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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어쨌든, 2020년에도 살아있다.

치열했던 지난날들에도 불구하고.



2018년 10월, 꿈을 달성하다.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이상을 추구하면 그게 무엇이든 이루어질 것만 같던 20대 때, 커피를 업으로 삼았다. 커피 산지를 꼭 가겠다는 일념 하에 나의 불타는 열정을 쏟으며 우여곡절을 겪은 수년 후, 나는 그렇게나 원해왔던 브라질 출장을 실현시키며 20대의 꿈을 달성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출장을 시작으로 역마살이 낀 듯했다. 2018년 12월 런던, 2019년 1월 콜롬비아, 2019년 4월 다시 콜롬비아, 그리고 2019년 6월 베를린까지. 바꾸어 말하면 역마살 이라기보다 '한풀이'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내가 만들기도 때론 주어지기도 한 그런 실타래 얽힌 기회들을 놓치지 않겠노라 손을 꽉 잡았다. '아. 이 나날들을 위해 근 몇 년간을 얼마나 갈망하고 울부짖었던가.'라고 되새이며.


왜 그리 간절했냐고?

'내가 마시고 싶은 커피를 원 없이 마시며 살고 싶어요.' 라는 마음 하나로 시작한 것 그뿐이었다.


높은 직책도, 명예도, 부도 날 만족시킬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을 위해 수년간 근속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수확한 직후에 가장 신선한 상태에서 샘플 로스팅 후 먹는 커피를 가장 선호했고, 다양성 또한 그때 보장되기 때문이었다. 다양성이 보장된 테이블에서 '선별된' 커피의 신선한 산미와 단맛을 맛보는 것이야말로 내게 가장 큰 만족감을 가져다주는 '커피 행위'였다. 물론, 소위 말하는 '샘플링' 단계를 SEED TO CUP 채널 중 가장 애정 하는 작업이었기도 하다.


그렇게 정확히 1년 뒤인 2019년 10월 31일, 수많은 난관과 배움, 그리고 세계 도처에서 만난 멋진 사람들을 간직한 채 나는 회사를 떠났다. "None of this wouldn't been possible without your support!"라고 늘 감사 인사를 새기고 살아야 할 것 같은 마음 가짐으로. 아, 피폐해진 정신, 다크서클과 비루해진 건강도 그림자로 남았다.

 

왜 떠났느냐고?

'내가 마시고 싶은 커피를 원 없이 마시며 살고 싶어요.'


역시 이 마음 하나 그뿐이었다.


사람은 한 조직에 있다 보면 고이게 될 확률이 높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만의 성공 알고리즘을 찾게 되고 결국에는 자가 복제를 통해 똑같은 결과를 생산하게 될지도 모른다. 즉, 같은 조직에서 다른 페르소나를 가지고 무한한 도전을 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덧 나에게도 환경을 바꿀 때가 왔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이 직감하게 되었다.


퇴사 후 내게 남겨진 건, 앞으로도 함께 할 사람들, 샘플을 볶는 기계 이카와 한 대, 그리고 생두를 집에 보관하기 위해 구매했던 와인 냉장고였다. 그렇게 나는 함께 했던 동료들의 따스함 속에 나의 뜨겁고도 치열했던 ex-company와 이별했다.




2019년 11월, 독일에서의 한 달.


퇴사 직후의 한 달은 독일 베를린에서의 여행 같지 않은 여행이었다. 2018년 하반기부터 이어졌던 여러 출장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이 그 한 달을 나름 철저하게 준비했다. NEXT STEP으로 가기 위해 오밀조밀 잘 살펴보는 관문과도 같은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9월부터 콘텐츠를 뽑아내기 위해 약 4-5번의 사전 준비 미팅을 거쳤으며 거창해 보이는 프로젝트 시트, 사전 질문 리스트 + 리뷰 카테고리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다른 게 있었다면, 퇴사 이전처럼 전체 메일로 팀에 공유하거나, 사내 공유 목적으로 개설한 소위 ‘BEAN WIKI’ 사이트에 업로드하지 않은 정도랄까.


다시금 세 달 만에 출장을 가는 마음가짐으로 출국길에 올랐다. 서칭에 서칭을 거듭한 결과 여러 면모들을 나의 관점에서 직접 잘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 누군가 시킨 것도, 그렇다고 내가 급속도로 진행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닌데, 관성처럼 내가 만들어 놓은 직장인의 모습을 한 채 - 물론 유익한 시간임에 틀림없었으리라. 다만, 그 한 달로 깨달을 수 있었던 건 새로운 영감에 깊이 반응할 내 마음의 ROOM이 비어있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었다. NEXT STEP에서 발휘할 나의 호기심과 에너지는 격렬하게 소진된 상태였다. 그것을 드라이브로 삼고 추진하는 것이 나의 강점인데, 소진되면 어쩌자는 것인가. 그 씨앗이 소멸되기 전 긴급 대책이 필요했다. 즉, 다시금 발돋움하기 위해서 목적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피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다시금 발돋움하고 싶어 질 때, 어떤 것을 보고 눈이 절로 반짝일 때까지 휴식하는 것을 선택했다. 나는 다음의 계획에 대한 실행을 몇 달 더 미루기로 했다.




