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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레사 Mar 27. 2024

김치와 엄마

김장 첫경험

오늘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M언니네 모여 김장을 하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앞치마, 고무장갑, 수육 삶을 재료, 그리고 가지고 있는 밀폐용기 중 가장 큰 통을 들고 집을 나섰다.


김장은 처음이다. 엄마 곁에서 고춧가루나 액젓 따위를 손에 덜어주는 식으로 거들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M언니는 열 포기 정도 되는 배추를 전날부터 절이고 헹궈 놓았다. 그 일이 김치 만드는 일의 반을 차지한다고 하니,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김치는 예상대로 만들기 참 힘들었다. 마늘, 양파, 무, 파, 배, 생강 등등 다양한 재료를 씻고 다듬고 자르는 일에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었다. 배추에 김치 속을 바르는 일은 허리와 팔에 무리가 갔다. 싱크대 앞에 서서 하다가 결국 우리 엄마가 하듯 바닥에 철퍼덕, 앉아 남은 일을 마저했다.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매 해 김장철은 엄마에게 큰 숙제였을 텐데, 나는 그동안 그 부담을 헤아리지 못했다. "힘들면 그냥 사 드세요."라고 말했을 뿐, 힘들어도 굳이 왜 해 드시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자주 사 먹어보니 알겠다. 사 먹는 김치는 집에서 만들어 먹는 김치를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을. 힘들 줄 알면서도 김치 만들기에 뛰어든 것은 그 이유에서였다. 


김치를 그리 많이 먹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한때는 김치 없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그건 경기도 오산이었다. 김치가 도처에 있는 환경에서 김치의 소중함을 몰랐던 것뿐이었다. 엄마가 나눠 주는 한 포기의 김치에 이토록 많은 수고가 들어가는 줄은 직접 해보기 전에는 몰랐다. 김장철만 되면 엄마가 왜 그리 걱정 근심을 했는지,  김장 TF팀을 꾸리는 일에 열심을 냈는지 이제야 알겠다. 


엄마에게 김치 사진을 찍어 보냈다. 엄마는 내가 만든 첫 김치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너무 맛있어 보인다고, 한 입 맛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나보고 대단하다고 했다.

"어머나 우리 딸 솜씨 좋구나. 정말 먹음직스럽다~ 대단해. 최고!"

나는 그 칭찬 앞에 우쭐하기보다는 숙연해졌다. 엄마는 김치를 만들고 나서 대단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까? 수십 년 동안 매 해 대량의 김치를 만들면서 단 한 번이라도 칭찬받은 적이 있을까?


김장을 앞두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장을 봐오던 엄마. 티비 건너편에 앉아 한참동안 마늘을 까던 엄마. 밤새 절여 둔 배추를 뒤집고 헹구던 엄마. 무를 썰고 채소를 다듬던 엄마. 김치 속을 채우며 옷과 팔뚝에 자국을 남겼던 엄마. 함께 김장하러 온 이들에게 수육을 삶아 점심상을 차려 대접하던 엄마.... 나는 너무나 늦게 그때의 엄마와 함께하고 싶어졌다. 구경꾼 말고, 심부름꾼 말고, 노동도 부담도 똑같이 나누는 딸로.


엄마는 아직도 김장에 미련을 놓지 못하고 있다. 몇 해 사드시는가 싶더니 결국 절인 배추를 사서 다시 김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몇 년전 부터는 작은 텃밭에서 직접 수확한 배추로 김치를 만드신다. 나는 오늘 딱 한 번 해보고는 다신 해 먹지 않으리 생각했는데.... 또 모르겠다. 엄마처럼 말을 번복하게 될지도.

김치. 김치가 뭐길래. 울고 웃고, 맛있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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