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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맘 Dec 02. 2023

'적당히'라는 기준.

다정한 사람도 무심한 사람도 표현을 잘하는 사람도 못 하는 사람도 다 괜찮다. 각기 다른 한계를 끌어안고 사는 셈이니까.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정지아-


술을 참 좋아했다. 현재형이 아니라 과거형을 쓴 이유는 지금은 아니여서다. 가끔 청량한 맥주의 목 넘김과 쓴 소주가 생각날 때도 있지만 아주 드문 경우다. 잘 튀겨진 치킨에는 맥주. 불판 위에 맛있는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막창에는 소주. 안주를 보며 술 종을 떠올리는 식이다. 


오래전부터 나를 알고 지낸 사람들은 어색해한다. 술이라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기에. 참으로 어색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365일 중 360일은 술과 함께 했으니. 전날 먹은 숙취를 잊고자 아침 해장술을 먹어야 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술과의 동행이 이었다. 


어느 날 술이 그만하자고 했다. 일방적인 이별통보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고집을 부리며 부어라 채워라 술을 들이켰다. 결국에는 몸에서 이상신호를 보내왔다. 땀으로 온몸이 눅눅해졌고 손과 입술이 떨렸다. 잠깐 정신을 잃고 깨어나 두려움을 마주했다. 이러다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의지와 상관없이 정신을 놓아 버린 적은 처음이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그날 겪은 기괴한 일을 전했다. 남편은 '적당히'는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술을 완전히 끊어 버리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입에 담기가 버거운지 뒷말을 흐렸다.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안다. 모른다고 말한다면 그건 정말 모르는 게 아니다. 모른 척하는 거지. 그렇게 술과 아주 긴 이별을 했다. 주량으로 따지면 소주 서너 병은 거뜬히 먹을 수 있는 나였지만 이제는 소주 서너 잔이면 정신이 아딸딸하다. 맥주는 주량측정이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맥주 한 캔이면 얼굴이 붉어진다. 술이 채워지는 한계선을 달리했다. 


술을 잘 마시든 못 마시든. 함께 술잔을 기울이든 기울이지 못하든 다 괜찮다. 우리는 각기 다른 한계선을 지니고 살고 있으니까. 


연말이라 모임자리에 하나둘 불러 나간다. 그곳에는 여전히 소주와 맥주 가끔은 와인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기분 좋게 마시고 싶어 한두 잔 술잔을 받는다. 딱 거기까지여야 하는데. 그 이상은 안되는데. 분위기에 취하고. 이야기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술에 취한 내가 있다. 술을 싫어한다고 말했지만 싫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의 뇌에게 그리 알고 있으라고 훈련을 시키고 있는 건지도. 그럴지도. 


'적당히'는 어느 한계선에 맞추어야 하는 걸까. 적당히의 기준은 어디가 적당한 거지. 벌써부터 술잔의 한계선에 애매모호함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적당히가 얼마인데. 얼마면 되는데. 술이란 녀석 참으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든다. 


정지아 작가의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를 읽으며 입맛을 다시는 나를 발견한다. 술과의 추억을 마시며 책은 그렇게 이틀을 나와 함께했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번 모임에서는 적당히 술잔을 기울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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