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르름 Oct 01. 2022

모순의 장소, 교도소

새내기 수사 경찰 - 8화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가고 싶지 않은 두려운 장소를 꼽으라면 대부분이 치과라고 할 것이다.


나 또한 치과 가는 것을 워낙 두려워해서 어렸을 때 어머니는 그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어디를 간다고 알려주시지 않았다.

그 문 앞에서 얼굴이 새빨개질 때까지 들어가지 않을라고 울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단 것을 좋아하고 탄산음료를 입에 달고 사는 식습관 덕에 1년에 2~3번은 치과를 연례행사처럼 방문했으니 그 공포는 내 유년시절 오랫동안 질기게 따라다녔다.

 

“위이이잉”

드릴 같은 기구를 들고 의사 얼굴이 내 얼굴로 점점 다가올 때 두 눈을 질끈 감고 소리를 지르며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매번 다짐하건만, 매 번 엄마한테 속아 아픈 이를 감싼 채 어느새 치과 문 앞에 섰었다.


그래도 세월이 지나고 어른이 되면서 이를 치료하고 나오면 ‘올해 할 일 끝!’하는 뿌듯함까지 느껴지게 되었다. 가고 싶지는 않지만 반드시 가야만 하는 곳. 치과는 모순을 담은 장소이다.



 

경찰에게 있어서 가고 싶지 않은 장소란 없다. 신고가 들어오면 출동을 해야 하고 그곳이 어디이건 경찰은 code0부터 code3까지 평균 6분을 넘지 않는 시간 내에 현장에 도착한다.


그것은 수사관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인데 현장조사를 해야 할 때나, 피의자들이 연락이 되지 않을 때 주거지까지 직접 소재수사를 가는 등 어느 장소에서건 출장을 가 곤한다.

 

장소에 대한 편견이 없어야 하는 데다 경찰 공무원증을 목에 걸고 현장을 갈 때면 가고 싶지 않은 장소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수사관에 이름만 보고도 치과처럼 꺼려지는 장소가 존재하였다.


바로 교. 도. 소.

 


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 동료가 ‘다음 주에 교도소에 함께 접견을 가자’고 했을 때 분명 한국말인데도 전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교도소라는 장소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곳에서나 봐왔지 근처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 생소한 장소였다. 의경 때 진압을 위해 전국을 안 다녀 본 곳이 없고 세상에 이런 일이 존재할까? 하는 사건도 많이 보고 시신도 봤었는데 교도소라는 장소를 듣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자극적인 소재를 위해 교도소라는 곳은 폭동, 음모, 살인, 상해 등 온갖 범죄의 온상처럼 그려놓았기 때문이었다.

 

보통 교도소는 범죄를 저지르고 가는 곳이지만,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에 저지른 범죄로 교도소에서 접견 형식으로 조사를 받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피의자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동료 경찰 한 명과 동행하여 직접 교도소를 방문해야 한다.

 

그 말을 듣고는 그날부터 일주일 내내 시도 때도 없이 달력을 보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뭉쳐져 나에게 커다란 압박을 주었다.


아무리 경찰이라고 하여도 교도소에 직접 들어가서 조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심지어 꿈에서 몇 번이고 교도소에 들어갔다가 사건이 터져 억류가 되는 등 말도 안 되는 악몽도 꾸곤 했다.

 



처음 간 교도소는 경기북부에 위치한 ‘OO교도소’였다. 경기남부와는 거리상으로도 상당히 먼 곳인 데다가 내비게이션상으로는 검색이 되지 않기에 이정표를 찾아서 가야 했다.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숨겨진 장소를 찾아가듯 도착을 하자 무성하게 우거진 나무와 투박한 건물이 덩그러니 우리와 마주했다. 물론 경찰이라는 신분으로 접견을 하러 왔으며 동료 경찰과 함께 왔기에 무덤덤해보려 했으나 막상 도착해보니 3일 전부터 떨려왔던 마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교도소 사무실에 방문하여 안내를 받고 접견을 위한 건물에 이동을 하자 핸드폰 및 전자기기를 모두 제출하고 방문증을 주었다.

잘 때에도 꼭 곁에다 두던 스마트폰도 없이 사건 서류만을 들고 교도소 내부로 들어서려니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는지 동료 경찰관이 분위기를 풀어주려 애썼다.

나에게서 생명을 지켜 줄 것 같은 가장 큰 무기를 빼앗긴 병사 같은 표정이었을 것이다.

 

“교도소는 처음이시죠? 저도 제가 평생 여기에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그렇죠. 정말 생각지도 않았어요.”

이미 내 목소리는 내가 알아듣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작고 낮았다.

짧게 답한 채 주변을 미어캣처럼 고개를 빤히 들고 요리조리 살폈다.


