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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S Aug 09. 2023

"공백기에 대체 뭘 하셨나요?"

 면접 단골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다

지난 10개월 간 아무 이력이 없으시네요.

대체 뭘 하며 보내셨나요?





들어가며


취업을 앞둔 청년들에게 면접은 시장 한 가운데에서 가격 매김을 당하는 자리나 다름없다.

내 노동력과 돈을 바꾸기 위해 앞으로 피할 수 없는 일임을 알지만,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쓴 그토록 많은 시간과 비용은 면접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모든 절차가 빠르게, 무심하게 끝난다.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나를 사려는 회사가 없다니!


상품으로 비유할 때, 공백기란 나를 진열(혹은 판매)하지 않은 기간이다. 소비자(회사)로써, 상품이 1년 가까운 시간동안 진열되지 않았다가 다시 등장했다면 무슨 이유인지 의아할 수 있다. 상품의 신선도, 내구도 등 시간에 따라 가치가 변하는 모든 요소들을 고려할 것이다. 하나하나 꼼꼼히 생각해볼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청년들은 '공백기'를 묻는 질문에 답하며 발가벗겨진 기분을 받는다.


30초에서 1분 가량의 짧은 시간동안 몇 개월의 경험과 시간을 녹여내는 것은, 즉흥적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 대한 복습이 이루어진 상태여야 한다. 그래야만 회사가 원하는 형식으로 답변할 수 있다. 물론 회사가 원하는 답변과 형식을 달달 외워도, 자기성찰이 되어있지 않다면 뻔한 대답이 나올 뿐이다.

그렇다면 어쩌면 회사는 공백기의 유무나 길이 자체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원자가 제대로 자기성찰을 마친 채, 새로운 환경에서 재시작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인지도. 



오늘 글의 주제는 면접이 아니다.
최근 면접을 오랜만에 겪으면서 고민한 '공백기'에 대해 다른 시선으로 고민한 흔적이다.
면접을 중심으로 같은 글을 몇 번이고 고쳐 쓰다가, 문득 멈춰선 주제(공백기)로 다시 글을 썼다.
여러분도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읽어보시고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보신다면 좋겠다.






무직 10개월, 그러나 공백기는 아닌


나는 지난 인턴을 마지막으로 약 10개월을 쉬었다.

취업 시장에서는 공백기라고 부르는 시간이다. 나는 분명 10개월의 하루하루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며 지냈는데, 참 서운한 단어이다. 자격증과 사이드 프로젝트, 포트폴리오 정비를 중심으로 어찌저찌 풀어내 결과적으로 면접에서는 문제없이 넘어가긴 했다.


회사란 나의 전문성과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에, 그것을 검증하고 싶어한다. 내 임금에 맞는 전문성과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지 말이다. 이런 입장은 앞서 밝힌 것처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면접 준비 과정에서 공백기를 어떻게 포장하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문득, 이 질문이 고용주가 아니라 내 스스로에게 던져진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대답할까, 의문이 들었다.




나 님, 지난 10개월 간 대체 뭘 했나요?


한 번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봤다.

취업을 위한 답변에서보다 다양한 것들이 나오긴 했다.


브런치에 글 발행하기 시작함.
필라테스를 처음 배움. 4개월했지만 재정난으로 지금은 못하고 있음.
청소를 습관화하려고 노력함. 여러 삶의 흔적들을 정리함.
매일 아침 식물을 돌보며 식멍하는 취미를 만듬.
죽을 뻔하던 커피나무와 올리브나무, 치자나무를 정성스레 돌봐 살려냄.
동아리 운영진으로 약 6개월 간 격주 토요일에 세션 참여하고 잡다하게 일함.
1년 반된 사이드 프로젝트에 다양한 공을 들임.(아직 출시 안함…)
남자친구와의 2주년을 맞이함.
친구랑 절연할 뻔 했다가 다시 화해함.
난생 처음 비행기 놓쳐서 공항에서 노숙함.(도쿄 4박5일 여행)


그러나 뒤죽박죽이다. 그저 정말 내가 해왔던 것들을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는 서술 목적이 불분명해, 객관적으로 어떤 경험/활동이었는지가 모호하다. 또 수동적 항목과 능동적 항목이 구분되어져 있지 않다. 그저 살다가 맞닥뜨린 것인지 스스로 경험하게 된 것인지가 모호하다.


즉, 되는대로 살아오느라 지난 시간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취업을 위한 대답은 잘 준비했을지라도 스스로에게의 대답은 제대로 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좋은 결과를 낸 면접을 끝내고도 마음이 심란했던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을 통해서 나의 지난 '10개월'을 조금이나마 정리해보고자 노력해봤다.



시간순으로

- 11월 : 전직장 지원분들과 제주도 워크샵, 연인과 남아 마저 여행, XXX 판정(10월)

- 12월 : ???

- 1월 : 필라테스 시작(1-4월), 개인 프로젝트 니티 시작, 올해 목표 계획

- 2월 : 동아리 리쿠르팅

- 3월 : 동아리 활동 시작

- 4월 : 동아리 활동 진행, 필라테스 끝, 개인 프로젝트 니티 마무리

- 5월 : JLPT N3 공부, 컴퓨터 활용 첫 접수(미응시), 5개년 목표 문서 작성

- 6월 : 도쿄 여행(4박 5일)

- 7월 : 취업 준비에 전념, JLPT N3 시험, UX 리서치(FGI)


- 시간 무관 : 청소 습관 / 식물 가꾸기 / 등 

 

떠오르는 대로 적어봤는데, 연인을 제외한 관계에 대한 이벤트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일기에도 관계에 대한 기록을 별로 하지 않는 편이라, 더더욱 하루하루의 만남이 장기기억으로 전환되지 않은 것일 것이다. 내게 친구가 별로 없는 이유는 아마 일상적인 기억을 스스로 남기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소중한 친구들과의 일상이 하루하루 무심하게 흘러가고, 어쩌다 사진으로 보지 않는 이상 스스로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관계관이다.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만난 날이나 주기를 기억하지 못하니 평소에 먼저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 것이다.




