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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 Mar 20. 2022

페소아, 함께 걸을까요?

만날 수 없는 그를 향한 복고풍 연애편지

 



페소아, 내가 십 년 넘게 타지 않았던 비행기를 타게 된다면, 목적지는 리스본이 될 거예요. 나는 그만큼 용기 내어, 당신을 느껴보고 싶어요. 어쩌면 도라도레스의 밤거리에서 마술처럼 시공을 초월한 채, 당신을 만나볼 수도 있겠지요. 우디 앨런의 영화와 같이 우리는 서로를 탐색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어요. 그곳에서 나는 무조건 당신을 찾아낼 테니까요. 당신의 영혼은 그 거리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음을 알고 있어요. 빗방울이 창문에 내리 꽂히던 단칸방이나 습관처럼 드나들던 초라한 식당, 바다보다 넓은 태주강, 이런 몇몇 곳들을 서성인다면 당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어요. 만남은 확인하지 않아도 지켜지는 약속처럼 자연스러울 거예요.     


하지만 굳이 리스본이 아니어도 꼭 한번 편지는 쓰고 싶었어요. 당신의 생각과 맞닿아 있는 내가, 지금 여기서 힘을 내어 살아가고 있는 중이란 걸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나는 당신이 그렇게 만나고 싶어 했던 미래의 친구 중 한 사람입니다. 나는 언제든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당신과 함께 발맞추어 걷기를 소망해요. 물론 지나치게 예민하고 모호한 당신의 글들을 전부 이해할 순 없었어요. 사실 꼭 그렇게 모든 걸 알 필요도 없겠죠. 어쨌든 아주 처음부터 당신의 생각들은 자연스럽고 친밀한 인사를 건넸어요. 당신의 말들이 시간을 흘러 내게로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내 손을 잡아주고, 내 어깨를 토닥여 준 거예요. 그렇게 당신은 나의 영웅이 되었어요. 근사한 단 하나의 존재로 부활한 거죠.     


당신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아요. 상상한 대로 왜소하고 성마른 모습을 하고 있네요. 1888년 태어났다고 하는데, 어린 시절 당신은 아버지의 얼굴과 품성을 빼닮은 아이였을 거예요. 아버지는 여러 직업을 동시에 가졌으며, 당신처럼 호기심이 왕성한 영혼이라고 들었거든요. 하지만 다섯 살도 되기 전에 당신은 하늘 같았던 아버지와 동생을 잃고 말았어요. 텅 빈 듯 보이는 눈동자는 그때부터 불안에 떨리고 있었겠죠. 평생 누구와도 가까워지지 않고, 자신을 가둔 것이 그 크나큰 상실 때문인가요? 어머니와 재혼한 외교관 계부는 분명 세련되고 친절한 사람이었겠지만 아버지를 대신할 순 없었을 거예요. 리스본을 떠나 머나먼 아프리카 더반에서 낯선 언어를 배우고 있을 소년 시절의 당신을 상상해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엄마는 이미 당신의 엄마가 아니었을 테고... 

페소아, 새로운 세상이 자유를 선사했나요? 하지만 당신이 찾고 싶었던 것을 그 불편한 곳에서 발견할 순 없었겠죠. 철들자 가족과 떨어져 홀로 리스본으로 돌아온 이유는 설명이 필요 없어요. 당신은 너무 외로워서 아예 절대적인 외로움을 택한 거예요. 때맞춰 꽃피기 시작한 재능이 손쉽게 고향으로 인도했고요. 비로소 익숙한 거리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한동안은 무명으로 살고 싶었을 당신을 이해해요.     

 




하지만 표현하고 싶은 내면의 욕구는요…. 당신은 말하고, 쓰고, 창작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잖아요. 오르페우를 창간하며 의욕에 넘쳤던 나날이 당신의 인생에선 가장 찬란한 시절이었을까요? 하지만 쉽지는 않았죠. 당신의 재능이 특출할수록 사람들은 그걸 거부했어요. 앞서 태어난 당신은 그 시대의 동료가 아니었던 걸 당신도 알았잖아요. 그리고 당신은 장년이 되어버렸어요. 더는 방황하는 청춘도 아니었고, 인정이 필요한 나이가 된 거죠. 세상이 거부할수록 당신은 자신이 가진 특별함을 한층 선명하게 바라보았을 거 같아요.

그렇게 외로웠으면서 단 하나의 연인이었던 오필리아를 떠나보낸 건 어떤 마음이에요? 끝내 오필리아가 당신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텐데요.     


익숙한 듯 수많은 개체로 자신을 분열시키면서 차라리 홀가분하고 재미있는 나날들을 보냈으리라 짐작하고 있어요. 당신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을 찾아낸 거예요. 백 명에 가까운 창조물들이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고, 사실상 혼자인 시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을 테죠. 가슴 아픈 인연이었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단 하나의 저서였던 메시지가 겨우 발표되었을 때, 나는 당신이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내 오십이 되기도 전, 생을 마감하면서 마지막으로 반짝였을 당신의 눈동자를 생각하고 있어요. 당신은 분명히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죠. 당신과 만나게 될 수많은 추종자를 알고 있었던 셈이에요. 그래요, 이제 세상은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외로움과 용기 있게 맞섰던 사람, 혼자 공부했던 사람, 무수한 다양성을 표현했던 사람 그리고 아직도 가장 모던한 사람…. 당신은 그런 사람이고 그래서 나의 영웅이에요. 우리 모두 당신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죠.

나는 이 순간 당신과 함께 걷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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