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윗홈 Jan 15. 2024

세신비 3만 원의 무게

토요일에는 허리가 하도 아파서 찜질도 하고 침도 맞는다고 한의원에 가셨다.  머리카락도 자꾸 빠지는지  방에 앉아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걸 여러 번 보았다. 그 후 할머니 머리통에는 머리카락 대신 바가지가 들어찼다. 듬성듬성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바가지는 할머니 두피다. 머리카락이 허옇게 변한 건 옛날일이다. 이제는 머리카락도 죄다 빠져가는 중이다.


저 할머니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쯤일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을 자식인 내가 알아챌 수 있을까?


오늘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고 한다. 위로해 달라는 걸까? 내 위로 한마디에 아픈 허리와 다리가 싹 낫는 그런 마법이 일어나기라도 하려냐? 나야말로 그런 위로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제대로 된 위로를 건네지도 못한다.  여기저기 아프다는 투정을 몇 마디 하고는 사우나에 가셨다. 


할머니가 사우나에 가서 시간을 들여 정성껏 하는 일들은 한 편의 대서사 같다. 우선 목욕탕 의자를  비누칠까지 해서 꼼꼼히 닦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그 의자에 앉아 가져간 때수건을 한차례 목욕시킨다. 목욕탕 입구에서 나눠주는 수건 2개 중 한 개는 탕용으로 제격이다. 혹여나 다른 사람이 쓰고 나서 제대로 세탁이 안되었을 것을 염려하여 뜨건 물에 열탕 소독은 기본이다. 그제야, 몸에 물 한번 끼얹은 후, 탕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잠시 탕 속에 몸을 쉬게 할 틈도 없이 다 탕 밖으로 나와 아까 씻어둔 의자를 대령한다. 그 위에 앉아 본격적으로 검고 굵은 물체들을  마구마구 떼어내야 직성이 풀린다. 물에 잘 불린 몸에서는 더 잘 나오는 몸의 사체들, 바로 때다. '구석구석 꼼꼼히'가 마치 싸우나 강령이라도 되는 듯, 그렇게 위쪽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면서 몸의 불청객을 쫓아내는 과정은 패배가 없는 씨름판의 한 판 승부 같다.  그 과정 이후 뜨거운 사우나 행은 필수 코스다.  그리고 긴 의자에 누워도 있어야 하고, 이제부터 찬물 더운물의 무한반복이 이어진다. 그렇게 서너 시간을 목욕탕에 있다가 나와서는 막걸리 한 사발 마셔줘야 힘이 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여기까지 다 하고 나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하나 남았다. 이왕이면 사우나에 다녀온 즉시, 할머니 눈에 띄는 자식이 반드시 한 명은 있어줘야 하는데, 그럴 때에는 대장정과도 같았던 그 목욕의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소연을 해야 하는 것이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당신이 얼마나 아픈지를 꼭 전달하고 싶은 것이다.


내 눈에 저 노인은 참 미련하다. 젊은 사람도 그 정도의 시간에 그 정도 강도의 목욕이면 힘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이도 있으니 때밀기가 그렇게 힘들면 대신 때를 밀어달라고 하면 된다. 목욕탕에는 당직까지 서가며 전문적으로 때를 밀어주는 여사님들이 있다.  3만 원이다. 하지만 그런 말이라도 비쳤다가는 천하에 저렇게 심한 놈 처음 보겠다는 표정을 마주해야 한다. 돈 아까운 줄 모른다는 핀잔을 받고도 끝이 날 줄 모르는 한바탕 소동을 치러야 한다.  


엄마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문제인가 싶어 답답할 때 때마침 옆집 문 너머로 싸움인지 대화인지 알 수 없는 큰 음성이 건너온다. 옆집도 매한가지다. 가끔 자식들이 와서 언성을 높이는 걸 보면, 부모자식 관계가 다들 그런 것 같다고 어물쩍 결론을 내려버린다. 그리고 희미하고 나약한 변명에 더하여 거스를 수 없는 명백한 결론에 다다른다. 바로 답정녀 같은 답!!


세대차이!!


오늘도 역시 답답한 마음이 올라와 "3만 원 내고 제발 세신(때 밀기) 좀 하라"라고 말하려다가 참는다. 그런들 뭐 하랴. 그런다고 가서 주머니 열고 3만 원을 쓸 위인이 아니다.


때밀기에 3만 원은 너무 큰돈이다. 저 할머니에게도 그렇고 실은 나에게도 그렇다. 그래서 나도 3만 원 내고 때 못 민다. 하지만 나는 젊고, 저 할머니는 허리 아프고 다리 아픈 노인네다. 제발 자신을 위해 그 정도는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해 줬으면 싶다. 그게 살아온 날보다 살아야 할 날이 훨씬 적은 저분이 자신을 위해 작게나마 할 수 있는 사랑의 몸짓이 아니겠느냐 말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자식 마음 좀 편하게 해달라고 오늘따라 애원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귀신 나오는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