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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이 May 26. 2020

전혀, 갈피도 못 잡는

정의연 논란이 길이 되려면


시작은 이용수 할머니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었다.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매주 수요일, 30년 간 쉬지 않고 수요집회를 열어온 시민단체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윤미향 전 이사장(이하 윤미향 대표)에 대한 이용수 할머니의 공개적인 비판. 이어 여러 언론의 의혹 보도와 정치권의 공세가 쏟아졌다.




메시지 관리의 실패


자녀 유학비 출처 의혹, 안성 쉼터 매입 과정 논란 등으로 인해 본래의 논지가 흐려졌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의 핵심은 모금 활동을 통해 모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겠다는 회계 부정 의혹 제기이다. 처음 이용수 할머니의 공개 비판에 대해, 정의연이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보인 태도는 분명 실망적이었다. 피해자 현금 지원이 단체의 존립 목적이 아님을 강조하며, ‘계좌 내역에 대한 외부 감사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 분명한 입장이었고, 심지어는 할머니의 연세를 들며 오해한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더불어 30년 간 시민단체를 이끌어온 것에 눈물로 호소하며, 피해자 지원 영수증을 요청하는 한 언론사를 향해 “그만하라”는 고성까지 오갔다. 결국 ‘그간 해온 활동이 있으니 적당히 넘어가 달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내용이었다.


5월 11일 정의연 측이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출처: KBS)


그러나 며칠 상간으로 윤미향 당선인의 말이 여러 번 번복되자 그때서야 외부 감사를 받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검찰이 압수수색을 한 뒤라 손 쓸 방도가 없다는 회피의 모습에 그치고 말았다. 논란에 대한 안일한 초동 대처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운영에 있어서 개인 계좌를 운용한 사실이나, 회계 내역을 수십억 단위로 누락해 공시한 점은 외면할 수 없는 치명적 잘못이 아닌가.


회계 부정이 실수인지, 횡령의 시초인지는 오직 감사나 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 언론이 아파트 매입 자금 출처를 연결하고 의혹을 제기하는 것에 억울할 수는 있지만, 이를 떳떳하게 증명하지 못하는 것은 온전히 재단의 문제이다.


부산 초량에 위치한 일본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 ⓒ생강이


더 큰 문제는 메시지 관리의 실패이다. 그간 정의연의 시민운동과 수요집회의 이미지는 평화의 소녀상과 피해자 할머니의 존재로 상징되어왔다. 모금된 돈이 사용되는 바가 국민들의 생각과 다를 수는 있어도, 근본적으로 피해자 할머니와 국민이 감정적으로 연대하는 것이 활동의 단단한 기반이 된다. 그런데 정의연 측에서 인력이 부족해 회계의 서류 처리가 부족했다고 변명하는 것과, 목적비가 지정되어 있어 할머니가 배고프다 해도 밥을 사줄 수 없는 것이라고 단호히 말하는 바는 어딘가 감정적인 엇박자를 내는 것이다.


애초에 재단이 큰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 할머니의 아픔에 공감한 수많은 시민들의 후원 때문이었다. 이때 정의연이 돈을 대하는 태도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게다가 법인 카드나 사업자 지출 증빙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재단법인 계좌를 사용하면 회계가 복잡할 것이 없고’, ‘식사 정도는 여비나 식비로 영수증을 처리하면 될 일인데’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결국 정의연의 메시지는 이미 상식 선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버렸다.


