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현 Nov 29. 2023

'엄마'라는 우주



살면서 겪은 가장 큰일이 무엇인가요.

저는 엄마가 돌아가신 거예요.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저를 감싸고 있는 우주가 한 순간에 뒤바뀌었어요. 엄마가 있던 우주에서 엄마가 없는 우주로요. 이 말 밖에는 엄마가 이 세상에 없는걸 달리 설명할 길이 없네요. 지금 이 우주는 엄마가 없다는 것 빼고는 모든 것이 이전과 똑같아요.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엔 해가 지고, 어제와 같이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안부를 물어요. 단 하나, 엄마가 없다는 것이 다릅니다. 이 세상은 야속하게도 엄마가 없는데도 아무 일 없이 흘러가요. 마치 엄마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요.



이 새로운 우주에서는 엄마의 빈자리를 무수히 마주쳤습니다. 길을 걷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통화를 하다가도, 식사를 하다가도. 엄마 생각이 났어요. 아이 얼굴을 들여다보다가도 엄마에게 '이 아이가 어릴 때 나를 닮았냐'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을 수 없었지요(엄마는 아이가 태어나기 열흘 전 돌아가셨어요). 오후 서너 시 나른해질 즈음 언제나처럼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고 싶어도 전화를 할 수가 없었어요. 받을 사람이 없었니까요. 엄마의 흔적조차 존재하지 않는 듯한 이 우주에선 엄마를 얘기를 꺼내는 것마저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가끔 위장이 타들어가고 복장이 끊어질 듯 속이 아플 때가 있었습니다. 엄마를 더 이상 볼 수 없단 사실이 원통했어요. 뱃속에 있을 때부터 내 삶을 공유했던 존재를 잃은 상실감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지요. 숨을 내 쉴 때마다 심장 한쪽을 도려내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별일 없더라고요. 나는 내 엄마가 죽었으니 하늘이 두 쪽이 나는 것 같은데 세상은 아무 일 없이 돌아갔습니다. 사람 하나 죽는다고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닌 줄 알지만, 세상이 벌써 엄마를 지워버린 것 같아 마음이 아팠어요. 저는 으레 누구나 겪는 관혼상제를 치른 듯 지냈어요.



그런 일상 속에서 저는 한 걸음 한 걸음 깊은 허무에 빠져들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사는 게 무슨 의미일까' 의문이 들었어요. 엄마가 없어도 무탈한 이 세상 속에서, 나하나 없은들 아무 일 없겠다는 생각이 저를 잠식했지요. 지금껏 열심히 노력해 왔고 앞으로 사회에 기여하며 살고 싶었는데, 내가 무얼하든 이 세상에 무슨 의미일까 싶더라고요. 모든 것이 일순간에 부질없이 느껴졌어요.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허망함과 공허함 속에 침잠했어요. 이제 막 태어난 갓난쟁이 아이를 키우는 것 외에, 저는 무쓸모한 존재라는 생각이 저를 갉아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살아야 할 의미를 찾고 싶었어요. 아무리 인간의 삶이 허망하다 할지라도 엄마가 내게 준 이 삶의 가치만큼은 지켜내고 싶었거든요. 수십 번, 수백 번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살아 무엇하느냐고요. 답은 오리무중지만, 저는 알아야만 했어요. 그래야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요.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고, 또 몇 달이 지났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데요.



엄마는 제게 우주였다는 것이요. 이 세상에서 엄마 한 사람의 존재는 미미했을지 몰라도 제게는,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만큼은 가장 크고 중요한 존재였다는 사실이. 엄마 장례식을 찾아 주었던 조문객의 얼굴도 떠올랐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였는데도 엄마를 사랑하는 지인들이 오셔서 긴 행렬을 이루었어요. 그중 한 분이 그랬거든요. 엄마 영정사진에 손을 뻗어 얼굴을 어루만지듯 '기종아, 천사 같은 기종아, 하늘에서 편히 지내라'고요. 애달프게 울며 명복을 빌던 그 구슬픈 목소리가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분명 엄마는 이들에게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아무 의미 없는 삶이 아니었어요. 그러니 제 삶도 적어도 남편과 아이, 우리 가족, 그리고 친구들에게만큼은 의미가 있지 않겠어요.



오랜 생각 끝에, 내가 사는 의미란 '마땅히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라고 답을 내렸습니다. 내가 엄마를 기억하고 추억하듯이, 나도 누군가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으면 그것으로 족한 삶이 아닐까 싶어요. 가족과 친구들이 인생을 살다 나와 함께 한 시간을 돌아보았을 때, 그 기억이 편안하고 위안이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게 있나요. 오늘 단 하루를 살더라도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이 하루는 찬란한 의미가 있을 거예요. 각박한 생을 살며 늘 실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무엇보다 나를 가장 사랑하며 사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엄마가 나를 사랑했던 것처럼, 내가 이 삶을 사랑하는 거지요. 그렇게 생각하니 우선순위가 서서히 바뀌었어요. 단 하루를 살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채워 나가게 됐습니다. 가족과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살아있음을 만끽하기로 했고요, '언젠가'로 미루었던 하고 싶던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가기로요. 눈 뜨는 순간부터 하루의 부담을 느끼는 대신에, 조금 더 느긋하게 여유를 갖게 됐어요. 아침 햇살에 투명하게 빛나는 아이의 곤히 자는 얼굴을 들여다 보고 고사리같이 작은 손도 잡아 보면서요. 이전에는 빠르게 달리느라 놓쳤던 일상의 행복을, 긴 호흡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마음에 담는 거지요. 이전에 욕심내 쥐고 있던 무의미한 짐은 내려놓고요.



어쩌면 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엄마가 없는 이 우주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가 내게 주던 사랑의 크기만큼 내 안에서 만들고 나누기로 다짐하면서 말이죠. 엄마를 떠나보내면서 슬픔의 크기만큼 살아갈 힘을 발휘하면서요. 오랜 시간이 흘러 이 삶이 다한 후 다시 엄마를 만날 때, 엄마한테 자랑하고 응석 부리고 싶어요. 엄마 없는 이 우주에서 나 정말로 마음을 다해 잘 살고 왔다고요. 엄마가 자랑스러워할 만큼, 엄마가 제게 준 삶을 아주 잘 살다가 왔다고요.






이 편의 글을 빌려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이 우주에 넘어와 혼란을 겪을 때 가장 큰 의지가 되어 준 이거든요. 그때는 행여 이 기분이 전염될까 싶어 말로 다 표현하지 못했어요. 혼자 커다란 감정의 파도에 힘겨운 순간도 있었고, 높은 파도에서 떨어져 바닥에 끝없이 가라앉던 순간도 있었어요. 그러나 그 모든 순간에, 남편은 제가 그 모든 것을 오롯이 겪어낼 수 있도록 곁을 지켜 주었어요. 남편이 있은 덕분에 엄마 없는 이 우주에서 살아갈 힘을 조금씩 얻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 든든하고 두터운 손에 의지해서요.


엄마가 투병하고 사망하던 때는 물론, 이후의 모든 순간에 제 곁을 지켜주고 힘이 돼 준 남편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내 평생에 이 순간의 고마움을 잊지 않을 거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가 공부를 했었더라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