당일 작업 중인지 수용자들이 무언가를 공사를 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그런 모습이 굉장히 낯설고 경계되었다.

낯선 곳이나 폐쇄적인 공간에 가면 몸이 먼저 알고 비상구의 초록 표시만 찾듯 일순간 영화처럼 무슨 일이 벌어지면 내가 움직일 동선까지 떠올랐다.

음 1번은 저기 2번은 저어 쪽.

 


여러 철문을 지나 접견장소로 들어서자 또다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흔히 영화에서는 분명 플라스틱 가로막이 손가락조차 지나칠 수 없게 막아서고, 전화로만 이야기하는 것을 봐왔다.

그러나 경찰이나 변호사의 접견 시에는 그런 것 없이 투명벽으로 둘러싸인 전화 부스 같은 장소에 수용자와 경찰을 함께 넣었다.

 

“뭐야 이게!”

그 모습에 순간 나도 모르게 다른 접견인들이 있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반말로 소리를 질렀다.

 

“수용자와 함께 이 공간에 들어서는 거예요?”

“그렇죠 조서 등 서류를 작성하면 종이에 다 지문 직접 받아야 하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동료 경찰관이 나를 안심시켰지만 곧이어 수용자들이 들어서자 더욱 가슴이 쿵쾅거렸다.


다행히 정신을 차리고 사건만 생각하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있었고, 그대로 수용자가 나를 지나쳐 반대쪽에 앉도록 해주었다. 실제로 보니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동료 경찰관과 수용자 모두 마치 평범한 민원 처리를 하듯 대화를 나누었지만 대각선으로 1m 되지 않는 거리에서 수용자를 마주하자니 온갖 잡생각에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를 1시간이 지나서야 조사는 끝났고 마치 해방이라도 된 듯 빠르게 장소를 빠져나왔다.

 

“천천히 가세요 주임님!!”

“아휴 적응이 되지 않네요 별로 오고 싶지 않은 곳이에요” 나도 모르게 거의 경보 수준으로 움직였다.

“그렇죠. 저도 오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도 우리는 와야만 하는 곳이니까요. 주임님도 담당 사건 맡으시면 다르실 거예요”

당시에는 내가? 또 이곳에 하는 맘으로 고개를 여러 번 저었지만 그 이야기가 현실이 되기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곧바로 경기북부권, 경기 남부권, 충남권등 온갖 교도소 및 구치소에 위치한 피의자들과 관련한 사건이 쏟아지면서 점점 교도소를 방문하는 횟수도 늘어갔다.


그러면서 교도소를 가는 것이 마치 일반 직장을 가는 것처럼 익숙해지고, 수용자와 마주하여도 직접 손가락을 잡고 지문을 찍어줄 정도로 무덤덤해졌다.

 

물론 시간이 지나도 교도소로 가는 것은 전혀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장소도 멀거니와 복잡한 절차를 거치고 만나는 수용자들과 2시간 안에 조사를 끝내야 해 준비도 상당히 필요했다.


많은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사전에 충분한 준비 없이 가면 필요할 때 전화를 하여 질문하고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없어, 필요한 질문을 하지 못하면 또다시 교도소를 찾아가야 하는 점도 꺼려졌다. 분명 까다로운 과정이고 일이었다.

 

그래도 나에게 주어진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에 어느새 서류철을 들고 자동차를 몬다.

아직 교도소에서 조사가 끝나고 나올 때 “할 일이 끝!”이라는 개운함까지 느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느슨해질 때 경각심을 주는 ‘가야만 하는 장소’까지는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교도소란 장소는 평생 가고 싶지 않은 장소일 것이다. 수사관을 하는 동안 어떤 지역에 얼마나 많은 교도소들을 방문할지 모르겠지만 장소 특성상 가고 싶은 장소는 될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수사관에게 교도소는 누군가의 억울한 사건, 그것이 고소인이든 수용자로 있던 피의자던 자신에 억울함을 듣고 풀어 줄 수 있는 해결의 장소이자 필요의 장소이다. 수용자들은 우리들을 사막의 오아시스로 여길 것이다.

 

가기 전에는 정말 가고 싶지 않지만, 조사를 마친 후에는 사건의 방향을 잡고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나올 때는 오길 잘했다는 감정이 들고 있다.


그러하기에 가고 싶지 않지만 가야만 하는 장소.


모순의 장소인 교도소로 가는 길이 어렸을 때 치과 문고리를 붙잡고 대성통곡하던 나에게는 어려운 문턱이었지만 무덤덤 해질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교도소를 가기 위한 서류를 준비한다.


그들에게 어쩜 우리는 빛줄기 일지 모르니.


매거진의 이전글 No Problem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