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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Aug 12. 2023

독도!에 발을 딛다

새내기 수사경찰 - 부록(2) 독도

지금의 나는 누구를 만나도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수많은 말들을 쏟아내지만, (가끔은 어머니는 어지럽다고도) 중학교 시절 만해도 나는 굉장히 어둡고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지금의 내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도저히 믿기 어려울 것이다.


당시에는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굉장히 쑥스럽고 말수가 적은 것이 다른 이들에게 얕잡아 보이지 않는 것이라 믿었다. 자신을 드러내기 싫으니 가족들이 사진이라도 찍으려고 하면 성난 벌 마냥 온갖 소리를 내며 거부하곤 했다.


자주 가는 여행지 화엄사 전경



이러한 성격을 고치기 위해 부모님이 꺼내든 카드는 다름 아닌 여행이었다.

부모님은 매년 휴가철이 되면 여름에는 나 홀로, 겨울에는 다 함께 어디로든 여행을 떠나도록 해주셨고, 제주에서 강원도를 돌고 문화적 충격에 빠진 인도까지 다양한 곳을 다니며 세상을 넓게 볼 수 있었다. 덕분에 말없이 남들 뒤에만 숨던 나는 말문이 트였고 할 말이 너무 많아졌다. 또한 내 얘기를 들으며 수시로 바뀌는 상대방들의 표정은 나를 즐겁게 하였다.

20세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화려한 말재주를 갖고 사람들의 가운데에서 말을하게 되었다.

 

좋은 경험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아서일까.

20대 이후로는 매년 휴가철이 되면 여름에는 혼자여행을, 겨울에는 가족여행을 다니는 것이 관례처럼 굳어져버렸다. 다녀온 모든 여행지는 가깝든 멀든, 고생하였든 행복하였든 모두 기억의 공간에 커다랗게 남게 되었고, 1년을 유지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행사이기도 했다.

 

그러하기에 경찰로 정식임용된 후 맞이한 올여름휴가는 무엇보다 뜻깊었다. 임용된 지 100일을 겨우 넘겼을 때의 첫 휴가와 달리 일에 조금 지친 상태로 맞이한 진짜 ‘휴가’인 점도 있지만,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하는 첫여름휴가였기 때문이다.

 


이토록 중요한 선택이었기에 처음 독도를 가보자는 여자친구의 말을 들었을 때는 마음속에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듯했다.



백두산과 천지


고등학교 때 중국을 통해 백두산을 보고 그때의 벅참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었다. 어렵게 오른 내 눈앞에 펼쳐진 구름 속에 가려진 천지연의 자태는 내가 교과서를 통해 보았던 그 사진 속 장면이 아니었다. 이곳이 우리 고구려인들의 한이 서린 곳이라니. 역사를 무엇보다 좋아하는 나는 가슴속 저 밑에서 울컥함을 느꼈다. 백두산에 오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울 수밖에 없다더니 이해가 되었다.


백두산을 시작으로 수많은 곳을 다니며 국내에 남은 곳은 독도뿐이었다. 독도라는 단어를 30년 내내 들어왔지만 그 독도를 내가 가보다니 직접 가본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차를 몇 시간 타고 배를 몇 시간이나 타야 하는지, 당시 예보에 따르면 7월 내내 비가 온다는데 7월 30일에 독도를 갈 수는 있는 것은 맞는지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그러한 걱정은 찰나일 뿐. 모래바람은 곧 가라앉고 마치 무릉도원을, 함께 발견하러 떠나볼 수 있다는 설렘이 아스라이 퍼져나갔다. 나는 흔쾌히 그래 같이 가자!라고 외쳤고 우린 2개월간 참 많이도 계획을 세우며 밤을 지새우곤 했다.


준비를 하면서도 혹자의 말처럼 ‘독도를 가는 것은 3대가 덕을 쌓아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독도를 가기 위해서는 울릉도까지 가서 숙소를 잡고 독도까지 배를 띄울 수 있는지를 확인 후에 예약을 해야 했다. 문제는 독도는 고사하고 7월에 비가 오는 속도를 보면 울릉도를 가는 배편조차 뜰지 의문이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마치 역기우제를 지내며 우리는 여행 때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며 6월부터 숙소와 배편 등을 미리 알아보고 예매했다. 그리고는 가수 정광태 씨가 1982년에 부른 울릉도 동남쪽 백길 따라 이백리 외로움 섬 하나 새들의 고향 노래를 끊임없이 흥얼거리곤 했다.

