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용 중인 e-book 북클럽의 첫 화면에는 <달러구트 꿈백화점>이 바로 보였다. 검색할 필요도 없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지만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이번 기회에 읽기 딱 좋았다. 그럼에도 북클럽에 없는 게 맞는지 내가 몇 번이고 다시 검색한 단어는 다름 아닌 <허구의 삶>이었다. 그동안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들을 향해 달려온 게 맞는지 한창 의문을 가지고 있던 때였기에, ‘허구(fiction)'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제목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빨리 알고 싶었다. 결국 나는 월정액제로 북클럽을 이용 중이었음에도, 이 작품을 추가 결제하여 읽기 시작했다. 허구의 삶을 탈피하기 위한 다분히 의도적인 만남이었다.
자전거 짐받이에 쌀자루를 싣고 다녔던 상만처럼 사람은 각자 다른 종류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산다. 때로는 자기만 짐을 지고 사는 줄 알고 서로를 뾰족하게 오해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나는 삼 남매의 맏이로 20여 년을 살다 보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군말 없이 잘 참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건강한 부모님과 삼 남매가 따습게 살아온 내 인생을, 배가 불렀다며 상만이 째려볼지도 모르지만 내 나름대로 고충은 있었다. 참을 인(忍)을 새기며 그 태도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습관이 될 때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내 마음의 소리를 따르기에는 부모님의 걱정 어린 얼굴이 항상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재수도 하지 않았고, 취업도 끌지 않고 했다. 진정으로 열망하는 것을 위해 도전하기보다는 성취할만한 적당한 목표를 이루며 안전하게 살았다. 아무도 내게 그렇게 하라고 종용한 적은 없었다. 단지 내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상만이 허구의 죽음을 통해 깨닫기 전까지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던 가장의 꿈처럼, 가족에게 편안한 집과 풍족한 음식, 돈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누리게 해 주면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안정감 있는 삶도 생각보다 좋은 점이 많았다. 개인 시간에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들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더라. 아니, 충분하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좋았겠지만 그 시절엔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조차 사치라고 느꼈다. 그래서 안전한 선택을 했다. 안정적인 환경 덕분에 평온한 일상이 가능했고, 소중한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을 때에는 기쁜 마음으로 무언가를 해줄 수 있었다. 안마의자를 거의 날마다 애용하는 엄마를 볼 때면 문득 잊고 살던 뿌듯함이 차오르기도 한다. 이제 네 살 된 우리 집 강아지가 새로 산 간식을 신나게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고, 경치 좋은 곳으로 함께 여행을 가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켜켜이 쌓이는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보면 돈을 왜 버는지 새삼 느낀다. 이렇게 평범한 일상에서 차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한 해가 지날수록 점점 깨닫는다.
다만, 이러한 행복과는 결이 다른 또 하나의 행복이 올해 찾아왔다. 새로운 행복을 발견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데, 이 여정은 상만의 아내인 성희가 상만에게 이혼하자며 보낸 메시지로 시작할 수 있겠다. "더 이상 '나'를 믿지 못하겠어. 아니, 날 믿지 않는 '나'를 견디지 못하겠어. 껍데기만 그럴듯하게 유지하고 사는 거 이제 그만하자." 성희의 메시지 내용에서 '당신'을 '나'로 바꿨다. 내가 과거의 나에게 고하는 이별.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좀 더 귀 기울이며 살겠다는 굳센 다짐이기도 했다. 모든 이별은 새로운 출발을 동반하는 법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뭘까.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정말 참을성이 깊은 사람이 맞나.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이렇게 자문자답을 하면서 나는 점점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서른 살과 결혼을 목전에 앞둔 올해의 나는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사람마냥 줄기차게 '나'를 뱉어내며 지내고 있었다. 그 수단은 바로 '글쓰기'였다. 상만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 글쓰기와 멀어졌지만, 나는 내 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더 알아가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 원체 내향적이고 집을 좋아하는 나는 조용한 방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좋았다.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솔솔 들어오고 강아지가 내 옆에서 곤히 잠을 자면 금상첨화였다. 그렇게 일상에 활자를 들인 후로 더욱 풍요로운 삶을 만끽할 수 있었다. 글쓰기를 통해 다채로운 '나'를 만나면서 삶이 훨씬 충만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허구의 내가 아닌 진짜 '나'로 사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상만의 은근한 라이벌처럼 등장하는 문호는 내가 꿈꾸는 삶을 살고 있어서 유난히 반가웠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 가정에 책임을 다하면서도, 좋아하는 글쓰기를 계속하며 작가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은 삶. 상만을 통해, 젊은 날의 문호가 대회에서 상을 받으며 꾸준히 글로 성장해가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문호의 미래가 현수의 삶만큼이나 궁금했다. 과연 그가 끝까지 글쓰기를 놓지 않을지, 어떤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한 사람의 생애는 기쁘고, 아프고, 행복하고, 슬프고, 당당하고, 부끄러운 삶이 강물처럼 뒤섞여 흐르며 만들어진다. 이 책에 실린 열 편의 소설은 그 삶을 직조해 만들어 낸 작품이기에 부끄러운 대로 자랑스럽다.- 부끄러운 대로 자랑스럽다니. 마음이 쿵할 정도로 따뜻한 말을 전하는 작가로 거듭난 문호의 삶은 내게 밤의 어둠 속 가로등 같았다.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위로를 받는 듯했다.
반면, 상만의 삶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만은 30년 만에 보는 고등학교 동창들 앞에서 너스레 떨 수 있는 삶을 만들기 위해 수십 년을 그토록 아등바등 살았던 걸까. 자기의 과거를 아내마저 모르게 할 정도로 외면한 채 살아온 그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평생 풀어지는 게 두려울 정도로 긴장하며 살아온 상만의 고단함을 어찌 위로해주어야 하는지. 이런 상만의 삶이야말로 허구(fiction)의 삶이 아닌가. -삶은 어느 한순간 정지시키고 리셋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기억은 왜곡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삶 자체를 편집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상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사랑한 적이 없었다. 늘 스스로를 창피해하며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죽을힘을 다했다. 그래야 인정받고 사랑받는 줄 알았다.- 삶은 무편집본이니 실수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고, 무삭제본이어서 하이라이트만을 목적으로 둘 필요도 없다. 숱한 시행착오 역시 존중받아 마땅한 우리 삶의 일부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인생을 좀 더 사랑하고 아껴보면 어떨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다면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부터 시작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상만처럼 고단한 삶이 틀린 것은 아니다. 현수처럼 유유자적하는 삶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단지, 자기를 오롯이 마주하는 걸 두려워했던 게 안타까울 뿐이다. 이에 대해 조언해줄 진짜 어른이 그들 곁에 없었다는 게 속상할 뿐이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고 각자 가꿔나가기 나름이다. 그러니 다른 세계에서 패기 넘치는 또 다른 내가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지난날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진짜 나의 삶에 충실하면 된 것 아니겠나.
허구는 죽음으로 다른 세계의 삶을 이어갔고, 상만은 허구의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맞이하려고 준비하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허구의 초대장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하며, 많은 것을 참고 살아온 그간의 내 허구(fiction)의 삶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해 본다.
'죽음에 너무 놀라거나 서운해하지는 말게나. 내 삶은 또 다른 곳에서 계속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