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트레버 단편 읽기 3
<오만과 편견>이 시작되는 곳은 댄스파티 장이었다. 리지의 ‘춤 잘 추세요?’라는 가벼운 물음에 Mr. 다아시는 '질색'이라는 단어를 쓴다. 어색한 분위기.. 다음 대화에서 리지의 복수는 여우 같다. 이번에는 사랑의 묘약이 뭐냐?라는 이 오만한 남자의 뼈 있는 질문에 주저 없이 말한다. dancing! 비록 파트너가 끔찍하다 해도 말이죠,라는 말을 덫붙이며 통쾌한 얼굴로 시끄러운 그곳을 빠져나가는 리지.
<쉘 위 댄스>의 중년남 스기야마 씨는 왜 어울리지 않게 사교댄스장을 기웃거릴까. 말려들듯 그곳에 발을 들이고 마는데, 안정적이나 권태로운 일상에 금이 가는 이야기가 시작될 모양이다.
영화들에서 무도장은 비록 편견이 싹틀지언정 로맨스 향이 폴폴 풍기는 만남이 있고, 일상의 환기 같은 의미 있는 일들이 준비된 듯 벌어졌다. 그러나.. 어쩌면 소설보다 더하다는 현실의 ‘나’에게는 그런 일이 매우 일어나기 어려울지 모른다. 16살부터 36살까지 20년 동안 무도장을 들락거렸으나 별일 없는 청춘, 을 지나 중년이 되어가는 처녀가 소설 속에 있으니.
그녀의 이름은 '브리디'다.
브리디의 집은 외따로 떨어진 언덕 넘어 농장이다. 배경은 1950년대 아일랜드 어느 시골마을.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 마저 병으로 다리 한쪽을 잃어 브리디의 삶은 고단하다. 아버지를 보살펴야 했고 농장일을 도맡아 할 수밖에 없었다.
브리디는 키가 크고 튼튼했으며 얼룩진 손가락과 손바닥은 살가죽이 거칠었다. 풀과 나무에서 즙이 흘러나오고 흙에서 색소가 빠져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브리디가 경험한 노동은 그녀의 손가락과 손바닥에 스며들었다.
브리디는 현실에 순응하며 비관적인 아버지를 오히려 위로하는, 없는 마음을 낼 수도 있는 사람이지만 사실은 생활에 짓눌린 스스로를 연민하며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도 잠시 가벼워지는 시간이 있었으니, 토요일 밤마다 마을 무도회장에 가는 일이었다. 원피스를 골라 입고, 자전거를 타고, 아버지에게 신나게 놀다 오라는 격려까지 받으며 향하는 곳.
썰렁한 길가에 뜬금없이 서있는 건물의 무도회장에 춤추러 오는 이들은 브리디와 다름없는 그 시절의 꿀꿀한 인생들이었다. 십 대부터 거의 중년까지 안정된 삶도 정해진 파트너도 없는 그저 그런 행인 1,2 같은. 수줍음이 많아 인사도 없이 춤만 추고 가는 '팔이 긴 남자'로 불리는 오십 대가 끼어있긴 하다. 말을 섞지 않으니 추측만이 떠돈다. 돌 많은 땅을 치우느라 팔이 길어졌다고. 딱히 관심이 없는데, 서로에 대해 웬만큼 알게 되는 곳. 떠나지 못해 늘 그곳에 서있는 나무처럼 서로 오래 바라본다는 건 그런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제나 남녀 간의 썸이 난무하는 곳. 단 몇 시간 만이라도 이성과 눈빛을 교환하고 잘하면 살도 비비고 키스도 할 수 있으나 곧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곳, 어쨌든 토요일 밤이면 그곳이 후끈했다.
36살 브리디는 이곳에서 어떤 만남이 있었을까. 원하던 결혼을 아직 못했으며 어떤 희망도 안 보인다는 게 지금 그녀의 현실인데. 사실 구구절절 늘어놓을 연애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주 풋풋했던 시절 패드릭이라는 남자의 품에 안겨 춤추며 사랑과 미래를 생각하긴 했으나 결국 혼자 열렬했던 일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상상이나 꿈같은 걸 누가 막겠는가. 어느 도시 여자가 낚아채갔다는 문구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브리디와 그의 사이에는 사랑의 확신, 확인 같은 것이 없었다.
