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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한장이야기 Aug 01. 2022

잊고 있던 영화 장면에서 깨달은 것

8월의 크리스마스 다시 보기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8월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어김없이 그 영화를 그립니다. 네. 맞습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입니다. 언제나 말씀드리지만 저는 가장 감성적인 영화 두 편을 꼽으라면 외국 영화로는 “러브레터”, 대한민국 영화로는 아직도 단연 “8월의 크리스마스”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감정과 이야기가 보였습니다. 잊고 있던 영화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여러 가지 상념의 조각들이 저의 마음을 감싸네요. 


8월의 크리스마스 다시 보기

잊고 있던 영화 장면에서 깨달은 것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고 안타까운, 두 주인공이 보여주는 사랑은 저를 항상 아련한 감성의 깊은 골짜기로 안내합니다. 그런데 이번의 드로잉은 다른 느낌의 감성에 빠져들게 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아버지에게 비디오테이프 플레이어의 사용 방법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다 사용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고 결국 주인공은 화를 냅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 (iPad air 4, Adobe Fresco)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루지 못하는 아스라한 사랑의 여운에 취해서 영화 속 죽음에 대한 선명한 이미지는 기억조차 못합니다. 하지만 잊고 있던 위의 그림 속 장면에서 죽음에 대한 무겁고 서글픈 인간의 반응을 볼 수 있습니다.


삶의 영역에는 젊은 자식이 서 있고, 죽음의 영역에는 늙은 부모가 가까이 있기 마련이죠. 하지만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속 부모와 자식의 위치는 반대입니다. 자식은 곧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늙고 총명함이 떨어진 아버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식은 더 불안하고 조급합니다. 누군가 돌봐주어야 하는 늙은 아버지는 이제 혼자 삶의 무게를 견뎌야 합니다. 그런데 비디오테이프 플레이어 조차도 혼자 조작하지 못하다니… 자식이 화를 내는 이유는 그저 아버지가 플레이어 리모컨 조작을 못하기 때문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다음 장면에서 우리에게 놀라운 삶의 가르침을 줍니다.


자식은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글과 그림으로 자세하고 쉽게 비디오테이프 플레이어에 대한 설명서를 직접 만듭니다. 아버지는 그 설명서로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남은 시간이 별로 없는 자식은 그런 소중한 시간을 그 설명서를 만드는데 기꺼이 소모합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데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의 책임은 온전히 가르치는 사람의 몫입니다. 배우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총명함까지 가져야 하는 의무는 없습니다.


저의 학교생활이 떠오르더군요. 공부를 못하는 책임이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에게만 있다는 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졌었습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고민 없이 교과서의 내용대로 가르쳤고,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탓하며 심지어 사랑의 매라는 구타를 했었죠.


영화 속 주인공은 아마도 죽는 그날까지 아버지에게 비디오테이프 플레이어의 조작 방법을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할 겁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가르치는 상대방을 사랑하기 때문이죠.


상대방을 사랑하면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은 마음을 참아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그녀에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그저 무심하고 여자 마음도 모르는 나쁜 놈으로 기억하게 놔둡니다. 그런 남자로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 그녀를 위한 길이라고 수만 번 고민하며 밤을 지새웠을 겁니다.


내 기억 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 (iPad air 4, Adobe Fresco)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 (iPad air 4, Adobe Fr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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