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20대는 명품을 갈망하는가
샤넬백 오픈런(open run)에 대한 화제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오픈런이란, 가게나 매장의 개장 시간 전부터 줄을 길게 서있다가 문을 여는 순간 안으로 달려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뉴스에 보도된 영상 화면을 통해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샤넬백 오픈런을, 심지어 수도권 매장의 부족한 수량을 고려해 지방까지 원정을 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오픈런 그 자체만 놓고 보면 비단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애플이 신제품을 출시하는 날만 되면 전 세계 애플스토어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고, 아파트 분양 추첨권을 받으러 모델하우스 앞에 길게 늘어진 인파 또한 오픈런의 일종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스크를 사기 위해선 약국 앞에 하염없이 서있어야 했다. 그런데 왜 지금, 샤넬백 오픈런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SNS를 중심으로 모든 샤넬 가방의 가격이 15% 전후로 인상된다는 소문이 퍼졌고, 실제로 공식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가방의 가격이 모두 가려지자 이 예고가 사실이라는 것이 확실시되었기 때문이다. 인상 이후엔 무려 100만 원 가까이 되는 금액이 훌쩍 뛰게 된다. 보도에 담기지 않았지만, 여기엔 본인이 직접 들기 위해 가방을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 인원의 대부분이 리셀러들이라는 점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샤테크(Cha-Tech)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공급은 고정적인데 수요는 줄지 않으니, 중고로 판매하더라도 그 차액으로 재테크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샤넬 가방을 예물, 혼수로 마련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다른 브랜드가 아닌 샤넬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홈쇼핑이나 아웃렛 매장에서 제품을 쉽게 살 수 있는 프라다, 구찌, 페라가모 등의 다른 브랜드와 달리 샤넬은 철저한 공급 관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가격이 떨어질 일이 거의 없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이와 같은 고가 제품의 주요 소비층은 30대 후반에서 50대까지로,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기반이 마련된 연령층에서 명품 가방을 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의 명품 열광 현상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핸드폰이 겨우 들어갈 법한 가장 작은 가방도 500만 원대, 보통 사이즈는 700만 원을 호가하며 한정판 디자인은 천만 원이 넘어가는 샤넬백을, 그것도 20대가, 어떤 이유에서 갈망하게 된 것일까. 이 현상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인으로 설명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요인은 스몰 럭셔리의 유행과 발전이다. 스몰 럭셔리(small luxury)란, 화장품, 지갑, 신발, 액세서리 등의 작은 명품을 의미한다. 몇 달 전 에르메스에서 출시된 립스틱이 대표적인 예이다. 8만 원이라는 가격에도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것은, 2천만 원을 호가하는 가방에서나 가질 수 있는 브랜드 경험을 상대적으로 적은 값으로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립스틱은 넥타이, 스카프, 벨트 등의 구매와 궤를 같이 한다.
20대는 지금의 50대, 즉 부모님 세대의 소비를 보고 자랐다. 벤츠를 몰고 수백 만원을 호가하는 가방이나 시계를 팔에 걸쳐야 대접받는다는 것을 철저히 목격해온 세대이다. 그런데 극소수를 제외하고선 처음부터 이 욕망이 완전히 충족될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작은 물건에서부터 발현되는 것이다. 20대 사이에서 한동안 유행했던 스몰 럭셔리로는 발렌시아가 운동화, 입생로랑 지갑, 구찌 반지 등의 제품들이 있다.
이러한 스몰 럭셔리 제품들은 대체로 100만 원 이하로, 용돈을 아끼거나 아르바이트를 통해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때 인상적인 경험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브랜드는 이후 고객의 연령대와 소비 패턴에 맞추어 매력적인 물건을 끊임없이 제안한다. 20대가 샤넬백을 갈망하는 것은, 단순히 많이 보았기 때문이라기보단, 간접적이고도 직접적인 경험을 세대에 걸쳐 오랜 시간 축적해왔기 때문이다.
