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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 May 27. 2024

혼자 기차 타고 혼자 장보고 혼자 커피 마시는 나

혼자 하는 삶도 행복하고 함께하는 삶도 행복하고

아들의 피아노 연습 문제로 파리시내에서 3번을 쫓겨나서 아예 멀리 외곽지역으로 이사 온 지 3년이 지나고 있다.

처음 파리를 떠나 이곳으로 올 때는 아는 사람하나 없는 낯선 곳이라는 생각에 많은 두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 조용하고 안락한 이곳이 좋다.

 연습 문제로 싸우고 조율하고  결국에는 이사를 해야 했던 그 세월이 다 지나고 나니 이제 프랑스에 남은 지인들이 거의 없다. 다들  한국으로 돌아가고 아니면 또 다른 나라로 가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남았던 친구 한 명도 작년에 한국으로 귀국하고 한동안  파리 시내에 나가도 만날 친구가  없었다.

우리 집에한 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파리 시내는 간혹 한국마트를 갈 때나 미용실을 갈 때 나가곤 하는데 예전에는 내가 파리 나가는 날이 그 친구를 만나는 날이었더랬다.

같이 장을 보고 맥도널드에 가서 햄버거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그날이  친구랑 데이트하는 날이었는데  요즘은 혼자 장을 보고 혼자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한동안 보냈었더랬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커피 마시면서 혼자 샐러드를 사 먹곤 했다.

그 사이에 나는 한국말을 한마디도 안 할 때도 있다.

아.. 한국마트에서 장보고 한국직원에게 계산하고 나올 때는 감사합니다. 한마디는 했었지.

그나마 프랑스 직원에게 계산을 할 때면 그 한마디의 한국말도 쓸 일이 없게 된다.

카페에 가서 커피를 주문할 때도, 다 마시고 나갈 때도 불어로 인사를 하니  간혹 아들이 지방으로 연주를 가거니 콩쿠르를 가거나 해서 집을 비우는 날이면 한국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물론 사람과 말이다. 강아지에게 매일 종알종알 얘기를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이런 삶이 불행하다거나  엄청 살아가기 힘든 것은 아니다. 가끔은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동안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나로서는 어쩌면 혼자 고요히 살아가는 이 시간이  나에게 필요했구나 하고 느끼곤 했다.


시절인연이라고 했나. 지나가는 것은 지나가게 놔두니 이 고요함이 좋은 순간이 오고 또 이 고요함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인연을 만나게 되니 이 또한  행복으로  내 삶에 스며들었다.


사는 곳이 어디든 무엇을 먹고살든 그런 것들이 내 마음의 행복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프랑스만 떠나면, 외국 생활만 정리하면 행복할 것 같다던 친구는 한국 생활에서 그다지 행복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무료하고 지루하다고 한다.

인생의 반이상을 외국에서 긴장하며 매일 일어나는 다양한 변수들을 감당해 내며 살았던 터라 안전하고 편안한 한국생활이 무료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남의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긴장하는 순간이 꽤 많기 때문이다.

그런 긴장된 삶 안에서 가끔씩 내 마음을 후려치는 사람들 간의 스트레스는 MBTI의 극 E의 성향을 가진 나도 집안으로 숨게 만들었으니.  

여러 일들을  겪어내며 나는  내가  꼭 마주해야 하는 일들을 제외하고는 주변정리를 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아마 인간관계도 좁아지고 단조롭게 되었겠지만 반대로 해석해 보면  정신을 분산시키지 않고 집중해야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거라고 여겨도 좋을 것 같다.


내일은 1주일에 한번 파리로 운동을 하러 가는 날이다. 요즘 몸이 안 좋아 필라테스를 하고 있는데 한국인 선생님을 찾아서 파리에서 운동을 한다.

기차 타고 한 시간 파리로 나가다 보면 처음엔 그 시간이 지루 했지만 요즘은 기차 안에서 책도 읽고 유튜브를 보기도 하고 여행 가는 마음으로 다니고 있다.

내가 타고 다니는 기차는 지상과 지하 둘 다 다니는데 우리 집은 시골이라 한참을 지상만 달린다. 기차 타고 바깥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계절이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어서이다.

내일도 운동 끝나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까페라떼 한잔 마시고 돌아올 예정이다.

개운하게 운동하고 맛있는 커피 마시고 올 생각에 오늘 저녁도 내 마음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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