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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Sep 03. 2022

누군가 나의 신분을 물으신다면

새내기 수사 경찰 - 6화

신림에 있던시절.

취준생의 고달픈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모님에게 연락을 하는 경우는 안부보다는 ‘돈좀 부쳐주세요’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바로 돈까지 접근 못하고 날씨, 건강문제를 꺼내지만 키워드 하나로 문장을 만들기도 전에  부모님은 약속이나 한듯 여섯글자로 똑똑 끊어서 ‘왜 돈떨어졌어?’라고 되물었다.

이미 보내준 돈은 마치 누가 훔쳐쓰기라도 하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에 비참함을 무릅쓰고 월에 한 두 번은 꼭 돈 요구 전화나 문자를 했다.


그런데 문자로 돈을 부쳐달라고 할때면 가끔  때아닌 문자상 검문을 거치고는 했다. 때때로 아버지는 내이름이 아닌 주변인물의 이름으로 부르거나, 아파트 브랜드명을 바꿔부르는 방식으로 신분을 확인하고는 했다. 아파트 브랜드는 우리가 사는 아파트가 아닌 아파트 이름을 슬쩍 끼워 넣어 대화를 하는 방법인데 처음에는 이런 아버지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제발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씀도 드렸다.



아버지는 대출관련 보이스피싱전화를 받으면 꼬박꼬박 대화를 하는데 속은 것처럼 잘 들어 주다가 엉뚱한 이야기를 해서 대부분 그쪽에서 너무 어이 없어 오히려 끊어 버린다. 대부분 본인이 지금 너무 돈이 많은데 쓸 곳이 없다.그러니 대출을 받아 어디에 쓰냐고 묻는다거나 통장사기 이야기를 하면 본인은 파산을 해서 한푼도 없는데  통장에 돈이 있다고 놀라는 아주 지능적이다.

 

“a야 이 돈은 어디에 쓰게?”

“a라니? 사촌형 이름은 왜 말해. 그냥 책 뭐하나 더사려고요”

“응 너구나 문자를 어떻게 믿어? 항상 누군지 확인해야지 사기일수도 있잖아”

 

문자를 할떄마다 본인이 여러 개의 규칙을 정해놓고 랜덤으로 나인지 확인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우리 아버지지만 참 이해하기 어려워’라고 생각했다. 3만원을 가져가려고 보이스 피싱을 하는 집단이 어딨느냐며 그만 확인하라고 해도 아버지는 해당 검문을 고수하고는 하셨다. 그런것을 즐기시는 것도 같고.

 

다행히 경찰이 되면서부터 해당 검문은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되었다. 일단 부모님덕에 경찰에 합격하여 더 이상 돈을 부쳐달라고 하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아버지는 설마 경찰을 사칭하여 속이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수사과에 있으면서 매일같이 우리는 전화를 돌린다.

핸드폰을 사용하면서부터 집 전화번호는 점차 사라져가고 있으며 군대를 제대하면서 전화기를 사용해본 기억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수사과는 고소인이나 피의자들을 조사를 하는 경우가 아니면, 문서를 작성하거나, 전화를 하는게 9할이기에 매일같이 전화기를 붙잡는게 다반사이다.



‘안녕하세요 여기 OO경찰서입니다. ㅁㅁㅁ씨 맞으시죠?’

전화를 받으면 항상 똑같은 멘트로 시작을 하고 신분을 밝히곤 한다. 112로 전화를 하느게 아니라, 수사관 개인 사무실번호로 전화를 거는 것이기에 시민분들의 반응은 제각각 이지만, 신분을 밝히고 나면 출석일자를 잡거나, 혹은 사건 관련하여 이야기로 끝맺는 것은 동일하였다.

 

그러나 가끔 첫멘트에 경찰서라고 해도 이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경우도 있어왔는데, 그때면 계급과 성명을 밝히고 관련 사건에 대해 말해줘야 대화를 계속하는 경우도 있었다. 보통 입건된 이후에는 SMS로 사건접수를 보내주지만 입건전 전화에서는 이런일이 때때로 발생하였다.

 

그리고 급기야 이러한 의심이 절정으로 달하여 보이스피싱범으로 의심받는 일이 터졌다.

 

그 날은 날씨가 너무 더워 사무실에서 에어콘을 틀어도 땀이 나고 사무실 밖이라도 나가면 습도와 쨍한 햇빛에 숨이 막히는 날이었다. 오전에 조사를 끝내고 서류를 작성하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새로운 사건을 배당받아 재빨리 훑어보았다.

 

해당건은 뒷번호판이 찌그러진 채로 도로를 운행하는 차가 있다고 국민신문고로 접수된 사건이었다. 보통 번호판을 가린채로 운전하면 ‘자동차관리법’위반이 되기에 무엇보다 당시 사진이 중요하였다.


첨부된 두 개의 사진은 그동안 봐왔던 위반 사례와는 달리 약간 휘어져 있을 뿐 차번호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 이어서 진행한 전화에서도 신고한 시민은 ‘고의가 아니라 어디 부딪혀 잠시 찌그러진거라면 반려해도 상관없다. 혹시나 해서 신고한거다’라 답해주었다.

