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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팍 Oct 22. 2024

어떤 요리든 그 끝에는
언제나 설거지가 있다


설거지와 요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요리가 명이라면 설거지는 암이다.

남은 음식물의 찌꺼기를 떼어내야 하는 일이나, 앞치마를 하지 않으면 옷에는 물론 사방으로 물이 튀고 주변이 흥건해진다는 점이나, 어떤 화려하고 특별한 음식을 먹더라도 설거지는 언제나 항상 그랬듯이 똑같이 지루한 일이라는 점이 그렇다.


침착맨 어록 중, "누군가는 해야 하잖아"




식사가 끝난 그릇을 물에 불리면 저절로 찌꺼기가 벗겨 떨어진다.

그러나 간혹 그릇을 충분히 오래 담가두지 않았거나, 탔거나 기름진 음식물이 눌어붙은 경우에는 직접 그 찌꺼기들을 수세미로 닦아내야 한다. 박박. 수세미가 더러워지더라도 개의치 않고서 말이다.


우리는 매일 샤워를 하고 용변을 본 뒤 자신을 깨끗이 하는데 익숙하지만 내 신체에서부터 비롯되지 않은, 타자의 찌꺼기를 닦고 치우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가족이 사용한 그릇이나 휴지조차도 더럽다고 느끼는데 남이면 오죽할까.




설거지는 그런 일이다.
더러워서 외면하고 싶고,
지루해서 피하고 싶고,
시간을 잡아먹으니 미루고 싶지만
그냥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싱크대는 산을 이룰 테고, 다음 식사 준비는 꿈도 못 꾸게 된다.





모든 일의 끝에는 설거지 거리가 있다.


더러운 것은 둘째 치더라도,

타인의 찌꺼기를 닦고 치우는 일을 하지 않으려는 다른 이유는 찌꺼기란 본질적으로 그것을 생성한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직접 먹을 만큼을 담았거나 양 조절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릇에 눌어붙은 찌꺼기는 음식을 담은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남긴 사람의 책임인 것이다.


설거지가 귀찮은 일인 만큼 담당자를 정하거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면 설거지는 자연스럽게 미뤄진다. 

'다음에 해야지'라고 했다가는 또 다른 식사로 쌓인 더 큰 그릇 더미를 맞닥뜨려야 한다.


점심, 저녁 식사를 어영부영 끝내고 난 밤에는 '오늘은 피곤하니 내일 해야겠다'며 설거지를 뒤로 하고, 아침을 거르고 출근하고 나면 그릇이 쌓여있는 싱크대를 잊고 만다. 퇴근하고 피곤하니 일회용기를 써보지만, 그 쓰레기도 설거지 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쌓이고 있을 뿐. 그러다가 종국에는 "모든 일에 끝에는 설거지 거리가 있다"는 사실마저 망각하는 경우도 있다.


식사만 하고 식탁에서 일어나 방으로 쏙 들어가 나오지 않는,

그런 철없는 아이인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부모님이 방청소를 해주신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사진 출처 : Unsplash




그러나 이제 우리는 어른이다.

가족과 한 상 푸짐히 차려 먹으며 도란도란 대화하고도 싶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멋진 요리도 대접하고 싶고,

나 자신에게 근사한 저녁 식사를 차려주고도 싶다.


식사 뒤에 남은 그릇은 누군가 대신 정리해주지 않는다. 남은 음식물을 비워 버리고, 찌꺼기를 문질러 닦아내고, 잘 말려서 다시 제자리에 둘 때까지 그 그릇들은 그저 설거지 거리일 뿐이다.


자, 이제 누가 설거지를 해야 할까.

당신에게 미뤄둔 설거지 거리는 없는가?







삶에 있어서 설거지란 무엇일까


나는 지금 내 삶의 설거지를 하고 있다.


제대로 깨어있지 못했던 2n년 간, 쌓아 둔 흙더미처럼 설거지 거리가 산을 이루고 있다.

개중에는 이제는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식기도 있다. 빌려서 잘 사용했습니다, 하고 좋은 음식을 채워 돌려보내는 것이 도리일 텐데 그러지 못한 까닭은, 시간 역시 설거지를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며 살아와서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예쁜 그릇에 요리를 대접받듯 따듯하고 감사한 호의를 받은 적이 간혹 있었다.

그렇게 받은 어떤 그릇은 감정의 찌꺼기가 덕지덕지 붙어, 썩은 내가 나 이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할 뿐이다.

바로 씻어 돌려주었다면, 이 그릇의 주인과 지금까지도 화목하게 음식을 주고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더럽혀진 채로 차갑게 식어 있다.
게다가 다른 식기와 짝이 맞지 않고 생뚱맞은 디자인의 그릇일 뿐이다.
문득 호의를 건네주었던 그릇의 주인을 생각한다.

아차, 생각에 너무 깊게 잠겨서는 안 되지.
아직도 설거지 거리가 쌓여있다.