이제 브리디는 두근거리는 사랑보다 현실의 무게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농장에 들어와 살며 아버지도 돌보고 농장일도 같이 할 수 있는.
그림자 같았던 이가 특별한 사람으로 다가오는 일이 일어났다. 무도장의 주인만큼 그곳의 환경 같았던, 밴드팀의 노래와 드럼을 치는 데이노 라이언이라는 중년의 미혼남이다. 언젠가부터 브리디의 상상 속에 데이노가 등장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데이노는 농장의 부엌에 앉아 아버지의 서부 소설 중 한 권을 읽고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 사료용 사탕무 밭에 나가서 잡초를 뽑는 데이노의 모습과 절뚝거리면서 그의 뒤를 따라 걷는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함께 일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아, 그녀의 상상은 언제쯤 현실이 될까. 나름 노력을 해보지만 이번에도 연결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알 수 없다. 이것 또한 그녀만의 알아차림, 본능적인 느낌에 근거한 단정일 뿐이다. 그 남자의 하숙집 주인인 과부가 그에게 베푼 친절을 두고 브리다는 단박에 둘이 결혼할 거라고 자기 마음에서 기정사실화 시켜 버렸다. 세상에..
처음에 이 단편을 읽었을 때는 브리디가 그저 안 됐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글을 쓰며 문장들을 꼽씹어 보니 여러 상황들이 그녀의 상상이 만들어낸 그녀만의 현실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 이토록 브리디는 생각 속에 갇혀 살게 되었을까. 가련한 욕망처럼 보이는 브리디의 상상은 읽는 이가 민망할 정도다. 어려운 환경으로 인한 낮은 자존감, 외로움, 등이 그녀가 타인이나 세상과 소통하는 길을 구부러지게 한 것일까. 모퉁이가 생기니 오히려 불안이 몰고 오는 확신 속에서 절망하고 체념한다.
브리디를 좋아하는 것 같지만 건실하지 못하고 키스를 위해 사탕발림 소리나 하는 또 다른 중년 미혼남, 바우저 이건이 또 그렇게 들어오려 한다.
그녀는 긴 세월 동안 토요일 밤마다 그래 왔던 것처럼 밤을 가르며 자전거를 몰았다. 그러나 그럴 나이가 지난 지금, 그녀는 토요일 밤에 자전거에 몸을 싣고 달리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을 거라고 다짐했다. 그녀는 이제 기다릴 생각이었다. 때가 되면, 이미 어머니를 여읜 바우저 이건이 그녀를 찾아올지도 몰랐다. 그때쯤이면 그녀의 아버지 역시 아마도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그녀는 농장에서 홀로 지내기가 외로워 바우저 이건과 결혼할지도 몰랐다.
브리디,
참 어렵구나..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는 일이.
내가 아는 어떤 젊은이가 그러더라고. 꽤 괜찮은 친구가 얼굴이 못 생겨 연애를 딱 한번 한 이후 여친을 사귀지 못하고 있어 결혼을 하지 못하면 어쩌나 고민이라고. 누구의 고민인지는 확실하지 않아. 그 말을 하는 본인도 연애에는 젬병이거든.
그래서 그랬지.
걱정하지 말라고. 그 친구가 결혼을 한다면 분명 외모 따위는 보지 않고 친구의 내면에 매료된 여자를 만날 수밖에 없으니 오히려 같이 괜찮은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백프로이지 않냐고.
그냥 이 대화가 생각나네.
바우저 이건? 글쎄..
외롭다고 아무나 받아들일 수는 없잖아.
진짜로 온다는 보장도 없고.
지금은 외로움도 모르는 사람 같은 바우저 이건이 외로움을 알고 찾아온다면 브리디의 외로움이 조금 덜해질 수 있겠다.
무엇을 기다려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어.
그나저나 정말 이제 춤추러 안 갈 거니?? 춤도 춤이지만 자전거를 타고 밤을 가르는 일로 기분전환 하면 좋겠는데.
브리디보다 한참 오래 살아도 사람을 인생을 몰라 위로를 할 수 없는 사람의 오지랖이야.
*다른 색은 책 그대로 인용
*윌리엄 트레버/ 세계문학 단편선15/ 현대문학, 2024 초판6쇄, 이선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