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나폴레옹이다 (3)
2024년 4월 20일 토요일 (1일 차)
생장에서 순례자들의 안식처 '론세스바예스' 까지
찬바람이 잠을 깨웠다. 새벽 5시, 제일 먼저 창가로 다가가 하늘을 본다. 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다. 지난 몇일간 눈보라로 인해 산맥을 넘는 등산로가 폐쇄되었기에 무척 염려가 되었는데 오늘은 피레네 요정이 나를 받아주나 보다. 산맥을 가로질러 넘어가는 ‘나폴레옹 루트’를 이용할 수 있겠다.
고개를 돌려보니 같은 방 순례자들도 이미 배낭을 챙기고 있다. 내가 그랬듯이 이들도 기대와 설렘으로 제대로 잠을 못 잤을 것이다. 배낭을 메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몇몇 순례자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 숙소 주인은 “7시부터 아침이 제공되는데 왜 이렇게 일찍들 나서느냐”라고 핀잔을 준다. 7시 식사 후 자신이 주관하는 기도회에 참석하고 가란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가야 할 길이 멀고 가슴이 설레어 도저히 머뭇 거릴 수가 없었다.
식당 한편에 앉아 조용히 기도를 마치고 숙소 밖으로 나왔는데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긴장된다. 막 출발하려던 브라질 청년이 “출발 기념사진 찍어 줄게..”하고 말을 거는 바람에 마음이 다소 진정되었다. 아직 어둑어둑한 미명에 첫발을 내디딘다. 우주인 ‘닐 암스트롱’이 달에 인간으로서 내디딘 첫 발자국도 떨리는 것만 본다면 내 첫걸음만 못했을 것이다.
‘피레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요정 피레네에서 따 왔다고 한다. 과연 요정이 사는 피레네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이다가 갑자기 비바람, 눈보라가 몰아치는 심술부리기로 유명한 산이다. 수시로 실종자와 사망사고까지 발생하여 조금만 일기가 나쁘면 순례길을 폐쇄하고 우회도로를 이용하게 한다. 그러나 오늘 나는 나폴레옹이 되어 응원해 주는 가족과 회사 직원들을 지원군으로 여기고 피레네산맥의 서쪽 끝 단을 넘어갈 것이다. 생장 피에드 포르에서 출발해 레페데르 언덕을 넘고, 론세스바예스까지 내려가는 총 27km의 다소 부담스러운 코스다.
점점 깊숙이 산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자 경사는 더 심해지고 숨은 가빠 온다. 앞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말이 없어졌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한발 한발 오르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산 그리메 위로 황금빛 아침 햇살이 올라오자 온통 아름다운 피레네의 향연이 눈앞에 펼쳐졌다. 초록의 숲과 들판, 그 위에 수많은 소와 양 떼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는 독수리까지···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마치 산을 오르는 순례자들에게 피레네 요정이 주는 선물과 같았다.
출발부터 오리손 산장까지는 쉼 없이 올라야 하는 8km 길이의 힘든 경사로이다. 약 3시간에 걸쳐 첫 발걸음을 내디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곳 ‘오리손’에서 잠시 머물며 비로소 서로 인사와 격려도 나누고, 커피나 맥주 한 잔으로 땀을 식힌 후 다시 출발한다. 나도 즉석에서 착즙 한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여러 순례자들을 만나고 인사를 나누었다. 이 산장 이후의 까미노는 푸른 초원 사이로 난 지루한 오르막 등산로라고 알려져 있다. 오르막은 심하지 않을지라도 나무 한 그루 없는 산맥의 능선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어 눈, 비 또는 바람이 불면 정말 힘든 여정이 될 것이라 한다.
오리손 산장에서 흥분과 긴장을 풀어낸 사람들은 “부엔 까미노!(Buen Camino!, 좋은 순례길 되세요!)” 를 외치며 다시 출발했고, 나 또한 걷다가 쉬다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미국 애리조나에서 왔다는 멋쟁이 조 아저씨는 카우보이 후손답게 청바지에 멋진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왔는데 순례길을 걷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복장이었다. 다만 조 아저씨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까미노를 걷는 모든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즐겁게 대화에 끌어드리는 마력이 있었다. 아쉽게도 조 아저씨는 오늘 만남 이후 순례길에서 다시 만날 수가 없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온 호세 마리아는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조 아저씨의 통역과 손짓발짓으로 유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호세는 이후 순례길에서도 여러 차례 마주쳤고 언제나 밝은 얼굴로 외국인인 나를 도와주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미래 구상을 위해 왔다는 30세 초반의 한국 청년은 고민의 크기만큼 생각의 깊이도 깊고 복잡했다. 직장 문제는 물론 창업에 대한 염려와 고민, 결혼 문제에 이르기까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이 참으로 많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저런 참으로 많은 아픔을 안고 있구나! 하는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많은 순례자들을 만나고 서로 위로하고 웃으며 길고 먼 첫날의 피레네를 넘는다. 힘에 부쳐 잔디에 앉아 있으면 귤, 쿠키, 햄과 같은 먹거리가 자동으로 내 앞에 배달되기도 했다.
27km의 까미노 첫 코스는 마치 그동안 살아왔던 인생과 유사했다. 특히 끝이 보이지 않음에서 오는 막연 함이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모퉁이를 돌아서면 끝이겠지 했지만, 새로운 언덕이 펼쳐져 있고, 그 언덕을 넘으면 또 다른 언덕이 나타났고, 이제 내리막인가? 싶으면 다시 오르막이 나왔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힘든 순간도 있었고, 잠시 평평한 길을 걸으며 정상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을 맞을 땐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도 했다. 이럴 때 비로소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산맥의 풍경은 오르막에서 지불한 땀과 노동의 수고를 한 순간에 보상해 주기도 했으며, 언덕 끝을 넘어가는 사람들은 하늘을 걷는 듯했고 언덕을 넘어 파란 하늘로 사려져 가는 모습들이 신비롭게 보이기도 했다.
