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미깡 Jul 06. 2022

길리안 초콜릿

엄마와 초콜릿과 곱슬머리 아저씨

왜인지 엄마는 "나쁜 "  때마다 나를 데리고 갔다. 아빠 몰래 숨겨놓은 담배를 태우러 옥상에  때도 그랬고, 결혼 전에 잠깐 만났었다는 아저씨를 보러 대학로에  때도 그랬다. 곱슬거리는 짧지 않은 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을  낯선 아저씨는 녹차 전문 카페에서 눈이 돌아갈 만큼 맛있는 녹차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맛을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지만, 당시는 애써 관심 없는  먹는  마는  하며 묻는 말에 틱틱거리거나 틈만 나면 그를 노려보았다. 그것은 당신이 비집고 들어올 어떠한  따위 보이지 않을 거라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얼마 뒤에 아저씨가 집에다 길리안 초콜릿을 보내왔다. 꼬부라진 해마 꼬리가 그 아저씨의 곱슬머리와 닮았던가 아니었던가. 왠지 이걸 먹으면 틈을 허락하는 것 같고 싸움에서 지는 것 같고 엄마를 빼앗기게 될 것 같아서 안 먹으려고 버텼지만, 평소 같으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을 초콜릿에 손을 대지 않는 편이 어색해 보일 것 같았다. 어쨌거나 초콜릿은 달콤했으며, 둘은 그 뒤로 다시 만나지 않았다(고 나는 믿고 있다).

엄마는 왜 그런 자리에 나를 데려갔을까. 당신의 삶에 대한 목격자가 필요했던 걸까? 어쩌면 엄마의 세상에는 이 모든 것에 납득할 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작 열두 살짜리가 엄마의 일탈을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빠도 모르고 언니도 모르고 당사자조차 까먹었을지 모를 그 일이 세상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매듭을 꽁꽁 묶어 가슴 깊은 곳에 숨겨놓았다. 그랬는데,

십 년도 더 된 그 일이 며칠 전 조깅을 하다 뜬금없이 떠오른 것이다. 실소가 비져나오다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기억과 함께 감춰야 했던 못다 흘린 눈물이 인제야 나오나보다 했다.

우유를 먹지 않게 된 나는 길리안 초콜릿을 선물 받을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작가의 이전글 감사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