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다는 자책은 그만 내려놓기
무기력함은 날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 컨디션과도 비슷하다.
무기력함은 그 자체로는 큰 문제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런 하루하루가 지속되다 보면 일상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매일이 지루하게 느껴지면 모든 일이 짐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렇게 단순한 일들조차도 미루기 시작하면 다시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진다.
물론 무기력한 순간이 언제나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서 고찰을 하는 시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때에 조차도 우리는 오늘 하루라는 주어진 삶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많은 생각을 한다고 꼭 그 생각들이 좋은 생각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실행력이 필요할 때도 있다.
오늘 글은 무기력감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나의 소소한 루틴을 풀어보았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이렇게까지 게으르다니'라는 식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기력함의 악순환에 빠져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개미지옥에서 나오기가 어찌나 힘든지, 또 생각보다 아주 섬세한 태도가 아니고서야 스스로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나는 아침에 특히 무기력감이 심하다.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내가 찾은 해결책은 일단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TickTick을 켠다.
이때까지 내 몸은 겨우 손가락을 움직일 만큼의 기력밖에 없지만, 당장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 중에서도 아주 쉽고 가벼운 아침의 일과들을 써 내려간다. 순서는 상관없다. 가급적 "외출 준비하기"처럼 모호하게 쓰기보다는 "스킨케어하기", "선크림 바르기", "머리 말리기", "양말 신기"처럼 단순하게 쓰는 것이 좋다. 최대 7개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내가 쓴 것을 보자.
"머리 빗고 묶기", "물 한 잔 마시기", "블라인드 올리고 환기시키기"...
각기 1분 남짓이면 끝나는 일이다.
다 쓰고 나면 스톱워치를 켜고 각 할 일들을 처리한다.
하나를 끝낼 때마다 다음 태스크로 포커스를 변경해서 기록한다.
이제 포커스 기록을 살펴보면서 내 루틴을 점검한다.
어떤 것을 하기 싫어하고 최후까지 미루는가?
어떤 일에서 불필요하게 시간을 많이 사용하는가?
각각 할 일들 사이에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태스크가 있는가?
특정한 순서로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태스크가 있는가?
미세하게 하기 싫은 데스크들이 있다. 그것들은 대부분 단순히 생리적인 불쾌함을 주는 일들이다. 아침에 추워서 환기를 시키기 싫다거나, 다소간 이동해야 하는 것들이다. 이 불쾌감을 줄여주는 일까지 태스크에 포함시켜야 한다. 예를 들면 환기 전에 카디건을 입는 식이다.
또 한 가지, 내가 정말 하기 싫었던 어떤 일이 사실은 그 일에 앞서해야 하는 다른 일 때문에 싫었던 것이었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 아침에 찬 물이 피부에 닿으면 금세 추워져서 세수를 하기 싫어했다. 밤새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젖는 것도 싫었다. 세수를 해야 눈곱도 떼고 렌즈도 끼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세수 전에 옷을 잠옷이 아닌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실내용 카디건을 걸쳐서 몸을 춥지 않게 하고,
"머리를 빗고 다시 묶기"라는 행동을 사전에 추가하니 아무렇지도 않게 세수를 하게 되었다.
35초 밖에 걸리지 않는 이 짧고 단순한 일이 그 뒤의 다른 일들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놀라웠다.
꼭 받을 것 같은 질문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런데 무기력감의 원인은 사람마다 다양하기 때문에 그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면 습관을 형성하는 일 자체가 아주 어렵다. 주의집중력과 충동성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단순히 몸의 피로감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나처럼 특정한 신경계통의 질환을 앓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다양한 종류의 무기력감의 공통점은 몸이 뜻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라는 점이다.
보통이라면 일의 중요도에 따라 이런 쉬운 일들은 빠르게 처리하고 바로 중요한 일을 처리하려 하겠지만, 무기력한 상태에서는 그 과정이 그리 매끄럽지 못하다. 극히 적은 에너지와 주의집중력을 가지고 꼿꼿하게 자신이 정한 일정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 경주마처럼 앞만 볼 수 있게 환경을 세팅해야 한다. 할 일들을 열거하는 것은 그런 목적이다. 스톱워치를 시작한 순간, 경주가 시작된 것이다. 하나하나 할 일들만 보고 몸을 움직이다 보면 쓸데없는 인지력의 낭비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렇게 일정한 루틴을 오래 반복하게 되면 물론 "그냥 해버리기"가 가능해질 날도 올 것이다.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사실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운동을 했을 때 순수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포인트를 발견하는 것이다.
