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독원 Aug 08. 2023

<안녕이 오고 있어> : 경계를 넘어서는 시간

그러게, 그때 생각이 난다야

하양지, <안녕이 오고 있어>, 문학동네


분명 아는 동네다. 언젠가 지나쳐 본 적이 있는 동네일 것이다. 하지만 회한에 잠기는 것도 잠시이다. 이내 매일 해내야 하는 일들이 떠오른다. 현재의 일상을 방치할 수 없다. 책임과 의무에 치여 자유다운 자유를 누리던 시절이 꿈처럼 멀어졌다. 회한은 습관이 되었다. 


<안녕이 오고 있어>는 과하게 뜨겁고 불필요하게 차가웠던, 그 어설프고 자유로웠던 시절의 모습을 4명의 15살 소녀들을 통해 그려낸 작품이다. 매사 시니컬한 대응이 습관이 된 듯한 시영, 늘 애정과 관심에 목말라 있는 채린, 가난한 집안에서 어린 두 동생을 챙기며 지내는 송이, 활기찬 모습으로 분위기를 주도하지만 철부지 같은 면도 있는 지우는 절친한 친구 사이다. 그리고 이들 4인방 중 지우가 전학을 가게 될 거라는 소식을 접하며 생애 첫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내년엔 넷이 아니네.”

“지우 가기 전에 많이 놀아야겠다.”

“하아……. 이렇게 늙어가나봐.”



말하지 않았던 마음


4인방은 지우와의 이별을 앞두고 놀이공원에 가기로 한다. 기말고사와 축제가 예정되어 있지만, 그들에게는 더 중요한 사건, 생애 첫 이별이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사고는 예고편 없이 찾아온다. 계절을 막론하고, 상황을 살펴주지 않은 채로 막 머리부터 들이밀어 사람을 넘어 뜨린다. 발단은 화장실에 간 채린을 기다려주지 않으며 시작된다. 자신을 두고 움직이려는 친구들에게 상처를 받은 적이 있던 채린은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당시의 공기와 쓸쓸했던 기분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시영은 서운했으면 진작 말하지 그랬냐거나, 별 거 아니니까 말 안 한 걸 거라는 식으로 냉정한 대답을 한다. 이후에도 시영은 채린이 꺼내는 화제에 대해 냉소로 응대한다. 결국 폭발한 채린은 그동안 설움을 시영에게 쏟아 내며 말다툼이 벌어진다. 시작된 갈등은 이내 장난스러운 폭력으로 번지게 된다. 고드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견이 갈라지는 상황에서 시영이 냉소와 경멸로 응수하자, 채린은 고드름을 향해 키링을 던진다. 채린의 키링은 4인방이 다 같이 맞춘 기념품이었고, 고드름은 시영의 바로 옆에 떨어져 산산조각 난다.


하양지, <안녕이 오고 있어>, 문학동네


시영과 채린의 신경전이 극에 달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자친구의 연락을 확인하고 싶지만 자꾸 제재를 당했던 지우마저 언성을 높인다. 이 흐름을 끊은 건 송이였다. 놀이공원에 다녀오기 위해 가난한 살림에 옷까지 사고, 먼 길을 움직여야만 했던 송이는 “나 집에 갈래” 하고서, 미련도 없이 돌아 선다. 이에 이들의 첨성대 경과 한복 빌려 입기 이벤트, 저녁 먹기의 계획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다. 4인방은 ‘밝고 시끄럽고 화창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어둡게’ 귀가한다.



애써 내보이는 마음


“나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거든. ...마음을 모르는 건 잘못일지도 몰라. 네가 싫다면 나 혼자 가고... 왜 말이 없어?"


누구나 품고 있는 생각임에도 웬만하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을 말이다. 학교에서조차 서로 어색하게 지내던 상황에서, 지우가 갈등을 끝내자며 꺼낸 말이다. 말이 족쇄로 돌아올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온전히 친구들을 보고 싶은 마음만을 담은 말이었다. 지우는 시영이와 함께 채린의 집으로 가 채린을 불러낸다. 같이 가고 싶다고, 같이 송이를 보러 가자고. 갈등은 복잡했지만 이들은 자연스레 서로에게 다가가고 이전의 친분을 회복한다. 


갈등 해결의 서사는 단순하고 억척스러웠다. 하지만 이들의 세상에서, 애정으로 얽힌 친구 사이에 설득력과 치밀함은 필요치 않은 듯하였다. 누군가는 하고 싶었던 말을 했고, 누군가는 납득했다. 그래서 사과했다. 이들에게 그 이상의 격식은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언제 다퉜냐는 듯 서로의 상처를 고백하고 미래를 낙관하는 장면은 이별을 대하는 성숙한 태도와 이들의 성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양지, <안녕이 오고 있어>, 문학동네


경계를 넘어서는 시간 


4인방은 첫 이별을 경험하며 각자의 이별의 ‘의미’를 챙겼다. 곰곰 생각하면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늙기 시작하는 거다. 물론 어느 시기까지는 성장기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결국은 노화이다. 탄력 있던 살이 점점 생기를 잃고, 시력은 떨어진다. 먹는 건 꼭 필요한 일인데 역사를 만들며 현재까지 오면서 너무 많은 상징과 의미, 역할이 생겼다. 밥 한 번 먹자는 말이 얼마나 많은 인사를 대신하게 되었나. 


아침과 점심, 저녁을 함께 하는 구성원도 달라지게 되었다. 그렇기에, ‘늙어 간다’는 말은 살아 있는 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다. 심란함에 울고 어설픈 화해로 웃음 짓는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늙어가나 봐”란 대사를 비웃을 수 있는 이가 있을까, 모두가 그 동네를 거쳐 왔는데.■


하양지, <안녕이 오고 있어>, 문학동네


* 본 글은 만화규장각 > 웹진 > 만화리뷰에 수록되었음을 밝힙니다.

작가의 이전글 <푸쉬오프> : ‘변화를 위한 여정’의 지난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