2019년 12월, 백수가 체질.


여행 직후의 한 달은 쉬어도 쉬어도 전혀 지루함이나 심심함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난 더 쉬고 싶어.’라는 마음만이 가득했다. 나는 여태껏 ‘일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퇴사 이후에 더욱 불행할지도 몰라. 지루해서 견디기 어려울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주 아주 큰 오산이었던 것이다. 나름 나의 강점이라 여기는 ‘조금씩 꾸준하게’란 가치만을 지키자는 생각으로 매일매일 정해놓은 최소한의 루틴을 행한다는 약속 이 외에 나머지 시간에는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피로사회는 성장이란 명목 하에 자기 착취의 사회다. 피로 사회에서 현대인인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


독일 철학자가 쓴 도서 ‘피로 사회’를 읽으며, “이거 내 얘기인데?”라고 수백만 번 생각했다. 몇 년 전에만 해도 '인간에게 한계는 없다.'라는 자기 계발서가 난무하더니, 이제는 '스스로를 착취하는 것을 자각하라!'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그득하다. 자기 계발서의 변화 트렌드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책에게 괜스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를 몰아세우고 채찍질하지 않으면 불안함이 가득했던 과거 청산 중에 만났기에 더욱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렇게 나는 빛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해야 돼서 무언가 하는 삶’은 정말 피하고 싶었다. 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이 되는 건 하고 싶은 걸 이루지 못한 것보다도 끔찍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새로운 환경에 놓인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건강한 에너지의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그 무엇과도 비교하기 어려운 벅찬 환희임을 비로소 진심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20년 1월, 여전히 살아있다.


어린이 시절에는 장수가 꿈이었다. 2020년을 무작정 떠올려 볼 때는 ‘2020년에도 살아있을까?’라는 생각을 주로 했다. 큰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좋으니 살아만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20대가 들어서서는 ‘2020년에는 나의 대담한 목표를 이룬 모습이고 싶어. 커리어적으로 말이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있어 매년 목표를 세우고 점진적으로 달성하는 일에 주력했다.


어릴 적 소박했던 꿈이 금세 호기로운 야망으로 가득 차도록 변화하게 되었던 그 과정의 계기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2020년에 나는 운이 좋게도 살아있다. 그리고 지금은  ’감사하게도 이제껏 매해 세운 작고 큰 목표들을 점진적으로 달성해 오긴 했지. 하지만 이제 그거 못 이루면 좀 어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피로했던 신체가 여유로워질수록 마음 속 불안감이 더욱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보다 빠르게 또 의도치 않게 나는 많은 영감에 다시금 노출되기 시작했다. 마치 몸과 정신의 유해한 것들이 빠져나가는 듯 몸이 가벼워지고 맑아짐을 느꼈다. 움츠려 들었던 어깨가 펴지고 짙어진 다크서클이 옅어지는 기분이었다. 사람, 자연, 글귀, 옷, 조형물 등. 어느 하나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나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6년 전만 해도 나의 생각을 글로 옮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여러 직무를 맡게 될 기회들이 생기면서 각종 '글'들을 접하다보니 나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절필하게 되었다. 숨통이 트이자 다시 6년 전처럼 글을 자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 종종 생겼다. 그리고 이것은 호기심으로도 이어지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자유롭게 상상력을 펼쳐 보기도 했다. '와! 이렇게 해도 재밌겠다.' 한정된 시간 내에서 한국에서 하고 싶은 것들도 생겼다. 그리고 다시 가게 될 새로운 나라에서의 나날들도 기대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진정 이런 가치들에 대해서 갈구하는 나를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을 위해 잠시 멈춤을 택했던 것이다. 


"I AM CRAVING FOR THE CURIOSITY!"




유럽을 좋아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업무적으로 알고 싶은 것도, 외국에서 사는 것을 경험해 보고 싶은 것도 있다. 그리고 가게들에서조차 드러나는 일종의 '당당함'이 그 이유 중 하나였다. 


크리스마스 연휴 때, '사람들이 주말과 공휴일을 보낼 때 우리는 당신이 더욱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일했으니, 우리도 잠시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라는 내용을 공지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환경적 요인들 또한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개개인의 가치관이 묻어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없다. 가게들도 가진 이 여유 있는 사고를 나도 조금은 가져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나 또한 아래와 같이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말이다.


I'm closing for the break so I get a solid amount of time with my people and energy during the festive time. But I promise 'll be back with rested, full, and regener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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