잠자코 박박 닦는다. 충분히 불렸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가 보다.
아직은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 있다.


오늘날까지 미뤄둔 설거지는 없는지. 사진 출처 : Unsplash


꼭 관계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도 설거지할 것들은 많다.


가까이는 나의 대학 생활에 대하여, 나아가 초중고교 시절, 미취학 시절에는 어떤 아이였고 어떻게 생활했는지, 또 나는 어떤 가족에게서 태어났는지... 시간 순으로 정리하듯 공간에 대해서도 정리해 볼 수도 있다.

나의 현재 거주 지역에 대한 생각, 나의 본가에 대한 생각, 이전에 살던 집, 짧지만 강렬한 기억을 남겼던 여행지에 대해서도 정리해 볼 수 있다. 공간에 대한 정리는 차라리 쉽다. 먼 옛날로 기억의 타임머신을 타고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또렷하게 기억하는 어떤 공간과 순간은 현재 내가 어떻게 묘사할 수 있는지, 오늘날 그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어렴풋이 그저 '좋았다'는 것 외에는 떠오르지 않는지-


지금 여러 질문들을 던져보고 있는데, 이 질문에 대한 여러가지 답변이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다면 그 즉시 그 생각과 감정을 글로 남겨두기를 추천한다. 꼭 핸드폰 앨범이나 드라이브를 뒤져가면서 물리적인 정리를 시작할 필요는 없다. 어떤 경험에 대해서, 멍하게 떠오른 그 한 문장이야 말로 당신의 무의식이 그 경험을 요약한 제대로 추출되지 않은 진심이다. 그 경험이 당신에게 미친 영향과 당신의 더 내밀한 진심을 알려면 더 시간을 내야 한다. 꺼내고 싶지 않았던, 덮어두었던 흑역사도 들춰내고 때늦은 오답노트도 써야 하고 내 것 같지 않은 촌스러운 미숙함들을 일일이 마주하고 자리를 정해줘야 한다. 그러면서 기억의 찌꺼기가 제대로 형태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개별 메모들이 모이면 경험의 이름으로 폴더링을 하고 경험 폴더가 모이면 연도순으로 다시 폴더링한다. 그렇게 삶을 정리하고 나면 이제 설거지가 끝난 것이다.


자, 이제 저녁 식사로는 무엇을 요리할까?

당신에게 남은 것은 그저 준비된 그릇을 꺼내어 멋진 요리를 담는 것이다.

식사가 기대되지 않는가?

 







정리되지 않은 시간은, 정리되지 않은 공간과 마찬가지로 머리를 어지럽힌다.

언제였는지 모를 그리운 순간의 조각을 붙잡고 하루종일 과거를 헤매는 날도 있고,

지난날을 후회하며 결심했던 것을 바로 다음 날에 잊고 제자리 걸음하는 날도 있다.

정리되지 않은 과거의 잔재들이 머리를 어지럽혀 현재마저 혼란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머릿속에는 어떤 새로운 경험과 시간들도 순수하게 기억되지 못할 것이다.


누구도 지나간 시간에 이용료를 요구하지도, 그것들을 훔쳐보지도 못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가지런히 정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설거지할 시간에 다음 식사는 어떤 요리로 할지, 또 누구와 함께 할지에 더 집중하고 싶지 않은가?

외면하고 싶은 설거지 거리들 앞에 서서, 눈을 딱 감고 설거지를 끝내자.

언제나 그랬듯이 찌꺼기를 닦아내는 건 꺼림칙 하지만, 깨끗해진 식기를 늘어놓으면 홀가분할 것이다.






내 삶을 가치 있게 하고 싶다면 마땅히 나를 둘러싼 시간과 공간을 정돈해야 한다.

그것이 꼭 24시간을 빽빽하게 관리하거나 정리 컨설턴트를 비싼 값에 부르라는 말은 아니다.

나의 삶을 정돈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뿐이다.

나머지는 잠깐의 도움일 뿐.


오늘은 설거지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을 해보았다.

이어지는 주제는 집안일에 대한 태도이다. 


최근 들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삶에 대한 미시적인 가치관이 내 안에 들어서고 있다. 무료한 듯, 외로운 듯 보내는 고요한 시간 속에서 마음에 둥둥 떠오르는 단어와 표현들을 엮어 글로 짜내는 작업을 몇 시간이고 한다. 매일 오지는 않는 통찰의 순간이다. 생각이 다시 가라앉아 영영 찾아내지 못하게 될까 봐 덜컥 책상에 앉아 다른 할 일을 다 제치고 글을 썼다.


이런 시간이 내 취업 준비라는 단기 계획에는 악영향을 줄지 몰라도 내 삶 전체에 있어서는 토지 공사다. 길고 지루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적지만 분명 필요한 일이다. 무른 땅에 시간을 쌓고 싶지 않다.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불안감에 살기보다는 태평하더라도 심지 곧은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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