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떠났다. 떠나는 이유가 명확해서 붙잡을 수가 없었다. 떠날 때는 이렇게 떠나야 한다고 알려주기라도 하듯 그렇게 떠났다. 떠나는 사람이 자신의 떠남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해놓고 떠났다. 떠날 때 이렇게 떠나는 것도 방법이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고 떠났다. 나도 다음에 누군가를 떠나고 싶을 때 이렇게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하고 떠났다. 떠났다고 생각이 들지 않으니 처음에는 괜찮았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 땐 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화가 났다. 미웠다. 그리고 아팠다. 그즈음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뜬금없는 연락이었다. 어버이날, 나에게 어버이날 축하 문자를 보낸 것이다. 받은 즉시 답변을 보낸 나와 달리, 그녀는 하루가 지나서 다시 답변을 보내왔다. 답변을 기다리기에 하루는 긴 시간이다. 나와 소통하기 위해서 보낸 문자가 아님을 알고 그녀가 보내는 문자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녀가 답변 대신 내가 보낸 문자에 질문 형식으로 문자를 보냈을 때 그래서 나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꼭 필요해서 하는 질문이 아니었고, 꼭 답해줘야 할 질문은 더욱이 아니었으므로.
그녀는 떠났다. 시간이 갈수록 덜 생각나고, 각자 자기 인생 살면 그만인 시간이 자꾸만 흘러간다.
그래 잘 됐어. 이렇게 시간이 가길 기다리자. 그러면 어느새 아픈 마음도 아물어갈 테지.
그녀가 영영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잊을만하면 문자가 온다.
나더러 어쩌라고. 왜 그러느냐고. 떠났으면 그냥 깔끔하게 갈 것이지 왜 언저리에서 맴도냐고. 아니다.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난 반응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떠날 때는 맘대로 떠나놓고 나더러 반응해달라는 건 무슨 조화란 말인가. 늘 제멋대로 더니 떠나고서도 제멋대로구나.
그녀는 떠났다. 그녀는 떠났고 난 잊었다.
어느 날 그녀가 문자를 보낸다. 오늘이 밸런타인데이라고. 그러니 행복한 밸런타인데이 보내라고. 나는 밸런타인데이며 화이트데이며, 100일 기념이며, 심지어 생일도 챙기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밸런타인데이가 의미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의미 있는 날인 가보다. 그럼 자기한테 의미 있는 사람에게 보낼 것이지, 왜 나한테 보내느냐 말이다. 혹시 내가 자기에게 의미 있다는 뜻인가? 그럼 그녀는 정말 나를 떠난 게 아닐 수도 있단 말인가? 이거 참 난감이올시다.
그녀는 떠났고 나는 그녀를 잊어간다.
그렇게 안도하는 동안 여전히 시간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