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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S Jul 26. 2023

여행은 뭘 했는지보다 어떻게 기억하는지가 더 중요해

일본 여행에 대한, 한달 간 숙성된 이야기

들어가며


일본 여행에 대한 글을 오래 미뤘다.

“일본 여행 후기글 언제 올릴거야~”

내 브런치를 종종 찾아주는 친구의 말에 아차, 하고 주간 계획에 몇 번이나 일본 여행에 대한 글쓰기를 집어넣었건만.

결국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 한 움큼 씩 기억을 더듬는 일이란 쉽지 않았다.

다함께 나온, 잘 나온 사진을 추리고 보정해서 보내주겠다던 약속도 결국 드라이브에 통째로 넣은 뒤 링크로 공유하기에 이르른다.

이미 기억은 무질서해지고 그 날의 뜨거웠던 마음은 식어 버린 것만 같다.


여행, 그 이후


그래서 여행 이후의 이야기를 잠시 풀어본다.

이번 일본 여행은 나의 배수의 진이었으므로, 한국에 돌아온 내 지갑 사정은 빈털터리일 수밖에 없었다.

공항 버스에서조차 깜빡 잠이 들어, 엉뚱한 곳에 우두커니 내렸다가 겨우 엄마와 오빠가 차를 타고 데리러 왔다.

피로함과 억울함, 자괴감이 짜증과 칭얼거림으로 새어나오고, 몰골은 처참한 나를 보고는, 오빠가 말도 없이 카톡으로 용돈을 보내온다.


“너 불쌍해서 주는거다.”


자존심이 일어서기도 전에 이미 궁해있던 나는 덥썩 송금을 받고,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취업하면 갚겠다고 소리친다.

그 돈은 오늘까지도 귀중한 생활비가 되어주고 있다.


그러고 나서 한 달 간, 동아리 운영진 활동을 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포트폴리오도 만들고 JLPT도 치고…

이리저리 나름의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인생 5개년 목표도 세웠다!

여행 때문은 아닐지 몰라도, 그 이후 나의 삶은 좀더 긴밀하고 단순하지만 밀도있는 시간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때때로 유튜브와 기타등등 기상천외한 딴 짓에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으나 5개년 계획을 기반으로 주간 계획표를 짜고 관리하기 시작하자, 그런 무질서함도 차차 정돈되어가는 중이다. 물론 재정적으로나 취업 시장의 측면에서나 나는 여유로워서는 안되는 청년 실업자일 뿐이지만, 이런 변화들은 나에게만큼은 혁명적이지 아닐 수 없다.


또래 누구보다도 자기개발 서적에 심취하던 나였으나, 언제나 내 인생과 내 미래는 안개낀 듯 흐릿했다.

이제는 좀 명확하게 보인다.

요즘은 아주 단순하게 하루하루의 목표를 세운다. 5개년 목표의 카테고리는 총 5개인데, 하루에 카테고리 중 3가지만 실천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소요 시간을 넉넉히 측정해서, 하루 목표 하나하나가 딱 적합한 난이도다. 물론 하위 목표를 달성하느라고 정신없이 바쁘다.


지난 여행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진심인 일상의 시간들


요즘 사람들 여행에 진심이다.

일본, 동남아 항공편이 많아졌기도 하고, 코로나19로 여행을 가지 못했던 사람들의 보상심리도 작용하는 듯 하다.

일본 여행은 특히나, 요즘은 거의 제주도 가듯이 다녀오는 것 같다.

필자의 친오빠도 금주 여름휴가로 친구들과 일본 여행에 갈 예정이라고 한다.


여행에 대한 글을 작성하기로 마음먹는 동안, 여행을 기록하는 일은 정말 그 여행 속에서 생생하게 느낀 그대로를 적지 않으면 의미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 중의 몸과 마음의 상태가 일상의 것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내 경우 친구들과 오롯이 함께 한 해외 여행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혹여 갈등이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부분도 있고, 분위기가 쳐지지 않도록 애쓰기도 했다.

집에서는 일상적인 행동들도 눈치껏 숨기기도 하고.

불편하지는 않은 선에서, 또래 친구들과의 일상과 삶을 동기화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친구들과의 여행은, 내 마음 속 가족의 지분을 타인과 균형있게 맞추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동질감을 줘서 안정감을 주기도 했다. 일본, 도쿄는 더군다나 우리나라와 크게 문화적 이질감이 없기도 했고.


