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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우 Feb 05. 2023

겨울날의 토스트, 온기의 추억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프롤로그



풀벌레 소리와 창문으로 은은하게 불어오는 맑은 바람 덕에 초여름 밤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나 역시 다른 이들처럼 여름밤의 낭만을 좋아하지만 그 못지않게 비 내리는 겨울날의 쓸쓸한 정취도 좋아한다. 추운 날에 거실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TV를 보며 귤을 까먹는 즐거움은 겨울에만 누리는 일상 속 특권이다. 몇 년 전, 비 내리던 어느 추운 곳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행복한 특권이 나에게 주어진 것은 아마도 그때가 겨울이었기 때문이리라.


비 오는 겨울날의 토스트



5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첫 직장에서 일할 때 외근이 잦았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물론이고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어떤 때에는 제주도까지 출장을 다녔었다. 장마철에는 어딜 가나 비가 내렸고, 겨울에는 아무리 남부 지방이어도 추웠다. 서울 북쪽에 위치한 지역은 오죽했을까. 오래전 어느 겨울날에 어김없이 나는 서울 북쪽의 추운 땅, 의정부에 있었다.


서초역에서 1시간 반 정도 지하철을 타고 가서 도착한 1호선 가능역. 법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1번 출구로 나간다.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어서 배를 좀 채우려는데 밖에 부슬부슬 겨울비가 내린다. 여름의 비와 달리 겨울의 그것은 왠지 모르게 적막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풍긴다. 마음의 헛헛함은 곧 허기짐으로 바뀌어 내 두 발은 어느새 식당이 위치한 골목 어귀로 향한다.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테이블이 4, 5개 정도 있던(내 기억엔) 작은 규모의 이삭토스트 가게였다. 오전 시간이라 손님은 많지 않았다. 안 그래도 추운 날씨에 비까지 와서 따뜻하고 달달한 게 먹고 싶던 터라 토스트 한 개와 핫초코 한 잔을 주문했다. 추위를 느끼며 토스트 한 입을 베어 물고 핫초코 한 잔을 마셨다. 조금 과장해서 그 첫 입은, 행복이라는 무형의 개념이 유형의 실체로 전환된 순간이라 표현해도 괜찮을 듯싶다. 내가 앉은 구석 자리에서 가게 출입문이 정면으로 보였는데, 토스트의 따뜻함과 밖에 내리던 겨울비의 쓸쓸함이 대비되는 분위기는 어떤 극적 장치 같기도 했다.


내가 먹었던 토스트는 불과 몇 천 원. 많지 않은 돈으로 뜬구름 같은 행복의 순간을 잠시나마 손에 쥐었다. 토스트 한 개와 핫초코 한 잔은 헛헛한 마음을 온기로 충만하게 만들어준, 작지만 큰 어떤 것이었다.


토스트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뜨겁게 달아오른 철판에 토스트 재료를 요리하던 가게 점장님을 떠올린다. 작은 가게였으니까 주방도 크지 않았을 것이다. 뭐,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는 자그마한 공간에서도 손님에게 내어줄 음식을 만드는 데 여념이 없었으니까. 겨울의 춥고 스산한 날에 비를 피하기도 하고 배도 채울 목적으로 들어온 손님에게 따뜻한 토스트와 핫초코 한 잔을 만들어준 사람. 나는 그가 온기로 가득 찬 사람이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는 그저 생계를 위해 음식을 만들었을 것이다. 당시의 점장님을 만나 그때 토스트와 핫초코를 만들어주셔서 참 감사했다고 말한다면 그는 이렇게 답하지 않을까. '그런데 누구시죠?'


나는 토스트를 먹고 행복해지기 위해 가게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배를 채우고 싶었을 뿐이다. 가게 점장님 역시 나의 행복을 위해 음식을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그를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가 아닐까, 하고 지금에서야 이유를 생각해 본다.


어느 글에서 이런 질문을 읽었던 듯싶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글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먼 훗날 내 묘비명에나 쓰여있겠지만 가끔은 고심한다. 나는 정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걸까. 이 질문은 여차저차 다음 질문으로 귀결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러니 고심할 수밖에.


묘비명이 끝내 공란으로 남을 수도 있겠으나, 초고를 쓰듯 어설픈 문장 하나를 떠올려본다. 이런 묘비명은 어떨까. '따뜻한 토스트 같았던 사람'. 실제로 그렇게 적힐까 봐 살짝 두렵다. 그래도 맥락은 이해해 주리라 믿어볼 만하지 않은가. 나는 그다지 따뜻하지 않고, 세심하지 않으며, 감성적이지도 않다. 따뜻한 토스트 같은 사람으로 기억될 리 만무하겠지. 그래도 가끔은 떠올려보고 싶다. 따뜻한 토스트와 비 내리던 그날을.


나는 따뜻한 토스트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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