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탄지 십 년이 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비행기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마지못해 억지로 타는 것이었지만, 십 년 전 마지막으로 탔던 비행기가 활주로에 닿자마자 다시는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만큼 싫고 두려웠다. 그래서 그 후로 타지 않았다.
정말 싫고 두려운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닫아거는 성격이어서 그동안 내가 비행공포가 있다는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비행기나 장거리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조금씩 주변에서 궁금해 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에 계속 불참해서인데 그래서 사정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친구들은 이런 나의 두려움이 답답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혀를 찬다. 도리어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난리다.
요즘 같은 세상에 그렇게 불편하게 사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냐며 말이다. 또 비행기를 탔을 때 안 좋은 일이 있었냐고 꼭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나는 할 말이 없다. 몇 번 불쾌한 경험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그렇게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기억에 남아 있는 사건은 십오 년 전쯤 아이와 함께 중국 상해를 가던 중 제주도에서 회항한 일 정도이다. 인천에서 상해까지의 비행거리는 두 시간 남짓이어서 절반 정도는 이미 날아간 셈인데 갑자기 인천으로 돌아간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비행기 앞 유리창에 새가 부딪쳐 금이 갔다는 것이었다. 그 방송을 듣는 순간 오금이 저릴 정도로 긴장하고, 온몸이 떨려 왔다. 겨우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돌아가다니, 그것도 깨진 유리창으로.... 주위를 돌아보니 다른 사람들은 평온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내 눈에는 그 사람들이 도리어 이상한 안전 불감증처럼 느껴졌다. 어린 아들의 손을 꼭 쥐고 마음이 가라앉길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편안하게 앉아 신문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옆의 승객들은 그런 나의 상태를 알 길이 없었겠지만 나는 너무 겁에 질려 있었다. 조금만 정도가 더 심해지면 아이를 곁에 두고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그날 인천에 도착한 후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고 상해는 겨우 갔는데, 그 이후 비행기 타는 것이 더 싫어진 건 사실이었다.
어찌 되었건 비행기 타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피해왔고, 그 시간이 십 년을 넘어서고 있다.
세월은 속절없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두려움에 갇혀 자유롭지 못하다. 며칠 전 나와 함께 여행 가기를 원하는 친구들을 또 섭섭하게 만들어서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것일까? 그리고 왜 두려운 것일까?
사실 비행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내 경우는 좀 심하다.
계속 찜찜한 마음이었는데 오늘 설거지를 하면서 문득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내가 왜 그렇게 까지 비행기 타는 것을 두려워하는지 갑자기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물론 비행 중에 높이 떠있는 것도, 갇혀 있는 것도, 흔들리는 것도 싫지만 내가 극복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고도 비행 중 마주하게 되는 텅 빈 허공의 풍경이 원인이었다. 너무 높이 떠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가 싫었던 것이다. 만약 비행기가 계속 저공비행을 하여 땅에 있는 것들을 볼 수 있다면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 그거구나’하는 거의 확실한 깨달음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건 어린 시절의 고도근시 때문일 것이다. 나는 라식수술을 받기 전까지 언제나 안경이나 렌즈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하는 두려움에 쌓여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이나 자연재해 같은 상황을 상상할 때면 그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안경이나 렌즈가 망가져 잘 볼 수 없을까 봐 겁에 질렸다. 극도의 비상사태에서도 어떻게 하면 렌즈와 안경을 잘 보관할 수 있을까 그 생각만 했다. 시야가 흐릿해진다면 자신을 지켜낼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차곡차곡 쌓여 비행공포로 확대된 것이 틀림없는 듯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뭔가 명료해지고, 실마리를 찾은 느낌이었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비행공포 외에 차마 이야기하기도 창피한 다른 두려움들이 꾸역꾸역 떠오르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나의 어설픈 추측은 내가 가진 두려움 중 아주 작은 원인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많은 두려움 속에 갇혀 있었다.
창밖을 보니 성질 급한 겨울 해가 저물고 있다. 그리고 공원 저편으로 서로에게 기대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노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고립감이 느껴져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모두 두려움을 갖고 살아가리라는 위안을 해 본다. 살면서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새로운 시간들이 다가오고 있으므로 나는 변해야 하나 고민이 생기기 시작한다. 처방된 약이라도 먹고, 빠른 시간 내에 부들부들 떨면서 비행기를 타야만 할까? 그래야 두려움을 극복하고 조금 자유로운 인생을 살게 될까? 난 아직 싫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것보다는 내게 비행기 타는 두려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걸로 만들어 버릴 만큼 간절하게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겨나면 어떨까.... 두려움을 거뜬하게 이겨버리는 간절함 말이다.
아마 다른 두려움들도 그 앞에서는 무력해질 것이 틀림없다. 간절함은 그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나처럼 고집 센, 나약한 겁쟁이도 간절함 앞에서는 한순간에 용기 있는 모습으로 탈바꿈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인생의 가장 큰 슈퍼파워는 바로 순수한 간절함이었다. 그것이 미치도록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