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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Mar 01. 2024

안녕 환상의 나라

대기 6시간 동안 만난 것들

"푸바오 이제 간대, 보러 갈래?"

일의 시작은 툭 던진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줄이 어디까지야?"

"평일인데 무슨 일이야"


나도, 너도, 이 사람도, 저들도 똑같은 말을 하며 늘어진 줄 끝을 찾는다. 주차장 근처까지 빙 둘러싼 입장 줄. 아직 오픈 시간 1시간 전이지만, 그만큼 푸바오 존재의 가치를 깨닫는다.




"뛰는 건 그렇다 쳐도, 밀치고 가는 건 아니지.."


푸바오 보겠다고 오픈런 한 대부분이 우르르 뛰어들어간다. 우리는 '큐 패스'를 구입했다 생각해 천천히 여유 부리며 걷는다. 그리고 큐 패스 줄에 서려고 했을 때, "큐 패스가 아닌 스마트 톡 옵션을 구매하셨네요" 직원분의 한마디에 멘털은... 와사삭... 우리가 구매한 '푸린세스 시즌 2' 설명에는 분명 'Q-패스 & 입장권'이라고 쓰여있었는데, 아니었다. 


"그냥 포기하고 집 갈까?" 


화도, 짜증도 난다. 할 수 없이 푸바오 줄 끝을 찾아 걷고, 걷고. 에버랜드 한 바퀴를 돌아 결국 걸어 들어왔던 입구 쪽에 줄을 섰다. 대기시간 220분.




우리가 온 목적은 '푸바오' 였으니까, 220분도 기다려서 보고 가자. 아침도 안 먹고 왔기에, 한 명은 줄을 서고, 다른 한 명은 스낵 코너에서 간식을 사 온다. 네, 스낵코너도 웨이팅이 있어요.. 


달콤 닭강정과 추로스.


입에 달달한 게 들어가니 올라왔던 화를 잠재우고, 그제야 에버랜드 풍경을 조금씩 구경한다.





아주아주 어릴 때, 부모 손 꼭 잡고 왔었던 에버랜드. 헬륨 풍선을 사서 신나게 들고 다니며 요 '토끼와 거북이'와 함께 사진도 찍었었다. 그들이 아직도 있다니. 




'자동차 왕국' : 일하고 싶던 곳.

귀여워 미쳐. 80~125cm 아가들만 탈 수 있던 어트랙션. 뽀짝 뽀짝 걸어 다니는 아가들이, 혼자서도 제대로 놀이 기구 탈 수 없는 아가들이 부모 손에 들려 자동차에 탄다. 꽤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놀이 기구. '무서워 울지 않을까?' 걱정하던 우리는 놀이 기구가 출발하고 신나서 방긋방긋 웃는 아가들 모습에 놀라움을 느꼈다. 저기서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가들도 보고, 추억 팔이도 하고, 추위에 덜덜 떨다가 2시간이 지났다.




최종 3시간이 흘러 입구! 예상 220분 실제 180분.

"얼마나 귀여울까?"




'헙' 모두가 터져 나오는 감탄사를 막는다. 귀염둥이를 눈앞에서 봤다는 비현실감에 절로 감탄이 나오지만, 조용히 해야 한다. 



"안녕"

뽀실뽀실한 생명체가 눈앞에 있다. 장난기 많은 녀석은 아직 제어되지 않는 자기 몸들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곰인형이 돌아다닌다.




"동그란 눈에 까만 작은 코, 하얀 털 옷을 입은 예쁜 아기곰.

언제나 너를 바라보면서 작은 소망 얘기하지."

_예쁜 아기곰 동요




생각보다 크지만 아직 너무 아가인 곰. 작은 다리로 엉금엉금 기어 다리를 건넌다. 눈에 들어오는 그 모습들이 행복하다. 

나무를 잡아 야금야금 씹는 모습.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금 기분은 어떨까, 이따가는 뭘 할까 사소하고 별거 아닌 궁금증들이 아기바오를 향한다.


