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르름 Nov 19. 2022

야채튀김이 있는 점심

새내기 수사 경찰 - 10화

주말에 집에 가면 제일 먼저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붉은색으로 화려한 액자에 담긴 1997년 카렌다 모델 사진이다.


물론 모델은 6살의 내가 주인공이다.


그 표정은 세상의 모든 행복은 다 가진 모습이다. 그 표정만 봐도 미소가 번진다. 30이 넘은 지금 나에게도 저런 표정은 남아 있다.


바로 야채 튀김을 먹을 때다.  


각양각색의 야채에 금방이라도 부스러 질 것 같은 바삭바삭한 노란색 튀김옷을 입은 야채튀김은 나에게 무한한 행복감을 준다. 한입 물었을  때의 그 고소함에 난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

이 행복은 경찰서에도 있다.



경찰서에서 아침마다 궁금한 것은 무엇일까

 

경찰이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조직이기에

어젯밤 검찰로 청구한 영장이 기각이 된 건 아닐까? 혹은 대규모 집회에 동원되는 것은 아닐까? 등 수많은 궁금증이 존재한다.

 그러나 평상시 별다른 일이 없다면 경찰관도 사람인지라 가장 궁금한 것은 다름 아닌 “그래서 오늘 점심 메뉴는?”이다.


학창 시절 우리를 그 힘겨운 공부의 무게를 덜어 준 것도 바로 그 점심의 힘!

 

 나 또한 매주 월요일마다 게시판에서 꼭 식당 메뉴만큼은 반드시 확인하고는 한다.

더군다나 수사경찰은 대부분을 사무실에 있기에 점심메뉴를 매 번 골라먹는 밖에서와는 달리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부분을 구내식당에서 해결한다.


따라서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맞이하는 점심식사는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고, 오후의 사건을 위해 필요한 귀중한 충전소이다.


경찰서에서 나오는 음식 중 특히나 기승전결 야채튀김을 좋아하는데 흔히 볼 수 있는 튀김이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야채튀김이 나오는 날이면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오죽하면 한 달 조사 일정을 꽉 담을 달력에 야채튀김이라 써놓고 별표까지 쳐놓았으니 팀원 분들은 내 연인의 별명이 야채튀김이냐고 물은 적도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미소가 번진다. 야채 튀김이라는 글자 때문에

 

오후 12시부터 1시.

경찰서에 있으면서 어쩌면 수많은 사건들 속에서 앞의 시간을 정리하고 뒤의 일을 정돈하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자 보장된 시간이다.

그러나 때때로 이러한 점심시간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가장 불가항력적이면서도 뺄 수 없는 시간이 바로 대질 조사 시간일 때이다.

발령받은 지 얼마 되지 아니하였을 때, 분명히 같은 팀원분들은 오전에 피의자와 고소인을 함께 부르는 대질조사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해주었다.

 

“대질조사는 보통 서로 간의 마주 보면서 하기에 의견이 극심하게 갈려서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기 마련이에요. 되도록 점심시간 이후에 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러나 초반. 사건에 대한 전 후 사정과 질문을 준비하는 것에만 몰두하던 나였기에 그러한 사건 외 팁들은 한귀에 머물다 흘러가 버릴 뿐이었다.

 

그러하기에 처음 오전에 고소를 한 사람과 고소를 당한 사람 두 명을 함께 불러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였을 때의 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날은 더군다나 내가 4개월 동안 구내식당에서 가장 좋아하는 야채튀김이 나오는 날이었다.

 

차근차근 배운 덕에 어느덧 사건에 대하여 자신감이 생겼을 무렵. 8월에 무더운 날 처음으로 대질조사를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짧은 떨림이 있었다.


당시 명예훼손으로 들어온 사건에서 양측의 의견은 너무나도 다른 이야기를 하였고,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해 고소인과 피고소인을 한자리에 불렀다.

 


그날 나의 달력엔 별표가 선명한 야채튀김이 나오는 날.

