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_10
알바를 했던 때였다. 돈이 필요했다기보단 뭔가 시간을
채우고 싶었다고 해야 하나?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시간에 같이 일하던 남자애가 있었다. 꽤나 큰 키에 굵직한 얼굴을 가진 친구였다. 내향형의 친구라 주로 내가 말을 걸었었다. 무슨 공부하냐, 왜 왔냐, 등등 주로 질문은 내담당이었다. 어느 날 옆에서 또 열심히 조잘거리고 있었던 때였다. 영화 보는 걸 좋아했기에 학교 근처 영화를 자주 보러 다녔고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날도 알바를 마치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러 간다고 했었다. 그때 보려고 했던 영화는 써니였다. 그때 꽤나 자세히 영화 보는 걸 물어봤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는 몇 시인지, 어디서 보는지. 정말 별생각 없이 미주알고주알 얘기를 했었더랬다.
알바를 마치고 영화를 본다고 앉아있었는데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누가 내 옆자리에 다급하게 와서 앉았었다. 영화시작하고 헉헉거리면서 앉은 것도 신경 쓰였는데 늦은 것도 짜증이 나서 옆을 슬쩍 봤는데, 어? 그 남자애였다. 그러고는 영화를 본 건지 읽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손을 잡았는지 안 잡았는지도 기억에 나지 않는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그 또 복잡 미묘한 감정? 사실 내가 좋아하기에도 너무 멋있었던 친구였고 상상도 하지 못할 내용전개였는데. 그 사람이 내 옆에 있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날 데려준다고 집까지 걸어갔었다. 무슨 얘길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같이 걸었고 이 친구가 나를?이라는 생각에 심장이 벌렁거렸다는 것만 기억난다. 집 근처에 왔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그와 첫 키스를 했다.
그때부터 알바도 하고 연애도 하고 재미있는 시간들이 시작되었다. 무뚝뚝하고 연애한번 못해봤다던 그 친구는 날 보면서 한 번씩 웃곤 했고 내가 조잘거리는 거에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참 달랐던 친구였다. 나는 친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면 그 친구는 그냥 착실했던 얌전했던 친구였다. 나보다 어렸던 친구였지만 오빠노릇을 한다거나 동생처럼 애교를 부린다거나 하는 그런 친구도 아니었고, 센스가 있는 그런 친구도 아니었다. 세상 무뚝뚝한 친구였지만 사실 난 그런 우직함과 정직함이 좋았다.
같이 차도 빌려서 여행도 가고 여행지에서 데이트도 하고. 지금 사진을 보면 촌스럽기 짝이 없는데 커플티도 입고 예뻐 보이겠다고 꾸민 나를 보면 좀 우습기도 하다. 지나가다 장미꽃하나 받고 싶다 하니 어느 날 장미꽃하나사서 약속장소에 나타나주고. 같이 등산하는데 김밥을 싸왔는데 참기름이 없어서 식용유를 발라서 가지고 오는. 그와 나의 에피소드. 때론 그 우직함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너무 좋았다. 날 향해 계속되길 바랐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와의 그 시간들이 고맙고 미안하고 소중하다. 정말 젊은 날 날 많이 행복하게 해 주었었다.
하지만 그는 뭔가 유연하거나 센스 있는 남자친구는 아니었다. 좀 돌려 말을 해야 할때도, 하지 않아도 될 말도 그는 솔직함을 앞세워서 늘 다 말했었다. 공부에 지쳐있거나 컨디션이 안 좋으면 약속당일에 파투 낸다거나 내가 그를 기다린다고 몇 시간을 기다리게 한 적도 있었다. 연애한 지 시간이 꽤 지나서 명절 때 별거 아니지만 부모님과 함께 먹으라고 송편을 사준 적이 있었는데 부모님이 좋아하셨다거나 하는 말도 없었다. 지금생각해 보면 가져다주긴 했을까 싶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의 어머니는 나를 싫어하셨다. 그가 말했다. 어머님이 날 좋아하지 않는다고 조율할 생각도 그는 없었다. 당장 결혼을 하거나 할 건 아니었지만 그게 그리 편할리는 없었다.
나도 어설펐다. 좀 더 여우처럼 그를 조련할 수 있었을 텐데 연애기술 따윈 없는 나였기에. 어느새 그가 여우가 되어가고 있었고 나는 곰이 되어 가고 있었다. 사실 그가 졸업준비하고 공부에 지쳐가고 있었고 나를 향한 마음이 줄어들어든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애써 모른척했다. 그가 내가 싫다고 말했다. 내가 붙잡았었다. 힘들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한번 붙잡으면 될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