몇 년 전 텀블벅 크라우드펀딩 후원으로 받게 된 작은 소녀상의 모습


무엇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가


이미 드러난 적폐는 선명할 대로 선명하다. 그간 시민운동을 부정하고 폄훼해왔던 세력이 되려 할머니를 옹호하며 편승하는 것. 나아가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는 데에 이 사건을 이용하려 연일 주목하고 있다. 정말이지 울화통이 터지는 일이다. 실제로 시민단체들의 후원액이 상당히 줄었고, 앞으로도 시민운동 전반에 이 일이 악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불편한 문제는 항상 동시다발적으로 온다. 전자만큼 드러나있지는 않지만, 고개를 내밀고 있는 또 다른 적폐는 여권의 오만이다. 윤미향 대표는 정의연 활동을 통해 비례대표 정당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우후죽순 제기되는 당선인의 논란에 대해, 정치 공세를 하지 말라는 항변은 어처구니가 없다. 윤미향 대표가 여당 비례대표가 된 순간부터 이 일은 이미 정치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어쩌면 이용수 할머니가 가장 우려했던 점이 바로 위안부 문제 해결이 매듭지어지지 않은 채, 정파싸움으로 변질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진보권, 386세대, 운동권 세대 등 뭐라고 부르던 여하튼 그 특정 집단이 대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대의가 숭고하면 과정이 어찌되던 괜찮다는 합리화이다. 40년 전 운동 정신이 지금의 계보를 만들었고,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숭고한 것이라는 착각, 큰 뜻을 위해선 소를 어느 정도 희생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쌍심지를 켜고 정의연을 폄훼하려 하기 때문에 이용수 할머니의 공개적인 비판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은, 성폭력 사건에 대해 ‘해일이 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며 약자의 목소리를 묵살시킨 누군가의 논리와 동일하다.


총선 개표 상황실의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국회사진공동취재단(출처: 시사인, '드디어 진보는 다수파가 되었나')


대한민국 정치 지형의 패러다임 전환은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서 일어났고, 국회의원 의석수 180석이라는 총선 결과는 운동권을 부정할 수 없는 주류로 선언하는 종지부나 마찬가지였다. 패러다임 전환을 인정하지 않는 일부 세력이 마지막까지 발버둥을 칠지언정, 이 흐름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런데, 그간 겪었던 수모에 대해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심리 때문인지, 어떤 숭고한 무언가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 때문인지, 당최 왜 여야 프레임에 갇혀 미래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인지 안타깝다.




이 모든 것이 길이 되려면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는 책이 있다. 코로나19의 국면에서 다시금 읽고 곱씹게 되는 김승섭 교수의 책인데, 이 제목이 묻는 바가 작금의 상황에 참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일은 이미 일어났고 우리에겐 상처가 깊게 남았다. 여전히 아물지 못하고 있다. 역사를 왜곡하는 세력이 청산되지 못하고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는 점에 분노한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을 찾아야 할까.


ⓒ생강이


첫 번째, 피해자 중심 원칙으로의 회귀이다. 위안부(comfort women)나 성노예(sex slavery)라는 표현이 공식적인 용어일지라도, 그에 담긴 수동적 프레임에 대해 피해자의 입장에서 고민해본 적이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그 자리에 멈춰있어야 하고 일방적인 사과만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다. 자신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대변되고 있는지, 재단을 확장하고 운동을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하는 데에 있어서 문제는 없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볼 권리가 있는 주체적인 존재이다. 나아가 이 운동이 당위성을 잃지 않으려면 재단 운영 부실 의혹에 대한 검증이 철저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드러난 잘못에 대한 책임을 국민이 물어야 할 것이다.


ⓒ생강이


두 번째, 기성세대의 반성과 미래 세대의 화해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씀에서 단서를 찾는 것이다. 비단 일본과 위안부 문제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운동권 세대는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용수 할머니가 30년 관성을 깨트리고 목소리를 낸 것처럼, 정치권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용기를 낼 때 교조주의(敎條主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벌써부터 일부 여권 인사들을 중심으로 음모론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는데, 이는 정말이지 위험하고도 무책임한 태도이다. 주류의 위치를 망각한 자의 행패에 지나지 않는다. 패러다임 전환과 주류로서의 진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반드시 성찰해야만 진보권에도 미래가 있을 것이다.


2020년 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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