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브런치 1호 아이돌과의 1:1 팬미팅 후기
공모전에서 낙방하고 글쓰기도 방치한 채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나의 첫 브런치 1호 아이돌이 연락을 보내왔다.
Jin: 11월 10일 뭐해욘
김토끼: 무수리가 뭐하긴 수발들겠죠
Jin: 확 마 서울간다!
김토끼: 띠용?
Jin: 현피 뜰거면 나오든지
김토끼: 몇 시에...?
그녀는 새벽 5시 반에 출발하는 열차표를 보여주었다. 이 새벽기차 타고 온다는 건 아니겠지, 설마.
Jin: 맞는데. 그거 타고 8시반에 서울 입성.
김토끼: 눼....???? 왜...????
최근 난임공모전에서 당당히 입상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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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을 빌미로 서울에 온다하였다. 그녀는 정성스레 수상소감도 준비했는데 그 내용의 기골이 장대하여 연기대상 감이었다. 나는 드레스와 풀메이크업을 요구했으나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서울쥐로서 그녀에게 휘황찬란한 여행계획표를 짜주고 싶었다. 그렇기에 때마침 그녀가 사랑하는 알폰소 무하를 보여주려 하였으나 하필 그날 휴무였다. 그녀의 찰나거리를 확보해주려고 덕수궁을 추천했으나 덕수궁도 휴무였다. 다른 전시회도 추천했으나 다 휴무였다. 휴무의 휴무에 의한 휴무...
휴무가 아닌 유일한 궁은 경복궁이었다.
가라! 가서 찰나의 조각을 모아오너라! 조만간 이서의 사담에 새 글이 올라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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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그녀는 약속대로 찰나를 올렸다.
랜선에서만 소통하던 사람과 실제로 만나는 건 이번이 두번째였다(한번은 대학생때). 나는 소개팅의 명소인 식당을 예약했고 그래놓고 그녀가 나보다 먼저 도착하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아...안녕하세요...”
전화통화를 할 때만 해도 세상 적극적인 그녀였는데 막상 만나고 나니 수줍은지 가오나시처럼 머리칼을 내려 얼굴을 숨겼다.
“뭐하세요?”
“부끄러워서...저...극내향인이에요...”
“그래서 눈도 못 마주쳐요?”
“좀...시간이 필요해요...”
내 얼굴은 절대 안 쳐다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는 참 잘했다. 역시 나의 아이돌(?) 독특해.
눈은 내리깔고 있지만 입은 쉴새없이 움직였다. 나도 이에 질세라 열심히 호응했다. 시간은 빠르게 잘도 갔다.
그녀의 인토네이션에는 슬슬 사투리가 배어갔다. 나도 슬슬 그 사투리를 따라할 것만 같아서 조심했다. 그녀에게 이것저것 준비한 선물을 내놓으며 나의 배아픔을 숨겼다. 뜻밖에도 그녀도 나의 선물을 준비했었다.
그녀의 앞에서 당당하게 나도 다른 공모전 입상했다고 보여주고 싶었는데 보기 좋게 실패했다. 본심도 못 뚫고 입뺀당했다. 그저 자존심 긁힌 꼬질한 토끼만이 남아있었다. 대신 그녀는 나의 행운을 빌어주며 네잎클로버를 내밀었다. 다음엔 잘 될거라고. 이 네잎클로버가 지켜줄거라고. 그 마음이 고맙고 따뜻했다.
꼬질 토끼가 가지고 있던 축하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녀의 글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버텨왔는지 알 수 있으니까. 그건 상 받아 마땅했다. 더 큰 상을 받아 마땅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샤샤* 발표 아니에요?”
(*샤샤: 샤롯데문학상의 애칭)
“문자온 거 없었는데.”
“우리 둘다 아니라면 누가 됐나보자 마!”
찾아보니 11월 14일에 발표한다는 공지가 올라와있었다. 날짜가 원래 그 날이었는지 미뤄진건지 둘 다 헷갈려했지만 나중에 확인해보니 연기된 게 맞았다. 차라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 뒤로는 글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서로의 아이를 공유하며 깔깔거렸다. 엄마토크란 그런 것이었다. 포카리스웨트 광고 속 여주인공처럼 청량한 그녀의 딸이 탐났다. 10살 연하남은 어떠냐며 나는 가열차게 홍보를 가했지만 속으로 약간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녀가 좋아하던 토마토절임 (밑반찬).jpg
장장 4시간동안 두 아줌마는 1분의 오디오 공백도 없이 떠들었다. 떠들다보니 이 근방에서 모블랙 작가님이 일한다는 게 떠올랐다. 급하게 그도 불러볼까했지만 시간은 야속하게도 오후 1시 1분. 이미 사무실로 돌아간 그를 도로 끄집어낼 수 없었다. 다음을 기약해보기로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목이 아팠다. 목이 아프도록 떠든 게 몇 년만인지 모를 일이다. 요새 계속 병든 닭처럼 지냈는데 생각해보니 그녀와 수다떠는 동안에는 울적한 생각을 하나도 하지 않았었다. 몸살나던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없이 고마웠고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했다. 역시 영원한 나의 1호 아이돌. 그녀의 존재만으로 나에게 비타민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덕질은 계속된다.
우울할 땐 고기가 아닌 수다 앞으로.
시상식장으로 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찬란했다. 앞으로 그녀의 글길도 꽃길과 따사로운 햇살이 함께하기를.
다행히 그녀의 서울 나들이는 즐거웠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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