야채튀김을 먹을 생각에 아침부터 부풀어 올랐던 감정은 순식간에 두 사람의 신경전에 바스러져 버렸다.


서로 한 동네에서 이웃으로 친하게 지내던 두 사람은 처음 마주하면서부터 신경전을 벌였는데, 분명 시작은 10시에 하려 했건만 두 분 모두 각각 11시가 되어서야 조사실로 도착하더니 조사실 밖에서부터 서로 자신이 늦은 이유를 설명한다며 상당한 고성이 오갔다.


사유가 어찌 되었든 두 분 모두 지각하였으니 그만 좀 싸우시라 겨우 양해를 구하고 조사를 시작하였건만 이미 감정이 틀어진 둘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조사 내내 내가 한 명에게 질문을 하면 10초도 대답 듣지 아니하고는 곧바로 상대방은 끼어들어 싸우기 시작하였다.


“그만 싸우세요 일단 한쪽에 이야기를 듣고 답을 하시면...”

 

“아니 저런 말도 안 되는 비방에 허위사실을 지껄이는데 제가 왜 그걸 듣고만 있습니까. 수사관님 제가 제출했던 문자를 보시면...”


“어허 수사관님 말을 끊고 말이야 당신이 수사관이야?”

몇 번을 화도 내 보고 중간에서 타일러도 보았지만 조사 내내 둘은 심각하게 싸웠고, 1시간이 지나도록 확인하려 한 조서에 반도 지나지 아니하였다.


최대한 기다리고 있는 옆 동료를 보지 않은 채 갑자기 송곳처럼 튀어나오는 의견들을 최대한 다듬으며 조사를 이어갔지만 서로에 극도록 고성을 지르면서 이야기는 전혀 진행되지 못하였다.

 

“잠깐 그만 그만 그만!! 제가 두 분 싸우라고 이 자리에 부른 게 아니에요 잠시 10분간 머리 좀 식히다들 오세요”

 

벌써 시계는 12시를 넘겨버렸고, 조사실 주변에는 배고픈 나와, 참여 경찰관이 반드시 옆에 있어야 한다는 제도 때문에 본인 사건도 아닌데 있어야만 하는 내 동료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이거 미안해서 어떡하죠. 잠시 식사하고 오세요. 중단했다가 오시는 대로 진행할게요”

“아니에요. 먹어도 같이 먹어야죠 전 신경 쓰지 마세요 주임님”


미안한 마음에 팀원 분에게 사과를 하면서도 유일하게 휴식을 취해야 할 시간에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조사를 해야 한다니 마음이 다급하기 그지없었다.

 

배고픔과 팀원에 대한 미안함에 더해 서로 간 10년 이상을 함께해온 이웃의 날카로운 비방의 말 때문에 더욱 힘든 시간이었다.


그래도 사건을 대충 할 순 없기에 심호흡을 세 번하고 다시 고소인과 피의자를 불러 진행하도록 하였다.

 

“자 다시 시작을 하려고 하니까요”

 

“저 수사관님 뭐 근데 저희 이야기가 잘되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목에 핏대를 세우던 고소인이 갑자기 머쓱해하는 모습에 나는 적잖이 당황하였다.

 

“네? 뭐라고요?”

 

“그동안 직접 만나서 이야기 안 하다고 오늘 서로 한껏 소리 지르고 하다가 밖에 나와서 다시 이야기해보니 그냥 저희끼리 술 먹고 풀기로 했습니다. 시간 빼앗아 죄송합니다”

고소인에 이어 피의자 역시 그렇게 말하자 나는 잠시 얼이 빠진 상태로 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앞뒤 맥락 없는 상황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 화해를 하려면 조금만 일찍들 하시지. 아, 야채 튀김.....



 

“그러니까. 네. 지금 대질 조사 중에 조사를 멈추고 고소 인분이 고소를 취하(고소를 취소하는 개념)하시겠다는 뜻이세요?”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희 그냥 가면 되나요?”

듣도 보도 못한 상황에 내가 얼이 나갔다. 문득 함께 있던  참여 경찰관의 헛기침소리에 얼른 정신을 차리고 두 분을 다시 조사실로 불렀다.

