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5개월쯤 되고 할 일없는 하루를 보내다 보니 이런저런 후회가 밀려온다.
퇴사를 결심했을 때 내 뜻대로 이직이 되지 않는다면 우울한 후회를 4년 전처럼 반복할 것이란 걸 분명히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또 회사를 그만뒀다. 하지만 과거를 되돌리더라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일단 결정하고 마음먹으면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고약한 기질 탓이다. 계획 없이 스스로에게 무책임한 짓을 하고 누구를 탓할까. 이번을 계기로 성급한 흔들림에 대처하는 자세를 바꿀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일을 빨리 적응하겠다는 완벽주의자의 위기
얼마 전까지 매주 화요일 '스테이지파이터'라는 서바이벌 무용수 예능을 즐겨봤다. 잘생기고, 아름다운 춤선을 뽐내는 남자 무용수들의 대결 과정과 무대가 돋보이는 프로그램이었다. 재미있게 보던 중 마지막 계급 결정 라운드를 남겨두고 ‘기무간’ 무용수는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 완벽주의면 이렇게 됩니다."는 말을 남기고 자진하차 소식을 전했다. 서바이벌에 대한 부담감, 촉박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나의 실력을 입증하고 그렇지 못하면 계급으로 평가받는 과정에서 압박감이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나는 왜 다른 친구들처럼 뚝딱 해내는 능력이 없을까"라는 말을 했던걸 보면 계급 경쟁이라는 심리적 부담이 크지 않았을까 싶어 오히려 응원하고 싶은 무용수가 되었다.
하차 소식을 전하던 인터뷰, 그의 마음을 너무 공감했다. 인정받고 싶고, 항상 잘한다! 얘기 듣던 사람이 계급이동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나는 왜 이것밖에 못할까, 더 보여줘야 한다, 잘하겠다는 마음에 더 실수하고 한 번에 불타오르다가도 금방 에너지를 써버리는 허무함과 지침을.
완벽하지 않았지만 남모르게 완벽주의를 추구했던 나 또한 이번에 이직한 회사에서 경력직 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진지함을 뽐내며 경주마처럼 달렸다. 빠르게 업무를 적응하고, 1명의 몫을 제대로 하고 싶었는데 내 맘대로 적응되지 않는 환경과 주위 시선에 금방 지쳐 속앓이를 했다.
초반부터 속도전에 집중해 주변을 살피지 못하고 천천히 녹아드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결과 중심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다 보니 일을 해내가는 과정에 대해서는 무감각했던 무심함이 아쉽다.
인정받지 못하면, 실패? 실수하는 나를 견디지 못해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지, 실수하는 건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오히려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 생각하고 잊어버려~!" 종종 실수하고 자책하는 후배들에게 위로하며 응원하고자 했던 나의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나에게 하진 못 했다. 실수를 실패로 받아들이고 '무능력하다. 쓸모없다.' 긴 자책의 시간을 가지곤 한다.
승진을 하고 나서 '나는 이 정도로 인정받을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닌데, 실력이 들통나면 어쩌지?' 싶어 조마조마했다. 아직 성장하는 시기임에도 부족한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주변에서 다른 말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하며, 주눅 드는 순간이 많았다. 새로운 커리어 계발, 성장을 원한다면서 다른 환경에서 적응하고 아직 다듬어져야 하는 사람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내의 시간을 회피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지금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도 답을 명확히 찾진 못할 것 같다. 회사에서 주어진 목표,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해 몰두했지만 내가 원하는 삶의 목표는 없었다. 일하면서도 한편으로 공허함을 느꼈던 이유인 듯싶다. 남들과 하는 약속은 철저하게 지키면서 항상 무기력함과 타협해 나와의 약속은 지키지 않았던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그래서 '오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모르겠으니 '오늘'에만 집중에 작은 것을 쌓아 올리는 체력을 다지려고 한다. 우울함, 불안함, 걱정 등등 깊은 어두운 터널을 느끼고 감정의 바닥을 찍으면 그곳에 머물다가도 지겨워져서라도 새싹만큼 긍정의 감정이 올라오는 날이 있다. 항상 답을 찾고 싶었고 나만 헤매는 것 같아 뒤쳐지는 느낌에 재촉하는 삶을 살았다면 답 없이도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