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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홈 Aug 11. 2020

그녀를 보냈다

그리고 나는 울었다.

4개월 만에 온라인 상에 나타난 그녀는 조용했다. 우리가 약속했던 시간이 도달했음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안부를 묻는다거나 지난 시간에 대한 백업을 해줄 상태가 아님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여전히 마음의 여유가 없어 보이는 그녀를 한동안 말없이 지켜보았다.


"무엇이 너를 이렇게 입 다물게 하는 거니?"


침묵하는 그녀의 온라인 방에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녀는 조용히 나를 무시했고, 조용히 나의 요구를 거절했다. 내가 보낸 메시지에 열흘 이상 답변하지 않았고, 묵묵부답인 상태로 시간이 가고 있었다. 때마침 함께 아는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그리고는 우리 둘 사이에서 다리가 되어 줄 것을 자처하고 나섰다. 친절하게도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알려주며 친구 신청을 보내보라고 부추겼다. 우리의 이야기는 늦은 밤 계속되었고, 못 이기는 척 그녀에게 인스타그램 친구 신청을 보내면서 다리 역할을 하는 지인에게 당부했다.


"이거 네가 시킨 거다? 네가 나한테 인스타그램 계정 알려줬으니까 그녀에게 내 친구 신청받으라고 전해줘."


나는 뭐가 그렇게 두려웠던 걸까. 그리고 알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이 관계 속에서 을이 되기는 싫었던 거겠지. 매달리는 것처럼 보이기 싫은 거겠지. 왠지 뭔가 아쉬운 것처럼 보이기 싫은 거였겠지. 마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 관계 속에서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던 거겠지. 그런 거겠지.  


인스타그램에서 친구 신청의 요구를 받은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친구 신청은 받지 않았고,  모두 잠든 새벽에 알듯 말듯한 답변을  며칠 밤 연달아 보내왔다. 다소 격앙되어 보이는 톤이었다. 그렇게 3일 동안 새벽 2시, 3시에 나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속상하고, 무엇이 그리 답답했을까.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잠 못 들게 하는 걸까? 한계 상황으로 몰고 가는 그녀의 태도에 나도 중심을 잃고 휘청였다. 가슴을 후벼 파는 말들이 오갔다. 공격하고 방어하는 태도가 확연했다. 진흙탕 싸움이라는 게 이런 걸까?  나는 그녀의 말에 상처 받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더랬다. 그녀에게서 상처되는 말을 건네받았을 때, 그래서 나도 똑같이 질러주었다.  물리적인 접촉이 없이도 행해지는 온라인상의 혈투가 따로 없었다.


상대의 말에 흥분해서 같이 '돌'을 던지다가 돌연 깨달았다. '너'에게 총대를 겨누며 '나'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당장 하던 말들을 멈추고 나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이 관계가 어디로 가길 원하는지, 왜 우리는 이런 갈등 속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찬찬히 돌아보기 시작했다. 이미 활시위를 떠난 화살일지라도, 돌아보아야 할 것은 내가 보낸 화살이 어떤 마음을 품고 상대에게 가고 있느냐였다. 그게 중요했다. 결국은 나에게 물어야 할 것들이었다. 열쇠는 내가 쥐고 있었다.


내 마음을 헤아리 듯, 그녀의 마음도 헤아려보고 싶었지만 그러기가 벅찰 정도로 그녀의 태도는 무례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의 분노를 저주하듯 퍼붓고 말았다. 그녀에게 가장 상처가 될 말을 골라 심장 가장 중심부에 그대로 내리꽂았다. 중간에서 만나지 못하고 겉돌면서 다른 방향으로 가는 말 끝에 마지막 말을 꺼냈던 것이다. '꺼져'라는 말의 다른 말, '절대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는 그 말을 하고 말았다.


"이러지 말고 그냥 가. 가서 니 인생 살아."




지난밤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아니, 실제로는 두 편이다. 같은 내용으로 상하로 연결되는 영화다. 이 영화는 관계에 대해, 사랑에 대해 깊게 묘사하고 있었다. 최근 날카로웠던 내 마음이 이 영화를 보며 사그라들면서 글이 쓰고 싶어 졌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글쓰기를 하는 한편, 상대에게 전하지 못할 편지도 함께 썼다. 그리고 차분해졌다. 밤잠 설치고 뒤척였던 며칠 밤을 보상이라도 하듯, 그 밤엔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렇다고 반성과 화해의 제스처는 아니었다. 그저 내 마음과 마주 했을 뿐이다.


내가 상대에게 썼던 글을 곱씹어보고, 상대가 나에게 보낸 말도 되새겨보았다. 처음에 화가 나서 보지 못했던 마음이 보였다. 상대에게 느꼈던 마음이, 다시 생각하고 글로 옮겨보고 하면서 첫 느낌이 변해갔다. "이런 뜻인 줄 알았는데, 이런 뜻이네." 처음에 그녀의 글을  받았을 때 내가 눈으로만 읽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아가 내 마음이 투사되는 대로 그 글을 보고 있었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다시금 재차 그 글들을 보았을 때는 다른 마음도 함께 느껴졌다. 글은 마음을 담고 있었다. 글 안에 상대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고, 그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세 번 읽었을 때 한 편의 같은 글이 계속 다르게 다가오는 걸 보면서, 내 마음의 변화도 감지했다. 처음에 난 화가 났었다. 분노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투정 부리는 아기가 있었고 버림받을까 봐 겁먹은 아이가 있었다. 보내지 못한 글 속에는 회한과 슬픔이 가득했다.


상대와는 단절상태였지만, 상대의 글과 내 마음이 계속 소통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우리에게 필요했던 건 혹시 이것 아니었을까? 그리고 우리가 놓쳤던 것은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오해와 표현하지 않은 마음 때문에 생긴 갈등! 그랬다. 처음에 내 마음은 상대의 무례함에 대해 한 수 가르치고 싶다는 마음이 차 올랐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상대의 무례함을 탓하는 것과 별개로 나의 무례함은 없었는지 돌아본다. 그리고 그녀의 안녕을 조용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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