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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맘 Dec 01. 2023

12월 30일

바람이 분다. 마당에 심은 복숭아 나뭇가지가 쉼 없이 휘청인다. 가만히 두면 나무가 곧 뿌려질 듯 위태로워 보인다. 바닥은 떨어진 나뭇잎이 질서 없이 나 뒹글고 있다. 날씨가 영하로 떨어진 주말 토요일 오전 우리 집 마당 풍경이다. 달콤한 냄새가 난다. 서럽고 차가운 마당을 보며 달콤한 냄새라니. 의식의 흐름을 종잡을 수없는 나다. 그 달콤한 냄새 끝에는 동짓날 팥죽이 서성거린다. 이번 동짓날에는 오일장에서 사 온 팥죽을 먹어야겠다는 다짐. 작년 편의점에서 산 팥죽은 내 스타일은 아니라는 아쉬움. 곧 어둠이 낮보다 길어질 거라는 엉뚱함. 섣달그믐에는 마당에 놓인 슬리퍼를 신발장안으로 집어넣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한다. 


섣달그믐 양괭이 귀신은 집에 와서 아이들의 신발을 신어보고 발에 맞는 것을 신고 가버리는데 그러면 그 아이에게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믿어 신을 감추거나 뒤집어 놓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아이들에게 양괭이 귀신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니 이미 알고 있다. 즐겨보는 만화에서 단골 캐릭터라고 한다. 남편은 양괭이 귀신 퇴치 방법까지 상세히 말해준다. 마당에 구멍이 많은 체를 벽이나 장대에 걸어 넣으면 양괭이 귀신이 구멍을 하나둘 세다가 날이 밝으면 사라진다고. 나만 몰랐던 이야기라니. 그리고 그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얘진다고 자면 안 된다고. 그 이야기는 나도 알고 있다. 어릴 적 어른들이 자주 하는 말이었다. 양력설을 지내는 큰집에는 전날 친척들이 모두 모인다. 거기에는 또래 사촌들도 여럿 있다. 사촌들과 한참을 뛰어놀다 따뜻한 방 안으로 들어오면 잠이 스르르 쏟아진다. 그때 어른들은 말한다. 

오늘 자면 눈썹이 하얘진다고. 순수하고 순진했던 어린 우리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밤을 새우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잠이 들곤 했다. 잠에서 깨어난 우리가 한 행동은 모두 동일했다. 거울을 향해 뛰어가 눈썹을 확인하는 일. 웃기고 재미난 이야기다. 나에게는. 


섣달그믐은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날이다. 집안 청소를 하고 가족들 모두가 손잡고 동네 목욕탕에 들러 한 해의 묵은 때를 씻어내고. 돌아오는 길 바나나 우유든. 초쿄 우유든 손에 하나씩 들고 걷는다. 그 해의 나쁜 기억들은 그 해에 남겨두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날. 그날이 바로 12월 30일이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들의 실생활이 변하여도 변하지 않는 것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괭이 귀신 퇴치법이나 눈썹 새는 날을 기억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지만. 한 해가 저물어가는 마지막날 전국 해맞이 명소에는 새해 첫 일출을 보러 사람들로 붐비고. 제야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드는 모습에서 그들이 바라는 새해의 다짐은 비슷한 무게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묵은해의 모든 일을 깨끗이 정리하고, 가볍고 설레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거. 방법이 조금 달라졌을 뿐 우리들은 여전히 섣달그믐을 보내고 있다는 거. 바람이 부는 마당을 보며 생각을 깁어본다.


 아이들이 바람이 부는 마당에서 뛰어 논다고 아우성이다. 감기가 떨어져 나간 지 얼마 안 된 터라 절대 안 된다고 말한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아이들에게 해본다. 11월 30일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신비아파트 시즌2가 시작하는 날이란다. 11월 30일이 아니고 12월 30일이라고 말하니 대수롭지 않게 아 그래?라고 답한다. 대화의 흐름이 매끄럽지 않다. 말하고 싶은 거. 듣고 싶은 게 다른 아이들과 나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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