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장 그리고 이야기 하나
참 많은 시험을 보며 살았습니다. 그 짧은 학교 시절에 그렇게 많은 시험을 봤다니 놀랍네요. 저는 시험 시간에 잠을 잔적도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런 애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겁니다. 그렇게 시험에 탈락한 많은 사람들이 별문제 없이 잘살고 있는 것 같네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2021년 12월 14일) 수능 점수 발표가 미완인 채로 발표되었습니다. 이유는 2022년 수능 생명과학 2의 한 문제에 대해 행정소송이 걸렸고 그 문제에 대한 효력 정지 결정이 내려진 상태입니다. 다시 말해서 문제가 잘못되었다는 소송이고 아직 결과가 안 나온 상태이죠. (12월 15일에 결정이 날 예정입니다.)
논란의 그 문제를 살펴보았는데..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로다.” 딱 이 말이 떠오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엄청 어려운 문제라는 것은 단번에 알겠더군요. 제가 이 문제를 보고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어렵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틀리기를 바라고 만든 시험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시험은 응시자가 틀리기를 바라고 만든 문제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어려운 문제이거나 신경 쓸 필요가 없는 함정이 곳곳에 숨어있죠.
시험의 목적은 응시자의 능력이 시험을 주관하는 곳에서 원하는 능력과 부합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 수능의 문제들이 대학 생활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능력을 판단하기 위한 것일까요? 아니면 박사 석사를 판별하기 위한 것일까요?
왜 매번 수능 출제 문제에 오류의 가능성이 계속 제기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응시자의 능력을 상식선에서 판별하려 하지 않고, 가능하면 많은 응시자들이 틀리기를 바라는 시험문제들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번 생명과학 2 문제에 대해 출제자 측인 한국 교육과정 평가원의 입장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서 괜찮다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잘못된 점을 인정한 셈이죠.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 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그놈의 “변별력”이라는 말로 어려운 시험이 정당화되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대학 입학시험들의 입장은 “정상적인 학교 수업 과정을 이수했다면 모두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믿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진짜 그렇다면 우리 학교 교육이 잘못된 것입니다. 레벨 조정에 실패한 것 이니까요.
저는 제 자신이 열등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험 결과만으로는 열등생이었습니다. 1%가 아닌 99%의 나머지 학생들을 열등생으로 만드는 시험은 나쁩니다. 진짜 훌륭한 사람들은 그 99%의 학생들 속에 있을 확률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021년 12월 15일 행정 소송의 판결에서 해당 문제의 오류를 인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