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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카모토 미깡 May 26. 2020

편지

후회 없이 사랑하는 법

 부모님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라고 하기도 민망한 작은 종이쪽지  .
 학창 시절에는 매년 어버이날이 되면 학교에서 나눠주는 편지지에다 형식적인 몇 마디를 끼적이곤 했지만, 스무 살이 넘어서는 그마저도 쓴 적이 없다. 하물며 깊은 대화조차 않는 부모 자식 간에 이제와 속내를 털어놓는 것은 자못 어색한 일이었다.

 나이가 들어 이곳저곳 병치레하는 부모님을 도와드리고자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는 차였다. 여러 번 설득하여 가족의 식이요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성공했으나,  한두권 읽은 정도로는 지식이 모자랐다. 고혈압약 복용 3 차에 협심증이  아버지를 고치려면  많은 정보와 노력이 절실했다. 그리하여 당사자들의 협조를 북돋우고자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아버지, 식단을  따라줘서 고마워요. 그래도 가슴이 너무 아프면 약을 드셔요. 도움이  만한 내용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있으니 며칠만 기다리시고요.
 어머니, 나를 위해서라도 당신을 조금  사랑해주셔요. 좋은걸 사다놔도   아버지한테, 언니한테만 먹이고 당신은  드셔.


 속상한 마음에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미워했던 시간만큼 오래도록 쌓인, 표현하지 못한 못난 사랑의 감정이 치밀어 목이 메어왔다. 가슴이 먹먹하다. 주기보다 받기를 바랐던 어린 마음에 괜히 자존심 세우던 지난 세월이 아쉽다. 이제 와서  분이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 머물러주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

 편지를 주고 나면 얼굴 마주치기가 쑥스러울 테니 집을 나설  식탁 위에 올려둔다는 걸 그만 깜빡 잊고 가방에 넣은 채로 나와버렸다. 내일 아침을 기약하겠노라며 출근 버스에 오르려는 찰나,

 "-"

 지갑을 꺼내다 덩달아서 삐져나온 노란 쪽지  개가 나풀나풀 바람에 날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발은 이미 승차 계단을 밟았고 뒤로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눈으로 종이쪽지를 쫓으며  안으로 걸음 한 나는 편지를 다시 쓸 것인지 잠시 고민하다 이내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 아빠. 가슴이 아프면 위험하니까 너무 심하면  먹어요. 당분간은 오르막길 말고  돌아서 오고."

 맨 정신으로 읊어대기엔 어색하고 낯간지러워, 다른 이야기는 못다 한  전화를 끊었다.
 그렇지만 분명히 뭔가 변해있었다. 부모님에게  편지였지만 달라진 건  자신이었다. 고맙다는 아버지의 한마디에 울컥하면서도 힘이 솟았다.

 가끔씩 소중한 사람에게 편지를 써보려고 한다. 아무 날이 아니어도, 하물며 전해주지 못한대도  어떤가. 종이에 담은 예쁜 마음을 간직한  살아가면  뿐이다. 잊을만하면 자꾸자꾸 되새기면서... 그렇게 후회 없이, 마음껏 사랑하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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