출발지 울릉도 저동항


 

다행히 7월 말에 이르러서는 화창한 날이 계속되었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경기도에서 울진 후포항으로 4시간 거리를 차를 타고 도착한 뒤, 다시 4시간 넘게 배를 타고 후포항에서 울릉도 사동항구로 도착하였다. 날씨는 마치 태초의 하늘을 보듯이 높고 매우 푸르렀기에 우리는 곧바로 다음날 독도로 가는 배편을 예매할 수 있었다.

 

전날 8시간의 강행군에 이어 다음 날 아침 7시에 일어나 2시간이 넘는 쾌속선을 다시 타야 했기에 조금은 힘들었다. 10시간을 대중교통만 타서인지 비몽사몽 할 즈음 우리는 독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독도에는 방파제가 없어서인지 날씨가 매우 맑고 파고도 잔잔했지만 다리를 내린 배는 이리저리 심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이 모든 부정적인 생각은 진한 회색빛의 돌 위에 발을 올렸을 때, 순식간에 괭이갈매기와 함께 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독도 중 동도의 전경



독도는 독도는 파란색이었다. 그리고 내가 온 것을 보면 분명 우리나라가 맞다.

독도 하늘은 티끌하나 없이 파랗고, 독도의 바다는 맑다 못해 투명할 정도로 푸르렇으며, 무엇보다 독도의 도착한 수많은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보며 벅차오름에 마치 오래된 지인들처럼 함께 기뻐하며 만세를 불렀다.


계단위로은 올라가지 못한다.


우리가 관람할 수 있는 곳은 선착장뿐이었고, 머무는 시간도 30분에 불과하였지만 독도에 서있던 그 순간만큼은 마냥 행복하고 가슴속에 독도를 모두 담았다. 물론 괭이갈매기의 소리는 효과음으로 넣고.

혹시 모를 위험에 독도경비대 분들도 접근 제한 구역을 통제해 주었고 사람들 입에서는 그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부정적인 말보다 모두 ‘좋다’라는 단어가 반복되어 나왔다.


우리 역시 수십 장의 사진을 찍으며 언제 지나갈지 모르는 찰나의 순간을 보낸 뒤 뱃고동이 울리자 아쉬움에 배에 천천히 올랐다.

 

독도야 독도야 진짜 잘 있어!

 

돌아가는 배에서 나는 감동을 잊지 못한 채 연신 이 여행을 계획해 준 여자친구에게 ‘좋았다. 너무 푸르고 좋았어 고마워’라는 말만 반복하였다.


단순히 유명한 곳이기에 감동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온통 푸르른 자연환경도 한몫했겠지만, 무엇보다 이 작지만 아름다운 영토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조상들이 피와 땀을 흘렸다는 사실이 먹먹하면서도 감사하였다. 더군다나 현재도 경상북도경찰청소속 독도경비대분들이 짙은 남색의 옷을 입고 독도의 해안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에 같은 경찰로써 절로 고개가 숙여질 수밖에 없었다.


독도 중 서도

 

독도로 가는 여정은 다른 여행에 비행 멀고, 버거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경찰 일이 힘들어 휴가를 나온 입장에서 이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전해 주기 위해 고생하는 그들을 보며, 조그만 일에 지쳐하는 스스로에게 반성하고 마음을 환기시키는 좋은 경험이었다.

 

독도를 여행한 지 2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눈을 감으면 독도에서의 푸르름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오고 가는 데만 20시간이 걸리고, 구경은 30분 밖에 못하였지만 그 30분에 경험이 경찰에 처음 임용되어 자리에 앉았을 때의 푸릇함으로 되돌려주어 뜻깊은 여행이었다. 독도를 보고 나서야 난 우리나라의 모든 여행의 마침표를 찍은 느낌이다.

 

한동안 초보 만담꾼으로서 어딜 가든 독도이야기만 쉴 새 없이 할듯하다. 그 바다와 파도와 하늘에 대해 그리고 그곳을 지키는 대한민국의 청년들에 대해 물론 얘기 속에 MSG로 감사함, 행복한 시간을 팍팍 뿌릴 것이다.

독도, 푸르고 감사한 섬. 경찰로서 한 시민으로서 그리고 연인과 가족으로써 독도를 지켜야 할 이유가 더 생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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