 번인 m과의 만남이 제법 빈번했던 때이니 그보다 더 오랜 일인지도 모른다.
분주하게 가게가 들고나는 길목인만큼 있을 법한 데에 새로운 가게, 공사 중인 건물이 나올 때마다 ‘없어졌나 보다’ 마음을 접어가며 오르락내리락 한참 서성거렸다. 도중에 인터넷에서 보았던 잠봉뵈르와 베이글을 파는 요즘의 명소들도 지나쳤다. 어디 즈음이라고는 알았어도 그게 계동인 줄은 몰랐기에 반갑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좋아 보였던 가게들, 물건들, 한국에 돌아가기만을 벼르게 했던 것들인데 막상 지금은 어쩐지 거북하다. 꾀죄죄한 꼴로 앞을 오가기가 부끄럽기도 하여 걸음을 빨리해 지나치기 바빴다.
슬슬 칼국수를 포기하려던 차에 눈에 띄게 한산해지는 언덕길 그늘 쪽, 굵은 파마머리의 부인 셋이 입맛을 다시며 건물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 위에 칼국수라 적힌 동그란 간판. 맞네 맞아. 집에 가서 라면이나 먹어야겠다고 풀이 죽어있었으면서 역시 오늘은 칼국수래도! 어깨를 빳빳이 펴고 달려들었다.
기억 속의 주인아저씨 대신 젊은 남자, 아마도 주인 부부의 아들인 듯한 이가 방금 나간 손님들의 잔해를 치우고 있었다. 그는 문간에 선 나를 뒤늦게 발견하고선, 아, 외마디를 외치고 재바르게 움직여 앉을 곳을 쓱싹쓱싹 닦아주었다. 혼자 온 내게는 그 당황의 기색과 이리 앉으시라는 별것 아닌 손짓이 살갑고 고마웠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니 안방에 해당하는 깊숙한 자리에 노년의 신사가 다섯, 그리고는 아무도 없다. 누런 장판과 낮은 반상, 수북 놓인 꽃나무와 붓글씨 액자도 여느 오랜 집의 것들 같아 맘이 놓였다. 남자가 내어준 구석 자리에 노인들을 등지고 앉으니, 뜨끈하게 잘 데워진 방바닥의 온기가 엉덩이를 타고 올라 맺혀있던 찬기운을 슬며시 녹였다. 부엌은 달그락달그락 느린 템포로 움직이고 저 혼자 열변을 토하는 텔레비전 뉴스 소리가 대수롭지 않게 깔려있다. 노인들의 근황 이야기는 들쭉날쭉하다. 어느 누가 어디에서 넘어진 후로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는 둥, 누구네 셋째 딸 결혼식 밥이 맛이 없었는 둥이었다.
후끈한 증기가 가득 찬 실내, 그 속으로의 입장을 기다리며 길게 길게 늘어선 사람들, 끝없는 찰칵임과 세련된 옷차림, 추위에도 끄떡없는 젊음이 깔깔 웃으며 웅성이던 거리에서 고작 문 하나 차이다. 거리의 성황에 비해 이곳은 느리고 무던하고 흐릿하다.
그 간극을 짚으며 낮게 깔린 소리를 주워들으며 낮은 반상에 몸을 웅크리고 칼국수를 기다리는 시간.
요즘은 내가 남겨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바쁘게, 빠르게, 어제를 쌓으며 훌륭한 오늘이 되고, 모두는 제 무게와 힘을 갖고 소란스러움의 한편이 되어 살아낸다. 세상의 변화와 모두의 적응이 놀랍고 기쁘고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나는 그 세상에 부재하는 것 같아 조금 슬프다. 그리고 모든 것이 조금은 천천히, 느리게, 머물러도 좋지 않은지,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크고 좋은 발전, 개발과 계발 끝에 이뤄내야 할 성과는 무엇인 걸까. 경솔하거나 진중하기도 한 질문들은 군소리로 남겨졌다. 해결법 없는 의문은 가치가 없고 모든 것에 명확성이 요구되어 진다.
나는 참 느리다. 아니, 느리고 빠른 속도조차 갖지 못했다. 오래전 이곳에서 달뜬 얼굴을 하고 m과 답 없는 질문의 답을 찾으려 떠벌거리던 나는, 좀 더 나이 든 얼굴이 되었을 뿐 빠르지 않고 빛나지 않는 덜 떨어진 그대로로 다시 이 자리에 앉아 있다. 세상은, 그날의 m도, 대화도, 모두 떠나 사라지고, 나는 깊은 곳에 묻히고, 두껍게 덮인, 먼 일, 먼 시간, 먼 사람이 된 것 같다. 남아있는, 남겨진 사람. 시류를 모르는, 도태된 사람. 그렇지만 종국에 우리는 그저 사람일 뿐이다. 세상은 더 많은 사람을 남기며 달려갈 텐데. 살아가기 위한 세상이 아닌가. 이건 그저 남겨진 사람의 열등한 한탄인 걸까. 오래 전의 나와 오늘의 내가 마주 앉아 웅얼웅얼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시킨 것이 많은 먼저 온 노인들의 상이 다 채워지지 않았지만, 혼자인 내 기다림이 너무 길어질까 싶었는지 젊은 남자는 사이사이에 내 몫의 김치를 항아리에 채워주고 물도 챙겨주고, 그렇게 차례로 신경을 써주고선 칼국수를 내왔다. 남의 살 한점 들지 않은 면발 우러난 뽀얀 국물. 슬며시 흩뿌려진 후춧가루와 소복 얹힌 김가루, 드문 드문 잘게 썰린 애호박까지. 특별하지 않고 새롭지도 않은 단출한 한 그릇이다.
뜨끈한 국물부터 벌컥벌컥 들이켜고 싶었지만, 막상 너무 뜨거워 남자의 눈을 피해 찬물을 섞었다. 짭짤하고 문적한 국물 떠먹고 거친 고춧가루 털어낸 겉절이 한 입, 뚝뚝 끊기는 면발도 후후 불어 한 입. 대충 씹어 꿀꺽꿀꺽 삼켰다. 너도 그대로다. 이 맹숭한 칼국수가 나를 두고 가지 않은 것 같다고, 그날의 나에게도 오늘의 나에게도 상냥한 것 같다고, 우습게도 쓸쓸함이 조금 풀렸다.
노인들은 칼국수에 막걸리를 마셨다. 건강을 위하여, 선창을 따라 건배를 외치는 점잖고 낡은 목소리들. 위하여 위하여 주워들으며 후루룩 후루룩 빈 속을 채웠다.
남겨진 나에게, 남겨진 칼국수. 속을 풀고 쓸쓸함을 달랬던 그날은 칼국수, 그날의 칼국수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