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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설 Jan 04. 2023

시대 반영적 변화와 종말

지난 학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교양 수업으로 '문예창작의 이론과 실제'라는 수업을 들었다. 담당 교수님은 천유철 작가님이었다. 어떠한 분인지 잘 알지 못했고, 사실 작품 자체가 나의 취향이라고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느낄 수 있었다. 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지금까지 내가 만난 그 누구보다 높았고, 문학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분이셨다. 시조와 가사, 소설 등, 여러 문학 작품에 대해 배웠다. 그러나 가잔 나의 이목을 끌었던 수업은 에세이, 수필 관련 강의였다. 


나는 언제나 문학의 시작은 수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는다. 수려한 표현 없이 아름답게 완성된 문장이 수필의 시작이요, 그것이 문학의 시초라고. 수필이란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에서 완성된 작품이다. 타 문학 장르와 큰 차이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정해진 형식이 없고, 진정한 자유에서 완성된다. 덕분에 모든 문장은 문학이 될 수 있다는 이론이 비로소 완성된다. 예술은 자유, 억압에서 벗어난 그들은 예술이 되니, 수필이란 예술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수필의 현실을 보라, 쉽게 쓴 글, 누구나 쓸 수 있는 글, 그런 인식을 가졌다. 수필은 문학의 위상을 올리는 것이 아닌 오히려 떨어뜨리고 있다며. 이게 현재 수필이 가진 인식. 현재 수필은 감정적 하소연, 강박적 공감만을 추구한다고 말씀하셨다. 수필에서 강하게 나타날 뿐, 타 문학 장르에서도 유사한 동향을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이게 현재 문학의 현실이라고.


이 이야기를 어머니와 나눴던 적이 있다. 현재 문학은 이전과 달리 그저 심적 공감을 추구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는 답했다.

"그만큼 우리가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 어떠한 시대와 비교해도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그 어떠한 시기보다 풍족한 시기에 살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인문학의 발전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존중이 향상되며 개개인이 가진 가치는 모두 평등한 위치에 도달하게 되었다. 신분도, 직업의 귀천을 나누던 벽도 허물어지고,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헌데, 어째서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일까? 관계, 인간 사이 원인은 존재하지만 결과는 없는 일방적 인과관계, 그 사이의 괴리감. 그것이 현재의 변화를 이뤄냈다. 예술이란 즉 변화가 아니던가? 시대의 변화와 같은 속도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예술은 인생을 닮았고, 인생은 예술을 담았다.


나는 문학을 시대 반영론적 예술이라고 칭한다. 모든 예술 작품이 창작자의 시대를 반영하여 탄생한다고 하지만, 문학은 이러한 현상이 타 예술에 비해 짙게 나타난다. 개인의 시야에 비친 시대에 대한 한탄과 비판, 환희, 이것이 대부분 문학 작품 탄생의 시발점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시대는 어떠한 모습인가? 나의 눈에 보이는 현재 시대는 감성은 죽고 감정만이 남았다. 존중은 하지만 존경이란 없고, 이해는 하지만 인정은 없다. 사랑을 말하지만 진정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자는 극히 드물다. 일부는 자신의 모든 말과 문장이 정답인 듯 말하고, 그것을 보고 들은 일부는 진리라고 믿지만 행동하지 않는다. 관계의 피곤함과 미래의 두려움, 우리는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는 것 또 다른 하나, 그 모든 고통에서의 해방을 위한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는다. 흐름적인 변화는 그 어떠한 희생도 가져오지 않는다. 저 내 귓가를 지나치는 바람, 강가를 따라 흐르는 물, 내리쬐는 태양빛, 자연적 변화. 운명적 죽음만이 존재할 뿐, 희생은 없다. 그러나 저항적 변화는 다르다. 언제나 희생을 필요로 한다. 떨어진 목은 레드카펫이 되어 새로운 길을 향한 입장권이 될 터이니. 그러나, 그 누구도 시대의 변화와 존재의 해방을 위해 희생하고자 하지 않는다. 이 시대와 존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다. 언제나 변화를 말하고, 저항을 말하지만, 두려워 움직이지 못한다. 변화를 말하는 문장은 하나의 책이 되어 이 세계에 새로운 일광(一匡, 日光) 되어 하늘을 가를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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