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장 그리고 이야기 하나
(이 글에는 영화 쇼생크 탈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은 오래전에 본 영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고, 어느 영화사이트에서는 최고의 영화 1위에 올라있기도 하죠. (지금은 순위가 내려갔을 수도..)
예전에는 영화의 주인공 “앤디”의 탈출에 열광했다면 지금은 앤디의 친구 레드의 삶을 보며 인간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 영화를 다시 보면 앤디가 주인공이 아니라 레드를 주인공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앤디가 탈출한 후, 레드에 의해서 시작되죠.
앤디가 탈출하고, 레드가 감옥 밖의 삶을 포기하고 달관할 무렵 가석방 심사관들은 레드의 가석방을 승인합니다. 감옥 밖으로 나왔지만 그는 이제 누군가의 허락 없이는 화장실도 갈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는 그런 자신의 모습에 망연자실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실제 겪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대학 신입생 때의 첫 강의 시간이었죠. 누군가가 교수님에게 손들고 화장실에 갔다 와도 되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교수는 한심하다는 듯이 “고등학생처럼 화장실 가는 것을 허락받을 필요 없고, 조용히 갔다 오면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와 영화 속 레드는 다른 점이 있었을까요?
우리는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런 것일까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어느 건축가는 말합니다. "학교의 건축 구조와 시스템이 똑같이 사용되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감옥이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나의 자유를 교묘하게 제한하고 세뇌시키기도 하지만 자기 스스로가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레드는 남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인간이 되었지만 앤디는 결코 변하지 않죠. “돼지우리 안에서도 하늘의 별을 쳐다보는 돼지가 있다.”라는 누군가의 말이 잊히지 않습니다. 영화 속 앤디도 레드에게 이렇게 말하죠. “기억해요, 레드. 희망은 좋은 거예요. 아마 가장 좋은 것일 거예요. 그리고 좋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가석방이 된 레드는 주어진 자유가 오히려 무섭습니다. 그 두려움은 먼저 가석방이 된 동료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죽을 날만을 생각하던 레드는 앤디와의 약속을 떠올리게 되죠. 약속한 대로 앤디는 레드에게 편지를 남겼고, 레드는 앤디를 만나러 가기로 결심합니다. 레드가 생애 두 번째로 법을 어기며 가석방 장소를 떠나 여행의 길에 오르는 장면을 볼 때면 항상 코끝이 찡해집니다. 나는 이제 이 영화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그 유명한 앤디의 탈출 만세 장면이 아니라, 레드가 버스를 타고 앤디를 만나러 가는 장면으로 바뀌었습니다.
나는 문득 내가 어린아이처럼 흥분해 가만히 앉아있지도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끝을 알 수 없는 긴 여행을 시작하는 자유인만이 느낄 수 있는 흥분 이리라.
나는 무사히 국경을 넘을 수 있길 희망한다.
나는 내 친구를 만나 악수하기를 희망한다.
나는 태평양이 꿈에서 본 것처럼 푸르기를 희망한다.
나는 희망한다...
레드의 삶에서 저는 저의 삶을 봅니다. 자유의 소중함을 모른 채 시간을 낭비하며 살다가 정작 소중한 자유가 주어져도 오히려 자유의 무게에 짓눌려버리죠. 결국 진정한 자유를 맛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할지 모릅니다. 레드는 자유의 가치를 아는 앤디라는 좋은 친구가 있었기에 자유를 향하는 용기를 냅니다. 그런 친구가 없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유를 얻는 단초는 아주 작은 곳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레드는 그 조그만 돌망치로 탈출하려면 600년은 걸리겠다고 말하지만 앤디는 20년 만에 해내죠.
20년도 짧은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작은 시작이 거대한 굴을 팔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굴을 통해서 자유로 나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저 소장의 벙찐 모습처럼 우리도 언젠가 세상을 향해서,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것들을 향해서 어퍼컷을 날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