나는 스트레칭을 하는 이유를 "움직임이 훨씬 편안해져서"로 잡았다.
스트레칭을 하기 싫은 날도 있다. 아침 일찍 빨리 외출해야 하는 날에는 스트레칭이고 뭐고 시간이 없어서 마음이 조급하다. 그런데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스트레칭을 하고 나면 몸이 훨씬 더 부드러워져서 결과적으로 빠르게 외출 준비를 하게 된다.
비몽사몽 한 상태라도 일단 영상을 틀어두기만 하면 멍하게 대충대충 따라 하게 된다. 끝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하다 보면 관성에 의해 끝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끝내고 나면 옵시디언에 기록한다. 겨우 5분이지만 끝까지 완수한 것이 성취감이 꽤 크다. 내 몸의 상태를 살피면서 건강하고 활기찬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이런 기분이 다음날 또다시 스트레칭을 하게 한다.
몸을 일으키기조차 어려운 하루라면, "누워서 하는 스트레칭"을 하자. 이제 나는 굳이 누운 채로 스트레칭을 하지는 않는다. '더 시원하게 기지개를 펴고 싶다'라고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칭이 귀찮은 것은 어쩌면 처음 몸을 움직일 때의 그 삐걱이는 근육의 피로감을 마주하는 것이 싫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근육통이 있는 부위를 꾹 몇 초간 누르면 근육통이 해소되는 것처럼, 몸의 피로감이야 말로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해소하기 어렵다.
몸이 찌뿌둥하고 무거운 느낌이 들어 스트레칭을 하기조차 버거운 날은 타이레놀을 먹는다. 내 경우에는 상체 운동(특히 팔뚝이나 등)을 조금이라도 하면 상체에 근육통 때문에 무기력감이 크게 드는데, 이럴 때 근육통을 좀 조절하기만 해도 컨디션이 훨씬 좋아진다.
스트레칭으로도 몸이 깨지 않았으면 물을 더 마신다.
뇌가 탈수 상태일 때 어지럼증과 인지력 저하가 생긴다. 별다른 질병이 없는데도 만성적인 두통이나 근육통이 심하다면 혹시 물을 너무 적게 마시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해 보자.
요즘 같은 추운 날씨에는 아침에 몸이 차서 움직이기 싫은 기분이다.
이때 10분 정도만 전신 유산소 운동을 하고 나면 딱 기분 좋게 몸이 데워진다. 여기에 운동 직후 샤워를 하게 되면 한결 잠에서 깨어나는 기분이 들 것이다.
나는 그날그날의 컨디션과 기상 시간에 따라서 다른 운동을 선택한다.
너무 이른 시간에 기상했을 때는, 전신 유산소 운동보다는 팔뚝 운동이나 등 운동처럼 상체 운동과 스쿼트를 연이어서 한다. 둘 다 앉은 채로 할 수 있어서 좋다. 난이도가 너무 높은 운동보다는 짧은 시간 내에 약간 땀이 나랑 말랑한 정도의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홈트로 할 운동을 고를 때 주의할 점은, 가급적 유튜브에서 직접 검색해서 탐색하지 말고, 외부 링크로 바로 동영상으로 접근하라는 점이다. 유튜브에 그냥 접속했다가는 다른 영상들에 주의를 빼앗겨 본래 목적을 잃어버릴 수 있다. 나는 옵시디언에 홈트 목록을 만들어서 가급적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는 운동을 쭉 하려고 하고 있다. 새로운 운동을 시도한 날에는 난이도와 후기를 간단히 적어서 기록을 추가한다.
우울감은 수용성이라는 말이 있다. 땀 흘리고 샤워하면 없어진다는 이야기.
땀이 나는 운동 후에 찬물 샤워를 하면 도파민이 뿜어져 나온다고 한다. 이것 때문에 운동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일단 우리는 땀이 펑펑 날 정도로 난도 높은 운동을 하지는 않았으니 적당히 기분 좋은 온도로 꼼꼼히 씻자.
샤워할 때 생각에 잠겨 오랫동안 나오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일단 샤워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긴 하지만, 생각에 오래 잠겨있기만 하는 것은 어떤 상황이든 좋지 않다. 그것이 아침이라면 더더욱! 깊은 생각은 불안감을 낳고, 아직 완전히 각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안감을 느끼게 되면 무기력감이 다시 생긴다.
샤워를 가능한 한 빠르게 끝내고 나와서 나머지 할 일들을 처리하자.
