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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S Apr 24. 2024

유통기한 지난 원두로 커피를 마시며

찬장에서 유통기한이 몇 달쯤 지난 원두를 발견했다.

원두 그라인더와, 처음보는, 아마 커피가루를 내리는 도구로 추정되는 것들도 연달아 발견.

마지막으로 사용한게 언제일까? 새 물건의 티를 벗지 못해 어색한 이것들을 꺼내 커피를 만들어 보기로 한다.

아차, 원두를 너무 많이 넣었다. 대낮이니 그라인더의 시끄러운 작동음은 둘째쳐도, 이틀치 카페인은 족히 책임질 수 있을 만한 커피 가루를 손에 넣었다.

몇 개 없는 작은 락앤락 통에 남은 커피 가루를 넣어 냉장고에 둔다. 그러고는 무심코 한 모금. 아, 맛있다!

이제 겨우 아침을 맞아 헤롱헤롱한 상태였던지 겨우 한 시간째다.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것은 카페인 때문만은 아닐 터.

이 만족감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그 이름은 무엇으로 하면 좋을지 기분좋은 고민을 한다.




오늘 글은 다소 자전적인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게다가 깁니다. 약간 우울하기까지 합니다.
제 글에 흥미를 느끼시거나 일부나마 공감이 되신다면 기쁘겠지만, 성찰을 목적으로 한  글쓰기임을 감안하고 읽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지금 남자 친구의 자취방에 잠시 거취중이다. 자칭 자취 체험이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명목이다.

2n년간 혼자서 여행은 커녕 12시 넘어 집에 도착하는 것도 혼내곤 하셨던 부모님이 그나마 눈을 감아주신 것은 그저 남자 친구가 지금 학회로 일본에 가있기에 집이 부재중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이다. 옷가지들을 가방이 불룩하게 챙겨 나서는 내게 하는 말씀들에는 걱정이 어려 있었다. 철없는 나는 아직도 그것이 무엇에 대한 걱정인지 알지 못한다.

사회의 시선일까? 아니면 내가 거짓말을 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일까? 둘 다 겠지. 거기에는 내가 당신들의 품- 통제 영역에서 벗어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불안감도 섞여 있다. 이성적으로는 나를 믿고 더이상 사회의 분위기가 옛날만큼 따갑거나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실지언정, 내가 잠시나마 가족의 품에서 나선다는 사실 자체가 부모님에게는 커다란 변화일 것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1. 준비

시간과 진심어린 대화


이 생활을 결심하고 2-3주의 시간을 들여 부모님을 잔잔하게 설득했다.


첫번째, 어머니에게 이런 걸 해볼까 한다고 말씀드린다.
당연하지만 큰 반발이 있었다. 평소라면 싸울듯이 반발했을 나지만, 이제는 이런 언쟁이 그저 언쟁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님을 안다. 나는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대화하는 것이다. 싸우지 않기 위해, 물 흐르듯 그냥 그렇다구요. 라며 주제를 전환했다.
두번째, 아버지에게 운을 띄운다. 아마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말씀드렸을 수도 있다. 아버지는 처음 듣는 눈치셨다.
아마 어머니가 어버지와 이 주제로 대화하시기를 깜빡 잊으신 모양이다. 아버지는 엄하고 보수적인 가정에서 막내로 자라셨다. 배경은 보수적이지만, 이성적으로 잘 설득하면 분명 허락하시리라 생각했다. 아버지가 걱정하시는 부분들을 조곤조곤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아버지는 생각이 많아지신 듯 했다. 언쟁으로 이어지지 않아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함께 TV를 보며 자연스럽게 다른 화제로 전환되었다.
세번째, 바로 지난 주말의 일이다. 대화중, 아버지가 회사 출퇴근을 위해서 회사 근처로 이사하는 일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나의 자취를 언제나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시던 아버지가 꺼낼 말씀이 아닌데!
그리고 재취업을 하면 그 근처로 자취하는 일에 대해서 지원해주실 생각이신지 여쭸다.
아버지는 “일단 취업부터 해”라며 화제를 전환하셨다. 어쨌든, 아버지가 생각을 바꾸신 점이 아주 놀랍고 기뻤다.
세번째 주에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먼저 마음을 열었다는 것을 보여주셨고, 나는 답례로 아버지의 새치 염색을 나서서 도와드린다.(그리고 망했다.)


