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지난 여행기를 이렇게 펼치는 지금 상황은 순전히 오늘 날씨 때문이다. 아들이 나가며, "엄마, 팬티도 양말도 다되어 가네... " 해서 "어, 그래 오늘 빨아야지." 했지만... 아침부터 눈이 흩날리는 회색빛 날씨에 취해 그만 정신줄을 놓아 버리고, 어설프게 내린 드립 커피 한잔을 홀짝거리며 지난여름 다녀온 독일 여행을 기록한 공책을 들추어 버렸다. 50 넘어 처음 떠난 자유여행인지라 여행 내내 피곤함에 절어 있었지만 그 속에서 느낀 기쁨, 환희, 낯 섬, 슬픔이, 그래서 더 소중하고 여운이 남아 해를 넘기는 시간이 흘렀지만 공책이 열기를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가 되어 나온다.
어떤 끌어당김인지는 모르겠다. 무료해하며 공익근무를 하고 있던 아들에게 독일어 배우길 권했고, 모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독일 사상 기행에 참여 못한 게 한이 되었으며, 어쩌다 공부하게 된 인문학 모임에서 유일하게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와 자본주의 정신'만 이해되고. 또 음악에 젬병인 내가 클래식, 특히 바흐 음악을 잘 들을 수 있게 만들어 준 이가 '프랑크 페터 짐머만'이라는 독일 바이올린 연주자다.
복학하고도 독일어를 시나브로 배우던 아들은 독일에 함 가고 싶다며 독일 어떤 기관에서 주최하는 서머스쿨이라는 프로 그램에 지원을 하고는 만약 당첨(?)이 되면 8월 한 달 독일 남서부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어학연수를 받게 된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7월에 미리 들어가 한 달은 인근 유럽여행을 할 계획이란다. 아들의 희망찬 그 계획에 내 마음이 오히려 더 요동치는 것 같았으니... 계획이 자동으로 섰다. 니 여행 중에 10일은 엄마와 함께 해 달라고! 수월한 아들은 그렇게 하자고 했다.
계획은 있으나 아무것도 정해진 것도 준비된 것도 없던 우리는 지난겨울 그렇게 부풀어 있었다. 부풀다 못해 일을 내 버렸다. 처음 들어간 비행기표 검색 앱에서 이리저리 누르다 프랑크푸르트행 7월 14일 표를 그만 예매 해 버린 것이다! 설마 될까 싶었는데 정말 안방에서 되다니. 독일로 향한 마음 어떻게 주체할 수 없었겠지... 칼을 이미 뺐으니 무라도 함 찔러보자는, 서머스쿨이 안되면 여행이라도 가자는 아들 말에 힘을 얻은 것이기도 하고. 그래도 엄마 혼자서 표를 예매할 줄은 몰랐는지 눈이 뚱그레진 아들도 급히 자기 표를 예매했다. 다행히, 정말 다행히 한 달 후 독일 기관에서 오라는 연락이 왔다.
여행 기간은 2019년 7/14~7/24일. 7/1일 먼저 독일로 들어간 아들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만나 하이델베르크, 루트 비 히스 부르크, 프라이부르크, 스트라스부르에 머물다 24일 다시 프랑크푸르트에서 아웃하는 일정이었다. 처음 계획은 아들이 공부하게 될 프라이부르크에만 쭉 머물며 짧은 독일 생활을 해보고 싶었지만 막상 비행기표를 끊고 나니 , 성이 아름답다는 하이델베르크는 가봐야 되지 않겠나, 어! 엄마! 구글에 검색해보니 짐머만 연주가 우리가 지나는 작은 도시 루터 비 히스 부르 크라는 데서 있네!, 알쓸신잡에 나온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가 프라이부르크 바로 옆이구먼!, 이렇게 독일 남서부 소도시 여행이 되어 버렸다.
기간과 일정이 정해졌으니 채울 준비를 해야 했다. 머니가 필요한 시간이 되었다. 남편 몰래 아들과 작당한 일이라 경비를 요구할 수도 없었고 요구할 형편도 아니다. 아들은 비행기표와 숙소는 기관에서 제공을 받을 수 있어 생활비만 필요했고 나도 비행기표는 어떻게 되었으나 역시 생활비가 문제였다. 떠나기 5개월 전... 각자 알바를 하기로 했다. 아들은 간간히 하던 학원 과외를 다시 시작했고 아이들 관련 일밖에 모르는 난 전직 어린이 독서지도사 경험을 살려 유아를 하원 시키고 엄마가 올 때까지 책을 읽어주며 돌보는 일을 했다. 이사온지 일 년도 안 된 이 곳에서 50 먹은 아줌마가 할 수 있는 일이 뭐 있을까 고민했으나 찾아보니 이런 일이 있어 기쁘게 했다. 필요(?)할 때만 돈을 벌자는 주의인 내가 돈이 필요한 상황은 이런 경우인가 보다. 어렴풋이 그렇게 살자고 개똥철학을 세웠지만 사실 기준이 모호했다. 어쨌든 생계가 아닌 돈이 필요한 상황을 만들었고 그래서 필요한 만큼만 돈을 벌었다. 드디어 내 힘으로 독일을 가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