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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Mar 04. 2023

동물보호법이 넘어서야 할 숙습난방

새내기 수사경찰 - 13화

이제는 우리 집에서 볼 수 없는 광경이지만, 복날이 되면 비밀의 국을 먹었다.


그 국을 위해 할머니는 장날에 가서 가장 좋은 것으로 사서 냉장고에 넣어 놓고 그날을 위해 갖은양념을 준비했다.

 마치 그 국 하나에 우리 가족들의 1년 건강이 달렸다는 듯 비장한 마음까지 보였다



그날엔 온 집안에 비릿한 냄새가 가득했는데  날이 어둑해지면 그 거무튀튀하고 야들야들한  고기가  한가득 담긴 시뻘건 국을 먹었다.


당시 난 그 고기의 정체를 전혀 몰랐다. 단지, 이 국을 먹는다는 것은 우리 가족들에겐 특별한 아주 특별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이 국이 사라진 이유는 겁에  질려 오돌오돌 떨면서 찾아온 별 같은 눈을 한 지금의 반려견 복실이를 맞이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아버지 기억 속에 있는 이 국의 기원은 끔찍할 정도이다.

 개를 도축하는 방식인데, 살아있는 개에게 목을 매달고 기절하면 몽둥이로 죽을 때까지 패는 방법을 썼다고 했다. 동물을 때리면 고기 육질이 좋아진다는 잘못된 상식에서 비롯된 것인데, 몽둥이로 때리는 도중에 개가 깨어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가 목격한 경우는 목을 매단 개가 깨어난 경우였다.


느슨한 목줄에서 빠져나온 개는 온몸이 멍투성이인 상태에서 주인집까지 다시 도망쳤다가 다시 잡혀왔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살고 싶어 주인에게 도망쳤음에도 또다시 잡혀오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처음으로 국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복실이를 반려견을 넘어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듣기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물론 개인이 이 국을 먹는 것에 대해서 뭐라 할 수는 없지만, 키우던 개를 그런 방식으로 잡는다는 것이 매우 안타깝고 화도 났다.


주인을 위해 집 지켜주고,  외로운 노인들 친구 되어주고 그런데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잡았을까? 그건 아마도 역사 속에 존재했던 끔찍한 배고픔이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당시에 반려견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던 때이기도 하였고,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30~40년 전 이야기였기에 역사의 한 일상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게 웬걸. 예부터 숙습난방(몸에벤 습관은 고치기가 어려움)이라 했던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아버지가 목격했던 도축방식을 행하는 이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인사이동으로 한참 사무실 분위기 뒤숭숭한 2월. 늘 그렇듯 배당된 사건들을 훑어보다 ‘동물보호법’으로 신고를 당한 서류가 눈에 띄었다.


1년이 다 돼가도록 많은 사건을 해봤지만 동물보호법을 위반한 경우는 다뤄 본 적이 없어 아무 생각 없이 서류를 넘기던 중 형사과에서나 볼법한 사진에 순간 눈살이 찌푸려졌다.



지구대에서 첨부한 사진에는 끔찍하게도 불에 탄 채로 목이 매달린 개 사진이 여러 장 있었다.


보고서에는 자신이 키우던 개를 잡아먹으려고 나무에 강아지를 매달고 불에 태우는 것을 시민이 신고하여 발견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불에 탄 개 옆에는 잔뜩 화가 난 노인과 또 다른 개 2마리가 찍혀있었다.


사안이 시급해 보였다.

  

혐의 사실이 너무 명확하였기에 범죄 인지서를 치고 재빨리 피의자를 소환하였다.

하얀 백발의 90을 바라보는 노인은 조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굉장히 불쾌하다는 듯 오히려 나에게 항의를 하였다.


“아니 내 개를 내가 잡아먹겠다는 다는데  참나. 어떤 놈들이 신고를 해 대는 거야. 그리고 신고했다고 그걸 경찰서까지 부르고 말이야 원.”

  

반려견을 키우는 입장으로서 순간 울컥했지만 개인적 감정을 실어서는 안 되기에 최대한 아 무말 없이 권리를 고지해 주고 천천히 진술을 받았다.

  

“아무리 본인 개라 하더라도 동물의 목을 매다는 행위는 동물보호법 위반으로서 3년 이하의 징역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중 한 범죄입니다. 타인의 개였다면 특수 손괴로 검토할 사안이었어요.”


“아이고 법? 그따위 법이 어딨어. 막말로 사람을 매 단것도 아니고 내가 어릴 때부터 개만  수 백 번 먹어오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야. 다가져다 버리든지 해야지.” 노인은 마치 내가 키운 개에 대해 타인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기 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시종일관 화를 내던 노인은 목을 매달아 죽인 건 맞지만 죽고 불에 그슬린 거라며 도저히 그것이 왜 위법인지 이해하지 못하였다. 90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노인과 논쟁을 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았기에 앞으로는 다시는 개를 매달아 죽이면 안 된다고 하였다.



  또한, 처음 보고서에 첨부된 사진 속 찍힌  또 다른 강아지 2마리를 언급하며 현행법상 개 소유자가 함부로 개를 유기할 시 300만 원 이하 벌금이라며 신신당부하였다. 그러나 노인 분은 진술이 끝날 때까지 “알겠어 내 알겠으니, 다인 정할 테니 빨리 끝내나 주소”라는 말만 반복하고는 욕설을 내뱉으며 조사실을 떠났다


더 얘기하면 본인이 손해라는 듯.

  

그 뒤로 다른 강아지들을 어떻게 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법의 엄중함과 가중처벌의 가능성을 몇 번이고 알려드리는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만 오늘의 조사가 노인 분에게 ‘재수 없게 걸린 일로만 끝나지 않기만 바랄 뿐이었다



70년 만에 동물 보호법이 개정되어 2023. 4. 27. 경 시행되는 만큼 함께 동물보호법에 규정된 법률을 지키고 보호의무를 위반해 학대에 이르는 이들을 예방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전 법과 다르게 내년부터 시행될 법은 최소한의 사육관리 보호의무를 위반하여 상해 입거나 죽을 시에도 학대로 처벌한다. 바야흐로 반려견이 ‘견’을 넘어 ‘인’으로 가는 시대가 온 것이다.


아버지는 때때로 어릴 때 먹었던 거무튀튀한 비밀의 국이 생각나지만 더 이상 그립지는 않다고 하신다. 복실이가 오면서 가족들도 건강해지고 또 다른 아들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몇 배는 배가 부르다고 하셨다.

  

우리나라에게는 보신탕을 먹는데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만 또한 반려견을 사육하는 데 있어 지켜야 할 법 또한 존재한다. 아버지처럼 60 평생 먹던 보신탕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동물을 학대하지 않는다라는 법에 정해진 가장 기본적 의무만큼이라도 함께 지켜갔으면 한다.


아버지가 직접 본 것을 나에게 들려주었을 때, 공개된 장소에서 개를 잡는 풍습은 거의 없어져 있었다.

훗날 10-20년이 지나 자녀에게 해당 사건을 들려줄 때에는, 거의 없어진 것이 아니라 완전히 사라진 폐습이었다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언제 또 다른 동물보호법이 내 보유 사건에 들어올지 알 수가 없다.

다만 경찰로서 개정된 동물보호법이 우리 사회의 숙습난방을 넘어서도록 일선에서 노력해 보겠다.


그것이 반려견을 가진 우리들의 정신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시대에  가족들에게 선사할 비밀의 국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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