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Anapauo (ἀναπαύω, 안식)

오늘은 내가 나폴레옹이다 (14)

by Kevin Kim

2024년 5월 1일~2일 (12, 13일 차)

이틀간의 휴식, 안식을 준 부르고스



5월 첫날 아침이 밝았다. 그러나 간밤에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내 발목 상태를 점검해 보니 순례길에 대한 엄청난 회의가 몰려왔기 때문이다. “더 이상 걸어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내 마음 한편으로는 포기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상실감이 충돌하고 있었다. 밤새 고민하다 거의 뜬 눈으로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새벽에 일어나 조용히 아래층 주방으로 내려갔다. 발목 통증은 포기를 종용하고 있었고, 이런 상태에서 계속 순례길을 계속한다는 것 자체가 교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포기도 용기’다. 순례길을 포기하자 생각하다 가장 가까운 대도시 ‘부르고스’에 가서 병원에 들러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내 사정을 아는 알베르게게 자원봉사자 중 한 사람이 자기도 버스 타고 부르고스에 갈 예정이라며 7시 반에 숙소 앞에 나오면 정류장까지 안내해 주겠다고 한다.

그동안 며칠을 참고 걸어왔지만 이제 더 이상 참을 만한 상태가 아니다. 인대에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무슨 큰 병에 걸린 것인지 통증이 예사롭지 않아 더 악화되기 전에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아쉽고, 마음에 걸렸지만 고집과 교만을 버리고 포기하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정말 많은 생각이 스쳐 갔다.


출발 준비를 하고 숙소 앞으로 나오니 ‘멜린’이라고 하는 10대 후반의 벨기에 청소년이 자전거를 정비하고 있다. 자기는 벨기에 집에서 여기까지 2,060km를 61일에 걸쳐 자전거 타고 왔단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 먼 길을 왔는가?" 물어보니, "아직 한 번도 스페인을 와 보지 못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궁금해서 그냥 자전거를 몰고 나왔다.”라고 한다. 우문현답이다. 이 길을 가는 게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냥 궁금해서”가 충분한 이유가 될 것 같았다. "너 언제까지 계속할 거니?", "지금 구체적 계획은 없고 더 이상 볼 게 없다고 판단되면 집으로 돌아갈 거야"라고 대답한다. 이 역시 우문현답이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출발하는 청년을 축복하며 힘차게 자전거를 밀어주었다. 나는 멜린이 사라진 골목길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축복 기도해 주었다. 그리고 진실로 멜린이 부러웠다..

세상이 궁금하여 자전거로 돌아본다는 멜린의 뒤에서 한참을 기도해 주었다


자원봉사자와 함께 버스 정류장에 나갔다. 나는 다소 의기소침해졌고 약간은 우울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류장에 나가니 족히 20명 정도나 되는 순례자들이 보인다. 대부분 다리에 탈이 났거나 전 구간 완주에 자신이 없어 작게 잘라서 가는 사람들이다. 순례길이 열흘을 넘기고, 걸어온 거리도 300km가 넘다 보니 다리에 무리가 온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나 보다. 다시 보지 못할 것 같다며 사진까지 찍고 헤어졌던 밥& 테라 부부도 와 있다. 아마 어제 “다시 못 볼지 몰라”라고 이야기 한 이유가 오늘 버스 편으로 이동하기 때문이었나 보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하고 다리 통증을 주제로 이야기 나누는데 버스가 온다.

순례길을 포기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나가는 순례자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저 먼발치에 아침 들녘을 걷고 있는 순례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부럽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순례자들의 모습이 힘겨워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건강하게 걸어가고 있는 저들이 부러울 뿐이었다. 마음은 참으로 복잡했다. 나는 부르고스에서 적당한 치료가 안 된다면 순례길 자체를 포기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심란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버스는 너무도 쉽게 부르고스에 데려다주었다. 우선 부르고스 대성당 옆 카페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병원을 알아보았다. 이곳에 대학병원이 있다고 해서 그곳을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하필이면 오늘이 5월 1일 노동절이고 부르고스 모든 병원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정말 맥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약국도 대부분 문을 닫았는데 일부 비상으로 문을 연 약국이 있다고 하여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다행히 약사가 영어를 제법 잘한다. 그동안의 통증과 증상을 소상히 설명하고 이런저런 처방을 받아 호텔로 갔다. 호텔은 대성당 인근으로 해서 접근성을 좋게 했고 욕조가 있는 제법 큰 방으로 요청해서 좌욕하면서 근육 마사지를 계속하기로 했다. 이곳에서 이틀 정도 쉬면서 순례길 계속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동안 300km를 쉬지 않고 걸어온 나에게 처음으로 아나파우오(anapauo), 즉 안식을 부여한 것이다.


이곳 부르고스는 대도시다. 그동안 산 넘고 들녘을 지나 시골길만 걸어온 순례자의 눈에는 모든 것이 화려하고 좋았다. 사람 사는 냄새가 이리 좋단 말인가? 길에서 마주친 사람에게서 풍기는 향수, 화장품 냄새는 땀 냄새에 찌든 순례자에게는 천상의 향기로 느껴졌고 화려하고 풍성한 가게가 색 다르게 다가왔다.

부르고스는 순례길 중 만나는 도시 중 가장 큰 도시이며, 이 고장 말을 스페인어의 표준어로 평가한다고 하니 이 도시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다. 해발 800m 정도에 위치하여 공기도 맑고, 인근 대도시들과의 교통망도 잘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 살아도 좋겠다 생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 '부르고스'

여러 조건들이 좋아서인지 고대부터 켈트족들이 살았었고, 9세기말에는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거점 도시로 이때 요새가 건설되었다. 이후 카스티야 왕국의 머리라고 불릴 정도로 핵심적이고 유서 깊은 도시가 되었다. 스페인 내전 당시에는 국민파의 수도로, 1936년에서 1939년까지는 스페인 군사 정부의 임시 수도였으며, 학창 시절 감명 깊게 본 영화 ‘엘 시드’의 엘 시드 장군을 배출한 도시이기도 하다. 도시는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예술성은 너무도 뛰어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구도심으로 들어가기 위해 ‘산타 마리아 문’을 통과하면 광장이 나오고, 이 광장을 중심으로 유명한 부르고스 대성당이 위치하였다.

