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돌아간 도의 짐을 우체국 택배로 보내기 위해 운의 출근길에 따라 나섰다.
우체국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 보긴 처음이다.
거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텃밭, 조금만 내려가면 카페.
택배를 일찍 보내고 텃밭에 들러고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다 계획이 있었다.
필요한 걸 챙겨 나왔다.
가정의 달에 치인 난 쉼호흡이 필요하다.
그러나 계획은 때때로 생각대로 되지 않잖아요.
특히 남의 의지를 빌려야 하는 때.
카페가 오픈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그것이다.
가려했던 곳이 대형 카페임에도 ‘임시휴업’이라는 글귀가 크게 붙어있다.
제일 큰 5호 박스를 낑낑대면 포장하고 올리고, 이미 가진 기운을 다 써버렸는지 생각이 뚝뚝 끊어져 버렸다.
카페에 가서 빨리 가서 쉬고 싶은 마음에 텃밭은 안 들리고 큰길 쪽으로 나와버린 것이다.
길 건너편 휴업이란 글자가 크게 들어왔고, 텃밭에 안 들렸다는 사실까지 알아차리자 맥이 탁 풀려 버렸다.
경로를 이탈한 듯 잠시 길에 멈춰 생각한다.
이미 해는 중천에 떠올라 온 누리에 이글이글, 갈증이 올라왔다.
텃밭으로 올라가 말아… 이젠 갈등이 생기고.
내일 언니한테 가는데, 상추를 조금 따야 되는데, 에잇! 담에 가져갈까.
근처까지 왔는데 그럴 수 없어 결국 텃밭 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만다.
다음을 점점 믿지 않게 되는 요즘.
마음을 굳히니 멀거라 생각했던(실제가 아닌 심리적으로) 거리가 그렇지 않다.
텃밭 대문이 아니라 작년에는 없었던 샛문으로 들어갔다.
갈고리를 올리고 장대를 뽑고, 다시 넣고 거는 번거로운 과정을 한다.
옷의 단추를 퍼즐 맞추듯 진지하게 끼우고 열기를 반복하는 유아들처럼.
고슬고슬 고사리 손이 아니라 붓고 쭈글한 손으로 더듬거리며, 사립문을 여는 것 같아 재밌다.
이틀간의 비로 더욱 푸릇해진 텃밭 정경을 보니 한결 기분이 가뿐해진다.
142번 가까이 가니, 옆 동지인 연변에서 온 아무개 씨가 웅크리고 무엇을 뽑고 있다.
나이도 이름도 모른다.
그럼에도 반가워 만나자마자 텃밭에 관련된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겨우 몇 번 봤고, 근처에서 건전한 중국 정통 맛사지샆을 한다는 것 밖에 진짜 모르지만.
다소 휘어지고 굳은살이 있는 손가락을 내보여 봤지만.
우리 둘 다 촌스러워 그럴 것이다.
몇 마디 나눠보니 남새밭 정서가 있었다.
고수를 좋아한다는 그녀, 바질을 좋아하는 나.
이름난 허브류지만 상대편 걸 잘 몰라 어린 그것들을 뽑아 서로의 코에 대어 주었다.
난 얼굴을 찡그렸고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 향이 대단히 세요!
글로 냄새를 맡게 해 줄 수 없듯 연변 억양을 들려줄 수 없다.
참외 모종이 올라오면 나눠 주겠다 한다.
네, 두 포기만.
연변녀와 텃밭에서 텃밭 같은 대화를 나누고 기분이 몽골해져 발걸음도 가볍게 그곳을 벗어났다.
카페는 널려있지 않은가.
마침 소문만 들은 지역 명소가 건널목에서 보여 들어갔다.
적당히 시끄럽고 so so한 커피, 그래도 혼자 앉은 카페 분위기가 삽상하여 가져간 태블릿을 꺼냈다.
글수다가 도란도란 된다.
카페인 효력은 카페를 나온 후 정점을 지나는 듯했다.
정오 무렵 거리의 햇살이 뜨겁지 않고 따끈했다.
제법 앉아 있은 카페에서 몸이 너무 식어버린 탓일까.
따끈한 햇볕 세례를 받으며 집으로 가는 길은 여왕의 5월이다.
읍소재지 그저 그런 길들이 우아하고 싱그럽다.
기울어진 유치원 장미들이 레트로풍 골목을 들뜨게 한다.
장미는 장식에 일품이지.
빛바랜 벽과 조화를 이룬 아이리스가 수묵담채화 주인공처럼 멋스럽게 앉았다.
물가의 무엇은 뭐랄까, 그냥 필연이 우연이 된다.
물 쪽으로 기우는 생명, 그 생명의 부산물이 만들어 내는 풍경.
물 위에 둥둥 떠내려가는 철철이 다른 그 무엇.
꽃잎은 모른다.
다리밑의 다리, 물그림자, 물풀, 멀리서 보면 렌즈 안 세상 같다.
노란 금계국이 가는 날이 장날인, 마침 알록달록 오일장이랑 벗이 되었다.
하늘에 닿고 싶은 이태리포플러.
덩치 크고 순한 생명아!
너 거기 있어 푸근하지.
누구든 본다고 멈출 수 있지.
누구든 그늘 아래 쉬어갈 수 있지.
2024년 5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