 

“중단하시더라도 그것을 기재하고 여태까지 작성한 건 읽고 지문 찍고 가셔야 해요”

여태까지 작성한 문서를 뽑아 읽게 하자 두 분은 조용히 문서를 읽더니 상대방이 지문을 찍는 것까지 기다리고는 함께 나갔다.


영상 녹화 동영상을 cd로 옮기는 과정까지 다 마치자 시간은 12시 50분을 향해 갔고,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기계처럼 움직여 식당으로 뛰어갔다. 야채 튀김이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겨우 치우기 직전 몇 개 남지 않은 야채튀김이 그것도 꼬다리 부분만 남아 있는 것을 보고는 매우 화가 난 상태로 튀김들을 바라보았다.


튀김들은 이미 식다 못해 눅눅해져 내가 좋아하는 꽃송이 모양은 무너질 대로 무너 저 축 늘어진 상태로 기름마저 새어 나오기 시작했고, 색깔도 산뜻함은 사라지고 칙칙해저 보기만 해도 속이 매슥꺼리는 듯했다.

 

그래도 선택지가 없었기에 튀김들을 떨어진 부스러기까지 닥닥 긁어모으고는 식탁에 앉은 채 5분 만에 미역국에 말아 밥과 튀김 꼬다리 부분을 그야말로 마셔버렸다.


 

야채튀김은 비록 다 식어 빠지고 야채도 없이 튀김 끝부분만 남아있었지만 배고픔 때문인지 입에 들어가자 그 어느 때보다 맛있었고, 그토록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허기짐이 조금 채워지자 함께 있었던 참여 경찰관 동료에게 미안함이 크게 다가왔고, 그것을 넘어 애초에 이럴 거면 왜 1시간이나 넘겨 도착해서 쉴 새 없이 싸워 점심시간을 모조리 가져갔는지 두 시민에게 매우 화가 났다.

 

120일 동안이나 서로 녹취하고 싸우고, 대질조사에서도 2시간이나 치고받던 이들이 이렇게 갑자기 화해를 한다니?

 

이렇게 10분 동안 감정이 요동치는 동안 문득 어찌 생각해보면 10년을 넘게 형 동생으로 이웃으로 지내던 이들이, 고소까지 하는 원수지간이 되었다가 경찰서에서 다시 극적으로 화해한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는 그토록 사랑스럽게 생각되던 야채튀김이, 늦은 시간에 다 식어 빠진 모습으로 만나자 눅눅하고 기름덩어리 같아 쳐다보기 싫어지다가도,

배고픔에 막상 입에 들어오니 그 어느 때보다 그 기름 맛이 반가운 것처럼 두 시민 분도 잠시 이러한 배고픔과 같은 상황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후 함께 해 준 팀원 분에게는 기다려준 보답으로 커피 한잔을 사주고 사과도 하였고, 팀원 분도 흔쾌히 괜찮다 해주셔서 사건은 기승전까지는 고통스러웠으나 결에 이르러 갑자기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대질조사를 할 때면 나는 항상 오후 2시 이후로 시간을 잡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다른 명예훼손 사건은 대질 조사를 한다 해도 그 자리에서 화해를 하는 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요즘도 한 달에 한번 야채튀김이 나올 때면 당시 사건을 떠올리곤 한다.

 

수사관으로서는 돌이켜보면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고소를 할 정도로 극한으로 치달은 이웃 간의 사이를 수사과정에서 화해시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앞으로 몇 번 없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임이 증명될 때마다 점심시간까지 내려놓아야 하는 직업이지만 내가 자랑스럽다.


또다시 기간이 길고 수없이 싸우는 과정이 있더라도 서로 간에 오해가 풀려 관계를 회복하는 경우가 많아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항상 인내하며 모두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자세를 잃지 않아야겠다고 오늘도

나에게 6살의 미소를 주는 바삭한 야채튀김을 보며 다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놈!! 아저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