이때 꿀팁은, 샤워하러 들어가기 전에 1단계에서처럼 다시 목록을 만드는 것이다. 샤워를 하는 동안에도 스톱워치는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고, 샤워하기 뒤에 남아있는 테스크들도 있다. 뇌는 완료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 더 신경 쓰고 우선순위를 높인다고 한다. 즉 샤워가 무의미하게 늘어지는 일을 막아준다. 그러면 신속하게 돌아와서 샤워 뒤의 하기로 했던 일들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만성적인 무기력감에 익숙해지면, '자, 이제 그럼 뭘 해야 하지.'라는 벽에 가로막힌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하는 것도 그다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나마 해야 한다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귀찮게만 느껴질뿐더러 지금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로 느껴져 미루고 만다.
이 벽에 가로막히면, 이 앞 단계들이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고 만다.
나도 무기력감이 심했을 때는, 외출 준비를 다 마친 상태에서 '이제 뭘 해야 하지'라는 막막함에 외출복을 입고 화장을 한 채로 다시 침대에 그대로 기대어 잠을 자다가 하루 종일 외출하지 않은 날도 있었다.
밤을 새운 경우가 아니라면 다시 잠들지 말고, 일단 책상 앞에 앉아서 손으로 직접 글을 쓰자.
손을 움직이면서 점차 잠이 깨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뭐든 쓰되 정해놓은 시간 내에 완료한다. 내 경우에는 8분 정도가 적당했다. 그저 오늘의 감상으로 시작해도 좋고, 할 일에 대해서 적어도 좋고, 자신의 안에 있던 깊은 감정들을 꺼내놓아도 좋다.
절제된 글쓰기는 뇌 내에 정리되지 않고 나를 괴롭히던 여러 감정과 기억들을 정제하는 과정이다. 명료한 단어와 비유적인 표현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그 복잡한 감정들이 승화되고, 이런 과정을 거쳐갈수록 우리는 나쁜 기억을 잊을 수 있는 것이다. 쉽게 글이 써지지 않는다면, 자신의 상황과 공감되는 에세이집이나 평소에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읽고 흥미를 끄는 구절을 한두 줄 필사하는 것도 좋다.
무기력한 상태의 뇌는 동기를 잃어버린 상태다. 당신이 진정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탐색하던 분야에 대해서도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고, 평상시에 그 많던 하고 싶고 가지고 싶던 모든 것들이 갑자기 시큰둥하게 느껴진다면 그 원인을 생각해 보는 시간으로 활용하자.
당장 해야만 하는 일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 일을 하는 방법을 완전히 새롭게 해 보자.
새로운 장소에서 공부해 본다던지, 공부한 내용을 누군가에게 설명해 본다던지, 혼자서 공부했었다면 스터디 모임에 나가서 공부해 본다던지, 피크닉 매트를 들고 한강공원에 배 깔고 누워서 공부해 본다던지 말이다.
사용해 본 적 없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배워본다던지, 기존에 사용하던 툴의 심화 활용을 공부한다던지 흥미를 끌 수 있는 리서치를 하자. 이때, 단순히 킬링 타임이 아니라 이때 들었던 호기심을 동기로 바꾸도록 메모를 해야 한다. 실행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내 안에 죽어 있는 열정이 어디에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무기력감을 다 이겨낸 뒤에 실행해도 늦지 않다.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새로운 루트로 이동하는 것도 신선한 자극이 된다.
평소에는 집에서 식사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혼밥을 해본다던지, 타본 적 없는 번호의 버스를 타본다던지, 쇼윈도 너머로만 구경하며 지나치던 가게에 들어가 아이쇼핑을 해본다던지, 그저 그때그때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움직여보자.
집에 돌아와서는 그날의 인상 깊었던 일을 어디든 기록해 둔다.
그러면서 과거의 기록을 돌이켜 보면서 이제는 아주 익숙해진 어떤 일들이 처음이었을 시절의 자신을 회상해 본다. 그때의 설렘과 열정, 호기심이 지금은 한 단계 성숙해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순간이 온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시작을 마음먹으면 무기력한 나날일랑 잊어버리고 말만큼 즐겁게 하루하루에 몰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원래 집안일에 대해서 쓰기 시작했다가, 자연스럽게 루틴에 대해서 글 쓰게 되었다.
적어도 내게는 실제로 조금이나마 효과가 있었던 루틴이기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다음 글 주제는 무엇이 될지 나도 모르겠지만, 일단 그때까지 모두 잘 지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