개인사를 중심으로

11월 XXX를 판정받은 이후 매일 약을 복용하고 있다.(민감한 사안이라 아직 밝히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란다)

오랜 시간 익숙했던 생활 습관도 이를 기점으로 많이 (좋은 방향으로) 변화했다.


10개월은 새로운 성질의 나를 스스로 다시 받아들이고 길들이는 시간이었기도 했다.

새로운 성질의 나는 뭐든지 이전과는 다르게 반응했기 때문에 스스로가 낯설면서도 설렜다.
그러나, 약을 실수로 복용하지 않은 날은 의도치 않게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던 나를 몇 번이나 마주했다. 나는 약을 먹지 않은 내가 무척 싫었기에, 그 때마다 감정이 크게 동요했다. 몇 번이고 스스로 상처주고 밀어내기도 했다.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 하나의 사다리가 놓여져 좋아라 했더니, 사실 그 사다리 마저도 현실이었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자아의 변화와 성찰은 나에게 귀속되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은 내 자유지만 그 근원적인 쓸모는 내게만 있기에. 타자에게 답하는 과정에서 자아성찰의 결과는 결국 그 질문의 의도, 즉 타자의 목적에 의해 필터링된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가?


면접관 나와 면접자 나에 이어, 제 3의 내가 등장한다.

나는 타자의 역할인 질문을 통해서 스스로의 삶의 가치를 평가하고 싶은 것이다.


다시 '공백기'에 대한 회사의 목적을 들어보자.

회사란 나의 전문성과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에, 그것을 검증하고 싶어한다. 내 임금에 맞는 전문성과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지 말이다. 


이번에는 회사의 자리에 나를 집어 넣어본다.

나(면접관)란 나(면접자)의 전문성과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에, 그것을 검증하고 싶어한다.
내(면접자) 임금에 맞는 전문성과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지 말이다. 


면접관인 나는 내 육체의 경영자다. 나라고 하는 회사(공장)를 운영하여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사람이다. 그 가치는 재화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무언가일 수도 있다. 이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여기서 제 3의 나는 새로운 의문을 제시한다.



나(면접관)는 어떤 가치를 위해 일하는가?

또 (면접자가) 어떤 가치를 위해 일하기를 원하는가?


역할극을 잠시 그만둬보자. 위 문장을 바꾸면 아래와 같은 질문이 된다.


내 삶은 어떤 가치를 가졌는가?(과거, 현재)

또 어떤 가치를 가지고자 하는가?(미래)


이 시점에서 이 질문은, 처음에 내가 해석한 바와 전혀 다른 질문이 된다.

대답 역시 전혀 다를 것이다. 이 질문에 내 스스로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하기까지 어쩌면 평생이 걸릴지도 모른다. 물론 평생이 걸린다고 잘못된 것은 아니다. 평생에 걸쳐 누구나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몇 번이고 답변을 번복할 것이다.


여러분은 어떠신가.

이 질문에 명료한 대답이 떠오르셨는지.

나는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했다. 현실의 많은 문제점들이 가장 중요한 문제를 가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혼탁한 마음이 정리되기를 기다리며 아무것도 안하는 삶을 한편에서 원하지만, 완전히 투명해지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언뜻언뜻 보이는 마음의 답을 따라, 오늘도 조급하게 위 질문에 답을 해본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스스로의 삶을 헌신하고 희생하여 나온 결과이자,
스스로의 목적이고 스스로의 수단이다.
부모님의 삶을 가치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나는 가치있다.
그리고 내 삶의 가치가 올라갈 수록 부모님의 삶의 가치도 덩달아 올라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목적을 설정하고 스스로를 수단으로 매일 나아간다.
부모님 뿐만 아니라 내게 크고 작은 모든 종류의 에너지를 준 타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나의 가치는 그래서 관계적이다. 내 삶의 가치를 망가뜨리고 부정하는 관계를 끊어내야 하는 이유다.
단,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내 자신의 가치에 집중하는 것 뿐이다.
한편 나는 글을 쓰고 사고하고 자기개발(서적 읽기)을 좋아한다.
거기에 더해 뇌와 심리학에도 관심이 있다. 디자인과 개발에도 관심이 있다.

이런 관심을 기반으로 인생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살아왔기에, 앞으로도 세상의 여러 문제를 체계적으로 고민하고 사업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직업을 갈고 닦을 것이다.
이것은 두 번째 질문의 답변이다.








글을 마치며


모든 자기객관화 과정을 마쳤는데도 스스로가 탐탁잖게 느껴진다면, 나의 '잠재력'과 '성장가능성' 을 떠올리자. 지금은 자기합리화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실천력이 만나면 멋진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삶의 목적을 스스로 결정하고 나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다.

그 목적을 타인에게 이해받을 필요도 없고, 타인이 삶의 목적을 정해주어서도 안된다.

그저 스스로 정한 목적에 따라 올곧게 살아가면 된다.


삶의 목적을 잘못 설정하기 쉬운 사람도 있다.

그저 모두가 그들의 삶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유심히 함께 해주면 모두의 삶이 점차 가치 있어질 것이다.

함께 고민해주는 사람 - 멘토, 친구, 가족, 애인 -을 많이 만들어 서로의 삶을 가치있게 하고자 하루하루 살아가자. 오늘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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