아버지는 고목같은 분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는데, 아버지 마음은 얼음처럼 얼어있던 것 뿐이었다.

언쟁은 좋은 도구가 아니었다. 시간과 진심어린 대화가 아버지를 스스로 천천히 녹였던 것 같다.





2. 자아 성찰

문제의 발단, 언쟁 중독.


우리 가족은 민감한 주제로 대화할 때면 언제나 언쟁이 되었다. 모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누가 맞네 틀리네를 가지고 씩씩거리면서 대화가 끝났다. 감정이 격해져서 눈물이 나는 날도 있었다. 언쟁을 위한 언쟁이 되어 서로 상처를 안고 대화가 끝나는 날도 있었다. 어쨌든 그 언쟁의 주제는 대부분 개인적인 것이 아니었기에 시간이 지나면 가족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모여 식사를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기형적인 이 대화 문화는, 진솔하고 애정어린 대화를 할 줄 모르던 우리 가족에게 일종의 중독 증상이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언쟁 중독인 것이다.


우리 가족의 그런 문화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나와 오빠에게 말이다.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까지도 한동안 이런 격정적인 언쟁을 즐겼다. 내 주장이 아닌 다른 말은 잘 할 줄 몰랐다. 말싸움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그런 습관은 상대에게 공감을 해주어야 할 때 제대로 공감을 해주지 못하는 문제를 낳았다. 그때 나는 칭찬과 인정의 말에 목말라 있었기에 그런 부분은 오히려 내가 바라던 형식으로 많이 연습해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긍정적인 대화와 부정적인 대화(언쟁) 사이에 있는, 슴슴한 즐거움이 되는 일상의 대화를 하지 못하는데 있었다. 소위 스몰토크라고 하는 소프트 스킬이 부족했다.

상대방을 기분 상하게 하거나 너무 아첨하지 않으면서, 내 주장을 주장의 형식이 아니라 생각의 형식으로 전달하고, 그 과정에서 아웅다웅 미소지을 수 있는 평범한 대화가 어려웠다. 사실은 지금도 어렵다.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오빠는 아버지에게 많이 상처를 받은 상태다. 아버지와 오빠의 관계가 나아질 기미가 없다. 나와 오빠의 관계도 비슷하다.

나도 이제야 겨우 내 문제를 직면하고 이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 한발 한발 겨우 나아가는 중이기에 오빠와의 관계에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다만 오빠와 다시 잘 지내고 싶을 뿐이다. 이것은 남은 평생의 숙제일 것이다.



3. 외부 세계와의 마찰

도망


나는 언제나 주체적으로 살아오려고 노력해왔다. 혼자서 내린 많은 결정들을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받아들여 주었다. 그런 모습이 좋은 평가를 받거나 좋은 결과를 내기도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을 나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마음이 지나치자, 나는 독단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여기에 겨우 꽁꽁 봉인해둔 언쟁 중독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시한폭탄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고민과 결정, 실행의 과정에서 실행만을 사람들에게 공유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나 친구, 지인, 혹은 가족들은 처음에는 받아주었으나, 어느 순간에는 내가 자꾸만 어긋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상처되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거나 폭발하듯 언쟁을 일으켜 분위기를 망치거나, 소통 부재로 인해 결과를 내지못하고 혼자 쌓아올린 것들을 모두 무너뜨려야 했던 일들이 있었다. 나는 조금씩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되었다. 감정이 폭발하고 나면 나를 잠식시킬 만큼 커다란 자책감과 우울감이 몰려왔다. 작은 실수는 용서를 구할 수라도 있었으나, 큰 실수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죄책감이 몰려와서 그 근원을 나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뜨려야만 했다. 관계를 수습하는 일이 너무 버거워서 도망쳤다. 도망치고 나서도 여전히 내게 정확히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깨닫지 못했다. 어떤 대화로도, 어떤 언어로도, 어떤 책이나 영상도 내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명료하게 설명해주지 못했다. 당연하지만 나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못했다. 그저 하루하루 폭발할 듯한 죄책감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을 상자에 가둬두고 살았다.