두 번째 요인은 쇼핑몰의 인스타그램 마케팅이다. SNS(Social Network Services)는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변모해왔다. 1세대 SNS로는 포털사이트를 기반으로 한 카페, 블로그, 커뮤니티 등이 있겠고, 스마트폰 보급과 동시에 활개를 친 페이스북, 트위터가 2세대 SNS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인스타그램의 등장은 3세대 SNS의 시작을 알리며 마케팅의 지형을 뒤흔들었다. 트위터가 선형(linear)의 형태이고 휘발성을 띄는 반면, 정방형의 사진을 기반으로 한 인스타그램에선 이미지가 압축되고 축재(stack)된다. 특정 대상에 대한 호감도, 브랜드 이미지를 학습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다.
이때 놀라운 사실은, 명품 브랜드의 공식 인스타그램뿐만 아니라 이 브랜드와는 전혀 무관한 온라인 쇼핑몰의 모델들도 명품 가방을 들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 어느 온라인 쇼핑몰을 들어가 보아도 모델이 명품백을 들지 않은 모습을 찾기 힘들다. 이러한 전략은 한 개인이 창조하고자 하는 이미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2만 원짜리 티셔츠를 입고도 명품백을 들면 고급스러워 보이는구나’, 즉 다소 밋밋할 수 있는 콘텐츠에 명품이 은근히 노출되는 경우 매력이 한층 높아지게 된다는 인식이 생기는 것이다.
이때의 쇼핑몰 이미지는 정방형의 인스타그램 구도에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얼굴이 크롭(crop)되고 몸만 보여주는 일종의 토르소(torso) 형태로, 소비자로 하여금 이 이미지에 자신을 투영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명품백을 든 모델이 곧 내가 된다.
중소기업은 명품의 이미지에 편승하고, 명품 브랜드의 입장에서는 수요로 직접 연결되는 간접 마케팅이 저절로 되는 것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인스타그램을 기반으로 고객을 확보하는 온라인 쇼핑몰과, 이러한 이미지를 구입하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복제해 올리는 소비자의 역학으로 명품 브랜드 호감도는 반복 재생산된다.
세 번째 요인은 할부에 대한 관점 변화이다. 앞서 부모 세대의 소비 패턴을 답습한 20대의 모습을 언급한 바 있는데, 여기에 세대가 보이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하나 있다. 바로 할부와 구독이다. 과거 세대는 고가의 제품을 구입할 때 할부, 즉 빚을 갚아나가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졌다.
반면, 오늘날 청년 세대는 구독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다. 이들은 물건을 사용하거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데에 있어서 매달 비용을 새롭게 지불하는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넷플릭스나 유튜브 프리미엄과 같은 OTT(Over-the-top) 서비스를 예로 들 수 있다. 반찬도 꽃도 매달 배송받고, 명품 옷이나 가방도 일정한 금액을 내면 정기적인 대여가 가능하다. 명품 가방을 구입하는 일도 동일한 선상으로 인식한다. ‘이 가방을 갖는 데에 빚을 얼마 갚아야 한다’보다는, ‘이 가방을 드는 데에 매달 얼마를 지불한다’는 개념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관점이 바뀌게 되었을까. 그 단서는 오늘날 20대에겐 평생을 걸친 할부로도 못 사는 것이 너무나도 많아졌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집이다. 청년 일자리와 취업의 기회가 가장 많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생각해보자. 서울은커녕 경기도의 20평대 아파트를 마련하는 일에도, 비용 마련을 차치하고서라도 치열한 경쟁을 뚫을 수가 없다. 몇 달이고 몇 년을 기다려도 추첨권은 소식도 없다. 아파트 오픈런에 가담하고 싶어도 안 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욕망이 온전히 샤넬백으로만 투영되었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소비 방식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이러한 사회 구조에 기반한 것이고, 수많은 현상을 낳게 되었는데 이 중의 하나가 20대의 명품 소비 현상이라는 것이다.
사치품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희귀한 것은 비싸다. 남들이 우러러보기 때문에 욕망하는 것이다. 브랜드가 축적해온 유산과는 무관하게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수요가 지나치게 과잉된 것은 아닌지에 관한 논쟁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오늘날 20대가 명품을 갈망하는 것에 대해 그저 '요즘 20대는 사치스럽다'라고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결이 다른 무엇이 있다. 셔터가 올라가자마자 샤넬 매장으로 돌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한 잔상이 오래 남는 건 이것이 일시적인 해프닝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단면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2020년 5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