이 모든 감상평은 여행에서의 구체적인 사건, 사고, 말과 행동들이 차분히 가라앉아, 정제된 마음으로 내려다보는 감상이다.

여행이 준 즐거움과 행복감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상의 평온함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긴 해외여행을 다녀온 뒤,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상 생활이 문득 지루하고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는 지인도 있었다. 백수의 삶을 사는 나로서는 한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라 새삼스럽게도 여행의 특이점을 깨닫고 있지 못했더랬다.

여행에는 돈이 든다. 배낭여행이 아니고서야, 비행기든 열차든 배든 이동수단에 돈이 들고, 숙박에 돈이 든다. 직접 요리해 먹을 수 없으니 식비도 든다.

소위 여행은 돈으로 경험을 사는 행위이다. 그런데 여행이 주는 경험은 과연 항상 좋은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험은 뇌에 쌓이는 지식의 일종이다. 습관화되지 않은 이상, 모든 경험은 새롭고 설렘을 줄 수 있다.

즉 여행이 아니더라도 새롭게 경험해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주변에 널리고 널렸다.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여유로운 시간에 집중해서 들여다보면 그것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사람도 그렇다. 아주 잘 알고 지낸다고 생각했던 가족들도, 눌러앉아 2-3시간 씩 깊이 대화하다보면 새로운 것들을 알게된다. 친구, 연인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전혀 관심없던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다.

여행만이 삶의 활력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게 활기를 주는 새로운 무언가로 하루 24시간을 채울 수 있기에, 사람들은 해외여행에 빠지는 것이다.

낯선 문화, 풍경, 언어로 뒤덮힌 곳에서 얼마나 많은 도파민이 분비되겠는가.


여행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새로운 환경과 공간은 언제나 인사이트가 된다.

새로움 자체에 매료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의 안정된 삶을 꿈꾸는 사람도 아주 많다.

하지만 낯선 환경은 언제나 환상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풍경과 쾌활한 사람들, 문화적 다양성 너머에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 못지않은 갈등이 숨어있고는 한다.


우리 사회가 가진 많은 민낯들에 하루하루 뉴스를 보면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폭우와 교권 하락. 두 단어가 내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사실 크게 미동치 않는다.

그러나 오송 참사, 서이초 사건. 낯선 고유 명사를 함께 붙이는 순간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사회 문제’라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저 너머의 것으로 여겨지던 것들이 나의 인지 영역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오송의 자리에는 내가 사는 지역의 이름이 들어갈 수도 있다.

서이초의 자리에는 내가 다니던 학교의 이름이 들어갈 수도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현실에서 잊고 있던 우리 사회 문제를 마주한다. 그리고 그 아픔은, 생각보다 너무도 크다.

그것이 모든 사회 문제를 잊고 방목한 책임이다. 우리는 때때로 그 아픔과 불편함 때문에 사회 문제에서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며, 심지어는 뇌조차 그러한 개념을 회피하도록 한다고 한다. 감정의 전이는 생각보다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개개인의 삶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당연한 반응이다.

여행이 늘어난 것도 어쩌면 개개인의 삶이, 그 일상적인 피로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이런 현상이 좋지 많은 않게 생각되는 것이다.


일상과 삶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평온함을 되찾을 수 있을까.

나 자신의 평온함을 찾는 것도 어려운데, 사회의 평온이란 신기루같기만 하다.

우리 세계는 혼돈과 무질서함으로 치닫고 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고, 앞으로에도 자명한 진실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짧기에, 나는 조금이나마 나의 삶을 질서있게 하고자 오늘도 애쓴다.



지난 여행의 기억을 잊은 것도, 다음 여행을 기약하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삶이 너무나도 고루한 일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여행을 결심하는 것도 하나의 용기이다. 이 모든 혼돈을 잠시나마 잊고,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하던 어린 시절로 회귀하고 싶은 마음을 실천하는 용기.

내게는 용기가 부족한 듯 하다. 돈도 부족하다.


다음 여행은 꼭 여행 중에 글을 작성해야 겠다.

브런치에는 가능한 다듬어진 글을 올리고 싶었지만, 이 주제에 대해서는 너무 오래 미뤄왔기 때문에 이만 글을 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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