 

블랙박스 상으로도 번호판이 선명하게 보였기에 나는 입건을 잠시 미루고 곧바로 신고당한 시민에게 전화를 걸어 항상 하던 멘트로 말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OO경찰서입니다. ㅁㅁㅁ씨 맞으시죠?”

“경찰서요? 근데요!!”

 

순간 너무 공격적인 태도에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런적도 있어왔기에 천천히 전화 이유를 설명하였다.

 

“네 저는 OOO 수사관이라고 합니다. A차주 주인 맞으시죠? 번호판을 가렸다고 고발이....”

“번호판을 가려요? 무슨 말씀을 하는거에요!!”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민분은 굉장히 고압적인 태도로 답변을 하였고, 무어라 채 말하기도 전에 옆에서 “끊어! 빨리!!”라는 말을 들리더니 전화는 끊기고 말았다.

 

그동안 경찰이라고 하였을 때 이토록 부정적인 경우는 없어 왔으므로 순간 몇초간 끊긴 전화기를 붙잡고 멍하니 멈춰버렸다. 감정적이면 안되지만 당혹감에 재빨리 전화번호를 다시 눌렀고 그 뒤부터는 3번,4번을 걸어도 시민분은 전화를 받지도 아니하였다.

 

처음 당하는 전화상의 문전박대의 내부 sms와 팀에서 사용하는 공용핸드폰으로 ‘OO경찰서 서경제팀 OOO경위입니다. 전화주세요’라는 문자를 남겼으나 공용핸드폰으로 ‘너 경찰 아니지? 이게 어디서 사기를 치고 있어!’라는 황당한 답장만이 날라왔다. 그쯤되자 이게 무슨 경우인가 싶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경찰보고 경찰아니지? 라는 멘트는 영화에서 나오는 영화속 대화인줄 알았는데 경험하니 순간 막막했다.

 

‘나를 놀리는건가’싶어 입건을 하고 출석요구서를 보내야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입건하는 순간 고소가 취소되어도 기록에 남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하므로 일단 연락부터 하는게 우선이라 판단하였다

 

그와 동시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 메뉴얼대로 ‘경찰민원상담번호 ‘182’에 제 소속과 신분을 물어봐주세요’라는 문자를 보내주었다, 온갖 상념에 해당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생각하며 30분간 땀을 뻘뻘흘리며 동분서주하던 중 차주의 번호로 사무실에 전화가 왔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수사관님. 182에 확인해보니 맞데요”

 

“A차주 주인 맞으시죠? 아니 왜 그리 급하게 끊으셨어요?.”

 

“나는 저 보이스피싱인줄 알았죠. 번호판을 가린적이 없는데 고발 되었다고 하고.... 죄송합니다. 제가 예전에 보이스피싱에 당한적이 있어요. 그때도 경찰이라고 해서 믿었다가 전세금을 홀랑 날리고 아직도 힘듭니다. 그래서 집사람보고 빨리 끊으라고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보이스피싱이라는 말에 그때야 시민분의 행동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이후 사건은 다행히 무사히 해결되었다. 차주는 당일날 무거운 물건을 싣느라 번호판이 휜거 같은데 몰랐다가, 회사 도착하고나서야 그사실을 알아차려 카센터로 간 내역까지 보여주었다.

 

“네 이정도면 잘 해결될 것 같습니다. 다음부터는 조금 조심해주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나는 또 보이스피싱범인줄 알고 글쎄 전화기를 들고 파출소까지 가려했지 뭡니까. 다행히 혹시나하는 마음에 알려주신 182로 전화해봐서 망정이지 신고할뻔했네요.”


 듣고보니 심지어 전화기를 들고 인근 파출소에가서 보이스피싱 신고까지 하려고 나온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나자 이전에 이단 전화를 끊고, 30분이 넘도록 계속된 연락을 받지 않고 확인하려한 시민분의 행동이 오히려 매우 적절한 대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닙니다. 잘하셨어요. 전화 조금 늦게 연결되더라도 범죄를 예방하는게 우선이죠. 정말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전화오시면 182로 확인하시면 빠르게 확인이 가능합니다”

물론 당시에는 처음겪는 일에 점점 감정적이기도 하였지만 차후 과정속에서 해당 차주의 태도가 범죄를 예방하는데 있어서는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되었다.

 


이사건 이후부터는 처음부터 경찰서보다  신분도 함께 밝히면서 오히려 먼저 ‘신분확인을 하길 원하시는 경우 182 확인 부탁드린다 문자를 안내해드리곤 한다.

 

무터운 여름 땀이 범범이 된 채로 30분간 사투 끝에 겪은 해프닝이었지만 덕분에 몇배로 소중한 경험을 얻을수 있는 행복한 해프닝이었다.

 

3만원도 안되는 돈에도 다른 이름을 대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182라는 예방책을 많은 시민에게 알릴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음에 행복한 전화 검문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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