그것들이 조금씩 모여 나의 브레이크가 되어서 자꾸만 급제동을 걸었다. 나 자신을 믿지 못하겠어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여러 활동들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의 특정 행동에 대한 자책감이 성격에 대한 실망감으로 변했고, 이것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현재는 나의 미래에 대한 냉소가 되었다.

“난 할 수 있어!”가 점점 “할 수 있을까? 일단 해보자.”에서 ”못할 것 같아.“로, ”난 못해.“에 까지 이르른 것이다. 위험 신호였다. 포기하기 일보 직전이 된 것이다.


아무것도 없이, 나만이 존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 도피처인 집에서부터, 가족에서부터도 멀리멀리 떠나와야만 했다.

우습게도 그게 바로 지금 이 곳이다. 여기까지가 나의 자발적 유배의 죄목이다.



4. 현재

그리고 다시 여기, 지금으로.


남자 친구의 자취방에 홀로 온 것은 처음이다. 문을 열자 나를 맞이한 것은 적막이었다.

남자친구에게 으레 들어왔던 것과 다르게 서울 한 복판의 이 오래된 자취방은 아주 고요했다.

잠시라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있노라면 내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적막이 나를 집어삼킨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처음 깨달았다.


애써 부산스럽게 움직여 보려고도 하고, 음악을 틀어보기도 했다.

그것들은 잠깐 뿐이었다. 친구들과 여행 계획을 위해 통화를 하는 그 시간만이 고독하지 않았다.

남자 친구가 종종 무기력하던 날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곳은, 달팽이의 껍질을 깨부수기라도 한 듯 무심하게 나를 발가벗겨 존재하게 내버려 두고 있다.


해야 할 일도, 약속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나의 자아만은 이제야 겨우 숨을 쉴 수 있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렇게 쉴 새 없이 마음을 쏟아낸다. 원래 시간을 너무 끌지 않기 위해서 30분 짜리 타이머를 잡고 핸드폰으로 글을 써왔는데, 오늘은 키보드에서 쉴 틈도 없이 손가락이 날아다닌다. 글을 쓰기 시작한지 2시간이 지났다.

커피는 다 식은지 오래고, 마음의 온도는 끓는점을 지나고 있다. 슬플 것도 없는데 허연 증기처럼 눈물 콧물이 나온다. 예열까지 하루 반나절이 필요했다. 적막과 고독, 낯선 방에 익숙해지는 시간, 평소처럼 마음껏 게으르게 보내며 마음의 빗장을 풀어내는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마치 비싼 티백을 고히 모셔두다 겨우 마시기로 결심하고, 채 1분이 되기도 전에 진하게 우러나온 차를 마시는 기분이다. 씁쓸하지만 향긋하다. 맛보다도, 이것을 마시기로 한 일련의 행위들까지가 만족감을 주는 것이다.


이제 유통기한이 지난 커피가 나를 왜 미소짓게 했는지 조금은 알 것만 같다.




예전같으면 이런 날 것 그대로의 글은 그대로 서랍으로 직행한다. 부끄럽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쓰는 글은 마치 나의 발가벗은 몸뚱이같다. 추하기 그지없다. 일기에도 이런 글은 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글을 써서 발행하는 이유는 거울을 직시하고 싶어서다. 지금의 내게는 이 글이 너무나도 부끄럽다.

용기를 냈기에 썼고, 그래서 올리는 것이지만 여전히 나는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글을 한 차례 쭉 읽어내려 왔다. 부끄러움은 그대로다. 그래도 글로 뱉어놓은 내 모습은 내가 홀로 느껴오던 것에 비하면 혐오스럽지만은 않다.

나는 나아가려 하고 있다. 그거면 충분하다.


이 글의 초고를 고치지 않고 발행하는 것은, 거울 앞에 겨우 서긴 했으나 눈을 질끈 감고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일말의 마음이라는 것을 양해해주기를 바란다.

언젠가 내가 다시 이 글 앞에 서서, 적어도 부끄럽지 마음으로 글을 다듬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나를 구성해온 것은 어쨌든 이렇게 기록된 채로 내 역사가 된다.

지금부터 반전이 되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재직 중 들었던 적금이 만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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