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현 Nov 06. 2023

기차역, 만남과 헤어짐의 광장



기차역에 사연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기다리던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 아쉬운 인사를 나눌 때의 애틋함. 저마다 지닌 서로 다른 감정이 뒤섞인 공간이 바로 기차역인 것 같아요. 저도 기차역에 가면 엄마 생각이 많이 납니다. 엄마가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면 우린 항상 기차역에서 만나고 헤어졌거든요. 지금도 수서역 만남의 광장에 들어서면 사람들 사이로 자그마한 엄마 모습이 보일 것만 같습니다. 여느 때처럼 저를 찾아내고 환하게 웃으며 "현아~" 부를 것 같아요.



엄마가 서울 오는 일은 대개 병원 가는 거였어요. 힘든 검사를 하거나 항암치료를 받는 것이기에 꼭 좋은 일은 아니었지요. 그래도 저는 몇 주만에 혹은 몇 달 만에 보고 싶던 엄마가 온다고 철없이 마음이 들떴습니다. 공기가 시린 이른 아침 일찌감치 기차역에 나가 도넛 하나와 뜨끈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엄마를 기다렸어요. 간단히 아침을 먹으면서 바삐 오고 가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요.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하나 둘 올라오고 이윽고 엄마 모습이 보였습니다. 머리부터 서서히. 저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는 얼굴, 그리고 동네 마실 오듯 단출한 차림새가요. 엄마가 서울 온다 해도 갈 곳은 겨우 아산병원 서관일 뿐이지만 엄마는 옷차림만큼이나 가볍게 "딸이랑 데이트하는 기분으로 서울 왔다가지" 말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팔짱 끼고 기차역을 나섰습니다. 어디 좋은 데 드라이브 가듯이 병원 가는 거지요.






그날은 엄마와 기차역에서 헤어지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병원에서 엄마 암이 재발했단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거든요. 의사는 마치 '날씨가 흐립니다' 같은 대수롭지 않은 얘길 하듯, 무덤덤한 말투로 '흉수에서 암이 발견됐다'고 알렸습니다. 위암 수술을 한 이후 지금껏 2년간 서울과 부산을 오고 가며 그 힘든 항암을 견뎌냈는데 암이 재발했다는 겁니다. 참 독하게도요. 의사는 이제부터 입원을 해야 하고 부작용이 심할 수 있으니 서울 대신 집 가까운 부산에서 치료를 이어가라 했습니다.



엄마를 배웅하러 기차역에 당도하니 꾹꾹 참았던 울음이 터졌습니다. 엄마와 저는, 아침에 제가 엄마를 기다리던 바로 그 자리에서 서로의 어깨를 끌어안고 눈물을 뚝 뚝 흘렸습니다. 슬픈 소식과 함께 이곳에 딸을 남겨 두어야 하는 엄마 마음도, 엄마를 보내야 하는 제 마음도 미어졌습니다.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우리 모녀를 보고 행인들이 차마 민망해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을 거두는 게 보였습니다. 부끄럽고 어쩌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우리의 희망을 꺾어버리는 이 좌절스런 상황이 억울하고 슬프다는 마음 밖에는요.






부산으로 가는 기차가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기차에 올라탄 엄마는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저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엄마를 태운 열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엄마가 떠나고 저는 머무는 그 헤어짐의 찰나에, 우리는 창문을 사이에 두고 시간이 멈춘 것처럼 서로의 눈동자를 깊게 바라보았어요. 눈시울이 빨간 엄마가 애써 웃듯 입꼬리를 올려 보였습니다. 마지막 순간을 슬프게 만들 수 없다는 의지였어요. 저도 그에 부응해 손을 흔들며 응원하듯 밝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엄마를 향해 입모양으로 '엄마 사랑해' 말했어요. 알아들은 엄마가 '나도'라고 답했습니다.



기차가 서서히 멀어졌습니다. 창문으로 엄마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게 보였습니다. 엄마의 모습이 영영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저는 승강장에 풀썩 주저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고 꺼이꺼이 울었어요. 엄마 앞에서는 차마 보일 수 없던 약한 모습이었어요. 아마 엄마도 제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자마자 기차에서 숨죽여 슬피 울었을 거예요. 엄마가 갖고 다니던 보드라운 손수건이 눈물로 흠뻑 젖었겠지요. 저는 엄마를 태운 기차가 떠난 그 철길을 오랫동안 하염없이 바라보았어요.



기차가 떠나던 순간, 눈시울이 빨개진 채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이던 엄마



이후 엄마는 제 졸업식 단 한 번을 제외하면 다시는 서울을 오가지 못했어요. 일년이 채 못돼 돌아가셨으니까요. 그 사이 엄마가 다시 서울에 올 일도, 제가 엄마를 마중 나갈 일도 없었습니다. 그래선지 기차역을 떠올리면 엄마가 재발 진단을 받았던 그날이 기억에 가장 크게 남아 있어요. 엄마와 나누었던 얘기, 그때의 감정 같은 것들이요. 엄마 돌아가시고 처음 수서역을 갔던게 일 년 만이었는데 기분이 참 이상하더라고요. 제가 커피 마시던 매장도 그대로, 엄마와 얼싸안고 울던 그 의자도 그대로인데 엄마는 떠나고 시간이 흘렀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그래도 이제는 그 기억 위에 다른 좋은 기억들을 쌓아 가고 있어요. 엄마 기일에는 남편, 아이와 가족여행하는 기분으로 부산 가고요, 외할머니를 뵈러 익산에 나들이를 가기도 하고요. 또 새로운 일상을 살아가지요. 그럼에도 기차역은 엄마와의 공간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 같아요. 엄마를 만나고 헤어지던 그 감정을 고스란히 담은 뜻깊은 장소로요.



매거진의 이전글 들어가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