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맬수록 새로운 풍경을 찾아내는 강아지의 발걸음
오늘은 우리 집 반려견 '똘멩이'와 함께 한강 산책로를 40분 넘게 걸었다.
지금 살고 있는 마포구 합정동의 가장 큰 장점은 다름 아닌 한강이다. 집에서 5분 정도만 걸어가면 넘실대는 한강이 나오고 그 주변을 걸어 다니는 수많은 강아지와 목줄을 손에 쥔 주인들이 보인다. 걷기 좋은 풍경이 있다는 건 사람에게도, 강아지에게도 신나는 일. 한강을 갈 때마다 이곳에 살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똘멩이와 매번 한강으로 산책을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소에는 출근 때문에 허겁지겁 똘멩이와의 아침 산책을 해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땐 도보로 2분 거리에 있는 동네 공원으로 강아지와 함께 바삐 발걸음을 옮긴다. 그곳에서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풀숲에서 똥을 싸고, 그러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집으로 황급히 돌아가 출근 준비를 한다. 온전한 강아지 산책이라기보다는 반려견 야외 화장실을 서둘러 다녀오는 수준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평일 아침이 보다 여유로워졌기 때문이다. 겨울 햇살을 느끼며 똘멩이와 함께 한강 주변을 천천히 걷고 싶었다. 이런 나의 마음이 강아지에게도 전달이 되는 것인지. 녀석은 한강이 얼어버릴 듯한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산책로에서 연신 코를 킁킁댔다.
처음 생각한 산책 코스는 망원 한강공원까지 씩씩하게 걸어가서 주변을 둘러본 후에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아지와의 산책은 언제나 내 마음 같지 않은 것.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반려견과의 산책은 전적으로 강아지의 마음에 따라 발걸음을 움직이는 행위니까. 그런 강아지의 뒤꽁무니를 성실하게 따라가는 게 나의 주된 역할이다. 보호자란 앞보다는 뒤를 살피는 사람인 것이다.
똘멩이는 나와 함께 길을 걷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서 나무 밑동에 다른 강아지가 뿌려놓은 오줌 냄새를 맡다가, 또 땅 위를 힘껏 박차고 달려 나가다가,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자유분방하게 몸을 움직였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산책. 강아지 마음대로인 산책. 그렇게 나와 강아지가 이렇게 저렇게 실랑이를 벌이다 보면 어느새 처음 생각한 산책 코스와는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오늘은 똘멩이와 함께 한강변에 위치한 흙 운동장을 열심히 돌고 또 돌았다. 망원 한강공원은 근처도 못갔다.
산책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똘멩이의 발바닥에선 까만 때가 사정없이 나왔다. 그래도 좋다고 강아지는 꼬리를 움직인다. 나는 녀석의 발바닥을 연신 물티슈로 닦고, 또 닦고, 그래도 똘멩이는 즐겁다고 숨을 헐떡이고. 나는 결국 강아지를 덥석 안아 화장실로 데려간 후에 샤워기로 발바닥을 꼼꼼히 씻겨주었다. 시커먼 물이 강아지 발바닥으로부터 새어 나와 배수구로 흘러들어 갔다.
마침내 화장실에서 탈출한 강아지는 소파 위에 올라가 기분 좋은 웃음을 짓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자기 발이 더러워지는 것도 모르고 한강 산책로를 돌아다닌 강아지 덕분에 나는 40분 동안 성실히 세상을 헤맨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너와 함께 지구 곳곳을 방황해도 좋지 않을까. 그럴수록 새로운 풍경을 더 많이 만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똘멩이는 말없이 꼬리를 살랑댈 뿐이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 같은 꼬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