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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롱 Nov 13. 2023

피구 시합에서 제일 먼저 죽기

[경고]

이 글은 매우 유치하게 작성될 예정입니다. 따라서 평소 간지러움을 잘 타는 분이라면 읽지 말 것을 권장드립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읽으시기로 하셨다면 부디 행운을 빕니다.


쫄보야, 안녕. 오늘은 제목만 봐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너도 잘 알겠지? 혹시 너도 나처럼 피구 시합을 싫어하니?


내 얘기를 먼저 하자면 나는 유독 공놀이가 싫었어. 무서웠거든. 어느 날 운동장을 가로질러가는데 축구공 하나가 저 멀리서 날아오더니 내 안경을 갈궜어. 그 충격으로 안경 콧받침이 내 얼굴에 상처를 만들었지 뭐야. 그 작은 상처가 얼마나 아프던지, 그날 이후 줄곧 공을 피해 다녔던 거 같아. 누군가 공놀이를 하고 있으면 저만큼 멀리 떨어져서 걸었어. 그럼에도 공이 나한테로 오거나 심지어 내 머리를 꽁 박고 갈 때가 많았지.  


내 친구 중 한 명은 그런 나를 보며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어. ‘공이 오는 것이 보이면 피하면 되잖아. ’라고 말이야. 근데 공이 무서워서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겠는 걸 어떡하니. 저만치서 큰 포물선을 그리며 다가오는 공이 보이면 피하기보다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어. 그러니까 늘 맞았겠지.


난 그렇게 피구가 싫더라. 체육시간만 되면 선생님한테 피구하게 해달라고 조르는 애들이 있었는데 그 말이 달갑지가 않았어. 사람을 공으로 치거나, 그걸 피해야 하는 이상한 게임을 꼭 해야 하나 싶었거든. 그래서 내 딴에는 방법을 찾았는데 빨리 공을 맞거나 선을 밟아서 반칙을 하는 거지. 그렇게 내 경기를 끝내버리는 거였어.


그럴 때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야유를 보냈는데 내가 그런 행동을 반복하자 더 이상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어. 그러더니 나와 비슷한 친구들이 공을 맞거나 선을 밟으면서 비슷하게 게임을 포기했어. 그런 식으로 게임을 포기하면 핑곗거리가 있어야 하잖아. 우리는 몸이 약해서 그렇다고 말했고 곧 반 친구 모두가 우리를 ’약한 무리‘로 보게 되었어. 절반 이상의 반 얘들이 운동장에서 까맣게 탈 때, 몸 약한 애들은 그늘에 앉아서 경기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수다를 떨곤 했지.


근데 쫄보야. 벤치에 앉아 땀 한 방울 안 흘리며 편하게 있으면서도 그렇게 마음이 찜찜하더라. 열심히 땀 흘리며 경기에 참여하는 얘들이 내심 부럽기도 하고. 웃기지 않아? 당장 다시 게임에 참여하면 되었을 텐데 그렇게 하기는커녕 일찌감찌 공을 맞고 나와놓고 원 없이 뛰어다니는 얘들을 부러워한다는 게 말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공이 무서웠어. 근데 그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몇 가지를 놓친 것 같아. 무서운 것을 안 하는  대가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기회, 친구들과 함께 땀 흘린 추억, 공부 말고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놓쳤지. 게다가 최악인 건 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기분을 얻었다는 거야.


이게 한 번으로 끝나지 않더라. 너한테만 말하는 건데, 그 어릴 적  피구시합에서 느꼈던 찜찜한 기분 있잖아.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비슷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어. 어떤 일이 무섭고 하기 싫어서 피해버릴 때 꼭 그런 기분이 들어. 그 기분이 반복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어.


찬찬히 생각해 보니까 회사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나는 피구시합에서 했던 행동을 그대로 하고 있었지 뭐야. 무서우면 ‘공 빨리 맞고 죽기’ 라든가 ‘선 밟고 게임 끝내버리기’와 같은 선택을 하고선 혼자 찜찜해했던 거 같아.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그런 행동을 반복되고 있었어. 지레 겁먹고 게임을 피해버리는 일들의 반복, 무엇을 시작하기도 전에 금방 포기해 버리는 습관 말이야. 그런 식의 일이 반복되면서 결국 나 자신이 미워지고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지.


쫄보야, 나는 요즘 나한테 떳떳해지기 위해서 아주 작은 용기를 내보고 있어. 무서웠던 것들을 피하지 않고 시도해 보는 거지. 그렇게 시작한 일들이 몇 가지 있단다.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공놀이도 했어. 상대가 던진 공이 내 눈앞에 올 때까지 눈을 감지 않고 시선을 고정하는 연습도 했지.


너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굳이 무서운 것에 도전해야 하냐고, 그냥 찜찜한 채로 살아도 된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괜찮지 않냐며 말이야. 그런데 쫄보야. 계속 찜찜한 기분으로 살면 어느 순간 너 스스로를 미워하게 될 거야. 그리고 네가 한 선택들을 후회하는 날이 반드시 올 거란다. 그래서 나는 네가 지금이라도 두려움에 못했던 시도들을 하나씩 해봤으면 해. 결과가 어떻든 간에 용기를 냈다는 자체만으로 그 찜찜한 기분이 가실 거고 너 자신에게 칭찬을 보내게 될 거야.  


네가 그 첫걸음을 뗄 수 있도록 다음번에는 내가 했던 실패 모음집을 들고 올게.

그때까지 잘 있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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