Catedral de Santa María de Burgos


대성당 탐방에 들어간다. 성당은 프랑스에 대성당이 생겨나던 시대인 13세기에 착공하여 16세기까지 공사가 진행되었고, 당시 프랑스 고딕 양식의 성당을 모델로 하여 스페인 예술적 감각을 융합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부에는 카스티야 왕국의 왕실 유해와 부르고스가 배출한 군사 영웅이자 스페인 국토회복운동인 ‘레콩키스타’를 주도한 엘 시드와 그 아내 도나 히메나의 무덤이 성당 가장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천장에는 후안 데 바예호 작품인 별 장식을 한 지붕이 인상적이고, 무엇보다 화려한 성가대석과 스테인드글라스로 둘린 회랑, 성 안나 예배실 등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진 15개의 예배실은 각자 다른 작가의 조각품들로 장식되어 있어 이곳을 다녀갈 사람들은 사전에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지고 방문하면 더 좋을 것 같다.


대성당 바로 뒤 언덕에 부르고스 공립 알베르게가 있다. 이곳에 가면 지금쯤 많은 순례자들이 도착하고 있으리라 생각되어 천천히 걸어가 보았다. 공립 알베르게는 위치도 좋고 시설도 훌륭하였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도착하여 알베르게 앞에는 긴 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바라보니 어? 미국 미네소타에서 어머니와 같이 온 윌리엄이 있는 게 아닌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저 멀리에서 어머니도 다가와 반갑게 맞아준다. 건강한 모습이었다. 함께 사진을 찍고 헤어졌는데 윌리엄과의 인연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헤어짐이 일상인 이곳에서도 윌리엄과 어머니와의 이별은 지금도 많은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어머니의 체력적 부담으로 인해 귀국했다는 이야기만 며칠 후 전해 듣게 된다.

다시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는 미국의 모자


호텔에서 여러 차례 욕조에 앉아 발목 마사지를 계속했더니 다리가 조금 풀어지는 듯했다. 무리하지 않고 이곳에서 하루 더 쉬기로 했다. 일단은 안식을 더 늘려보자.


하룻밤을 푹 자고 아침이 되었다. 통증은 나아진 듯하나 근본적으로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제 결단의 시간이 되었다. 여기에서 차를 타고 산티아고로 바로 가서 산티아고 대성당을 보고 귀국해야 하나? 아니면 며칠 더 참고 더 걸어볼까? 망설여진다. 결정을 내리기 전 부르고스 대성당을 다시 한번 더 보고 싶어 광장에 나갔다가 모닝커피를 위해 근처 카페에 들렀다.

많은 손님 가운데 순례길에서 몇 번 만났던 독일 할머니들이 모두 앉아 있었다. 내가 예전에 뒤셀도르프에 살았었다는 것 만으로 늘 반갑게 대해 주고 먹을 것도 챙겨주던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런데 하노버에서 왔다는 할머니 한 명이 무릎 통증으로 여기에서 포기하고 내일 독일로 돌아가기로 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데 할머니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실은 나도 아파서 포기해야 할지 모르겠어”라는 말을 꺼내려는 데 “케빈! 너는 잘할 거야. 건강하게 순례길 잘 마치도록 기도해 줄게.”하며 안아준다.

나는 차마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독일 할머니에게 괜히 미안했고 또 고마웠다. 헤어져서 호텔로 돌아오는 데 뭔지 모를 힘이 난다. 아니 오기가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힘내라며 천사를 보내 줬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나의 순례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마음을 단단히 먹는 계기가 되었다.


“인생은 쉼표 없는 악보와 같기 때문에 연주자가 필요할 때마다 스스로 쉼표를 매겨가며 연주해야 한다.” 류시화 님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서 읽은 구절이다. 나는 내 순례길에 스스로 쉼표를 매겼고, 어제오늘 안식을 부여했다. 아나파우오’, 안식이라는 이 단어는 진정한 의미에는 ‘다시 시작’이란 뜻이 들어 있다. 비록 통증은 여전하지만 내일 다시 도전에 나설 것이다. 그것이 ‘내가 아직 살아있는 이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삶에는 쓰러지는 날도 있고 물러날 때도 있다. 실패할 때도 실수할 때도 있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니 그리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어떤 일을 할 때, 특히 가능성이 낮거나 누구나 어려운 일이라고 할 때 “그 일이 꼭 필요한 일인가?”라고 스스로 질문하고 “그렇다”라고 대답이 나온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기 때문에 과감하게 시도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순례길을 오래 생각했고 나의 인생에 부여될 터닝 포인트로 판단했기에 이곳에 온 것이다.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니 다시 시작하면 된다.


물론, 실패했을 때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조급함이 성취를 망치기도 한다. 나는 비록 통증으로 쓰러졌지만 용기를 내어 버스를 탔고, 이틀을 푹 쉬었다. 욕조에 앉아 계속해서 마사지를 했고 뭉쳐있는 근육을 풀어냈다. 이제 다시 준비되었다. 비록 실패 같았지만 내 순례길은 ‘끝남’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방향에서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산티아고야 기다려라. 내가 간다!


https://youtu.be/tiRMrbZNGR4?si=F8hxbbO1QIuOpnkW


keyword
이전 12화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