그렇게 짧은 5분이 지나고,


"밥 먹을 곳 없을까?" 




아침부터 점심을 훌쩍 넘긴 오후 1시까지 간식으로 버텼다. 판다월드를 나온 후, 식당을 찾는데,

없다. 먹을 수 있는 곳이. 간단한 스낵코너 역시 긴 웨이팅으로, 식당은 말할 것도 없다. 할 수 없이 그나마 줄이 짧은 분식 가판대에서 떡볶이와 어묵꼬치를 구매한다.




먹고 쉬고 이솝빌리지: 에버랜드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 

<시골 쥐와 서울 쥐> 캐릭터 앞에서 처음 사진을 찍었을 때가 아마 대략 16년 전. 어린 날의 공간이 아직, 여전히, 온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건 행운이야. 어릴 때 놀던 놀이터나 동네는 하나둘씩 바뀌고 있는데. 에버랜드에 고맙다. 그리고 앞으로도 제발 이솝빌리지가 존재하길. 




<개미와 베짱이>. 베짱이 인형은 아직도 있지. 

이외에도 여러 동화 속 캐릭터 동상이 있었다. 커다란 동화책을 만지면, 콧수염 뭉실하게 나고 풍채 있는 할아버지가 나와서 흔들의자에 앉아서 우리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듯 내레이션이 나온다. 


우리 앞에는 2,3살 배기 아기가 있었다. 부모는 아가를 가운데 끼고서 눈높이를 맞춰 동화 이야기를 한다. 

또, 에버랜드 캐스트들과 아가들이 모여서 비눗방울을 불며 까르르 웃고 있다.


이솝빌리지는 포근한 공간이다. 이 순간에, 눈앞에 따뜻한 난롯불의 행복을 가득 안을 수 있는 곳이다.




"아까 그 사람이다."

분명 우리 뒤에 줄 서던 사람이 다시 판다월드 줄에 서있는 게 아닌가. 그분도 우리를 알아봤는지 딱 눈이 마주쳤다. '대단하다' 감탄하며 우리는 맛있다던 오오츄를 먹으러 간다.




40분 기다려 먹는 오오츄.


"잠시 후 5분 뒤에 판다월드 줄 마감하겠습니다."


"끝난 게 아니야? 또 볼 수 있는 거야?" 추로스를 기다리다 캐스트의 말 한마디가 귀에 쏙 박힌다.


"일단 가서 서봐"




그렇게 다시 판다월드.

오후 4시에 다시 3시간 웨이팅.




조용히, 천천히 그러나 빠르게. 

바로 앞자리를 선점해 푸바오를 만났다.




"췁췁췁췁"

대나무를 맛깔나게 드신다.

아기바오들보다 컸어도 여전히 아기 같다. 여전히 어린아이 같다. 

TV에서만 보던 푸바오를 보니 신기하고 귀엽고 판다 탈을 쓴 사람 그 자체인데, 판다라고 하고, 그런데 한 달 뒤에 간다는 게 서운하고 안쓰럽고 속상하기만 하다.




인형이자 공주이자 여전히 아가인 푸바오. 

"이동해 주세요." 5분은 순식간에 지나고,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에 무거운 인사를 보낸다.




그렇게 총 대기시간 6시간의 바오가족 모두를 만났다.




오픈시간에 들어와 폐장시간에 나간다. 푸바오 덕에 9년 만에 다시 온 에버랜드. 시간은 흘러 내 모습과 생각과 체력은 변했지만, 에버랜드는 이솝빌리지의 베짱이와 시골쥐는 여전했다. 그렇게 만난 우리는 여전한 사이 같았다.




가는 길 어두워진 밤거리.

고갤 돌려 창밖을 본다. 한 사람은 퇴근을 한다. 다른 한 사람은 일정을 마친 후 귀갓길,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일과 후 강아지와 산책하는 길.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을 각자의 이야기로 써 내려간다.




끝은 국밥 엔딩.

추위에 떨고, 약 8시간 웨이팅에 지친 몸을 뜨끈하게 녹이며 길었던 하루가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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