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이유. 지극히 개인적인.
"... 이제 유치원인데, 우리가 부자도 아니고, 영유는 좀 오버하는 것 같아서.."
"근데, 우리 회사 직원들 보니까, 많이 보내던데."
"그러구나. 흐음..."
첫째가 태어났을 때 육아에 대한 유토피아를 꿈꿨었다.
아이에게 사교육은 필요하지 않다. 부모는 정서적 안정을 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면 아이는 공부도 성장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강한 자존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시간이 지나며 문화센터며, 방문수업이며, 가베며, 책 전집 구매며 다양한 활동에 열성인 주변 엄마들을 보면서, 아이와 나 스스로에게 가졌던 자존감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믿음을 가장한 게으름이었나. 자신감이 지나친 자만감이었나.'
그러다가 남편에게 영어유치원 제안을 받게 된 것이다.
순간 치맛바람을 시작한 것 같아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여태까지 가졌던 영유에 대한 생각은 '일찌감치 아이에게 강압적인 교육을 시작하는 곳', '아이의 정서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선택', '엄마의 욕심' 정도였다. 찾아보던 '엄마표 영어' 서적에서 읽었던 조언들과, 인플루언서들의 상담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며 왠지모를 창피함이 몰려왔다.
남편은 생각보다 호의적이었다. 남편은, 예민한 내가 무엇 하나에 깊이 몰두해서 다시 이성으로 돌아오기 힘들 때, 가장 평범한 생각과 멘트로 마인드를 전환해주는 사람이다. 그런 남편이 무심한 듯 던지는 한마디에 나는 또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다른 부모들도 다 우리처럼 자기 아이를 아끼고 사랑할 텐데, 그렇게 안 좋다는 곳에 보낼 리가 없잖아. 뭔가 좋은 부분도 있겠지."
그래. 우선은 50:50으로 생각해보자.
그렇게 우리 부부는 앉은자리에서 우리 아이와 영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첫째, 우리는 왜 우리 아이들에게 영어를 일찍 주고 싶은 걸까.
'과목'으로써의 영어를 만나기 전에, '언어'로서의 영어를 보여주고 싶었다. 좋아하는 '페파피그'나 '옥토넛'과 실제 만나게 되면 영어로 대화해야 된다고 5살 첫째에게 알려주었더니,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가장 원초적인 이유, 소통이었다. 언어도 결국 공부로 얻어지겠지만, 영어를 언어로 먼저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초등학교 입학 전에 노출해주고 싶었다.
둘째, 내가 아이와 함께 해줄 수 있을까.
해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카 30000 단어를 달달 외우며 웬만한 단어를 봐왔지만, 아이들 동화책에 나오는 동물, 식물, 간단한 의성어, 생활 단어는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그런 것들을 모르면 으레 사전부터 뒤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이는 사전을 조금 늦게 잡았으면 했다. 모르면 주변에 물어보며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영어를 알아갔으면 했다. 영유가 그런 곳일까.
셋째,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제일 걱정이었다. 아이가 책상에 앉아 연필을 들고 차분히 글을 쓸 수 있을까. 선생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가만히 앉아있을 수 있을까. 영어만 사용한다는 규칙이 있다는데 힘들지 않을까. 주변엔 온갖 영유에 대한 비판글만 가득했고, 영유에 잘 보내고 있다는 성공담(?)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가끔씩 보일 뿐이었다. 잘 적응할 것이라는 장담은 그 누구도 해줄 수 없었다. 아이가 직접 경험을 하고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영유를 직접 방문해보니, 머릿속에서 맴돌던 의문점들이 많이 사그라들었다.
아이들이 정말 즐거워 보였다. 공부하고 차분하고 조용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에너지 가득한 아이들 텐션으로는 어딜 가든 이런 분위기일까. 선생님과 어울리는 모습도, 아이들끼리 장난치며 노는 모습도, 그냥 평범했다. 특이한 곳이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영유와 일반 유치원을 함께 소개해줬는데 영유를 다녀보고 싶다고 한다. 기관을 옮기며 겪게 될 적응의 문제는 우선은 다녀봐야 알 것이다. 하지 않고 계속 고민하며 후회하는 것보다 아이와 함께 해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내가 더 고민해봐야 할 것이 있을까.
그럼, 이렇게 영유를 선택하는 건가.
딸. 그럼 우리 한번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