다만 나무 하나 없이 펼쳐진 능선길에서는 생리 현상이 두려웠다. 어쩔 수 없는 자연 생리 현상이기에 누가 나무랄 사람도 없겠으나 나는 물을 마시지 않는 방법으로 해결하려 했고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판단이었는지는 며칠 후 크나큰 대가를 치르고 알게 된다.
길고 긴 피레네 능선 길을 걸어 레페데르 언덕을 넘고, 맑은 물이 흐르는 '롤랑의 샘'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목을 축이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이곳이 바로 프랑스-스페인의 국경이다. 스페인 나바라 지역으로 들어간다는 커다란 표지석을 보며 국경을 넘어 부지런히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하산이 시작되었다. 하산 길은 4.2km에 불과한 내리막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기서 더 많은 어려움을 느꼈다고 이야기한다. 이미 20여 km를 올라온 상태이기 때문에 육체는 지치고 다리는 힘이 빠져 휘청거리니 마지막 내리막길이 위험할 수 있겠다. 하산 길이 시작하기 직전에 간이 의자가 있는데 이곳에서 간식을 먹고 휴식을 취한 후, 등산화 끈도 재정비하고 등산 스틱을 사용하여 내려갈 것을 추천한다. 여기에서 무리하면 다음 날 론세스바예스에서 ‘수비리’로 내려가는 길이 지옥이 될 수 있다. 등산을 많이 해 본 나도 이 내리막이 힘들었다. 이정표에는 1시간 15분 걸린다고 되어 있는데, 실제 걸어보니 2시간은 족히 소요되었다. 만일 비가 내린 경우라면 미끄럽고 훨씬 더 위험할 것 같았다.
하산 길은 두 코스가 있다. 하나는 험한 길, 다른 하나는 더 험한 길···
선택은 순례자 마음에 달려 있다. 나는 약간 길지만 험한 길을 택했고, 우여곡절 끝에 3시경에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실로 엄청난 규모의 공립 알베르게다.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은 알베르게 마당에 모여 이야기 나누고 자원봉사자들은 막 도착하는 순례자들에게 순서에 따라 안내를 하고 있었다. 시설도 깨끗하고 관계자들은 친절할 뿐 아니라 체계적이고 전문적이었다. 한국에서 출발한 후 지금까지 밀렸던 빨래를 하고 싶다고 문의했더니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세탁과 건조를 맡아 준다고 한다. 이 정도의 친절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나니 커뮤니티 디너(순례자 합동 저녁식사) 시간이다. 참고로 론세스바예스는 디너 참석이 의무는 아니지만 이곳에는 딱히 다른 식당이 없다. 또한 여기에서 만난 순례자들끼리 정보도 교환하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같이 걷게 되는 동반자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반드시 신청하길 추천한다.
순례자들은 몇 곳에 분산되어 식사를 하게 된다. 지정된 식당에 가니 각국에서 모여든 순례자들이 북적이고 있다. 대부분 첫날 가장 어려운 코스를 완주함에 대한 만족감에서 다소 흥분된 모습으로 경험담을 자랑했다. 나는 미국, 독일, 브라질, 스페인, 그리고 한국에서 어머니와 같이 온 젊은이와 한 테이블에 배정되어 저녁 식사를 같이했다. 음식은 충분했고 와인은 훌륭했으며 대화는 유익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피레네 산맥 너머로 붉은색 노을과 파란 하늘이 신비하게 어우러져 순례길 첫날을 무사히 지낸 모든 순례자들에게 축하 선물을 보내주고 있었다. 숙소에 돌아오니 부탁했던 빨래가 바구니에 담겨 침대에 가지런히 놓여있는데 깨끗하고 정성스럽게 개어져 있었다. 마치 “순례자 당신들은 먼 길 가야 하니 푹 쉬어! 우리가 도와줄게.” 하는 것 같았다.
이웃 침대 순례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내 아래칸에는 일본 아주머니가 맞은편에는 네덜란드 아가씨, 그 아래 침대에는 미국 청년이 들어왔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아픈 곳은 없는지 물어보고 각종 약품과 먹거리들이 침대 사이를 오갔다. 갑작스러운 물물교환 장터가 선 것이다.
나는 내일 아침 출발이 편하도록 배낭을 꾸려 두고 침낭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그 옛날 논산훈련소 보충 연대에서의 첫날밤이 생각난다. 짧은 머리는 어색하였고 침상은 불편하였으며 앞으로의 병영 생활이 어떠할지에 대한 기대감과 염려가 잔뜩 몰려왔던 그 입영 첫날밤 말이다. 알베르게 방에 있는 수십 개의 침대는 그날의 보충 연대 침상 같았고, 창문으로 보이는 둥근달 마저 추석을 3일 앞둔 그날 보았던 바로 그 달이었다.
그날 밤 나는 소리 없이 밤하늘을 걸어 고향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뵈었었다. 오늘 밤에도 나는 밝은 달빛 속을 걸어 한국으로 돌아가 두고 온 아내와 딸, 손주를 만나고 올 것 같다. 그리고 힘을 얻어 내일 다시 순례길을 갈 수 있겠지.
이제 하루를 걸었다. 아직 800km가 남았지만 시작했으니 절반은 온 것이다.
https://youtu.be/FLYAuVGjtRI?si=075os-Ew4FQ_hEu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