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탱고 폭스트롯(2016)>
평범한 뉴스 기자 킴 베이커는 우연한 기회로 책상 앞을 떠나 아프가니스탄 출장을 가게 된다. 3개월 정도의 짧은 시간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파견. 뭐, 전쟁터라고는 하지만 옛적 받은 기본 취재 훈련만 생각한다면 어려울 것 없지 생각했다. 매일 똑같은 책상, 똑같은 피트니스 센터, 하루하루 같은 나날을 반복하는 것보단 재미있을 테니.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가혹한 법. 킴의 생각과는 다르게(사실 킴이 너무 낙관적이었던 탓이지만) 아프가니스탄의 환경은 몹시도 열악했다. 곳곳에 배설물 냄새가 진동하고, 인터넷은 제대로 터지지도 않고, 동료랍시고 있는 사람들 말하는 꼬락서니들은 모조리 정신줄을 놓은 것만 같고. 눈물이 절로 나왔다. 게다가 뉴욕에선 나름 구를 대로 구른 사람인데 초짜 취급이라니! 불어오는 모래바람에 머리는 개판, 화장실이 가고 싶어 죽겠다 하니 길 한복판에 노상 방뇨나 하게끔 하지 않나…. 심란하다, 심란해.
그래도 나름대로 프로 의식 있는 사람이고 단기간 출장이니 일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든 3개월을 버티려 노력하는 킴.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으로 적군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녀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장에 뛰어들어 취재에 성공한다. 특종을 따냈다는 뿌듯함, 그동안 저를 무시하던 군인들과 방송인 동료들의 칭찬까지. 킴은 자신감과 동시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침을 느낀다. 이 생활, 제법 할만할지도?
예상처럼 종군 기자 생활에 익숙해진 킴. 이젠 뉴욕보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삶이 훨씬 즐겁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런 킴에게 한 동료는 그녀가 폭력성에 지나치게 중독되었다며, 그러다 정말 위험해질 거라 조언한다. “그런 말이 있죠. ‘사슴을 따라갔는데 멧돼지한테 쫓기게 됐다’”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킴을 보며, 결국 그녀와 일하길 거부하는 동료. 그의 뜻을 이해는 하지만,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킴은 여전히 같은 생활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아프가니스탄의 소식은 더 이상 미국 본토에서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된다. 원래도 잊힌 전쟁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젠 정말 누구도 흥미를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게, 항상 어떤 가벼운 교전이 있었다, 근데 뭐 어떻게 우리 군인들이 해냈습니다ー처럼 똑같은 내용이었으니. 방송사에서도 예산을 줄여 아프가니스탄에서 머무는 미래는 점점 더 불확실해져만 가고. 이미 차오르는 붉은 아드레날린의 맛을 본 킴은 더 이상 뉴욕에서 어떤 행복도 느낄 수 없을 것만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특종, 특종을 잡는 일뿐! 반드시 이곳에 계속 머무르고 말리라!
“여기서 일하다 보면 우리 모두 다 그렇게 돼. 정상에 대한 정의가 바뀌지.”
킴 바커의 저서 『탈레반 셔플(Taliban Shuffle)』을 원작으로 티나 페이, 마고 로비, 마틴 프리먼 등의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하는 전쟁 영화,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이다. 일단 제목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영어로 Whiskey Tango Foxtrot, 각 단어의 뜻은 싸그리 무시하고 첫째 자리만 합쳐 ‘WTF’다. 무언가 떠오르는가? 그게 맞다. ‘What The F***!’ 어쩌다 이리 됐냐고? 개인의 식견과 경험이 다소 부족한 탓에 자세한 설명은 어렵다만, 이를 ‘포네틱 코드(Phonetic Code)’라고 하는데, 군사 등 무선 통신 시 개개인의 알파벳 발음에 의한 혼선을 막기 위해 NATO에서 만든 알파벳 체계라고 한다. 아무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의 뜻은 <왓더퍽>이라는 말씀.
제목은 군 용어(욕), 배경은 아프가니스탄, 주인공 직업은 종군 기자라니. 이렇게 말하자니 왠지 무섭고, 무겁고, 또 거칠 것 같다. 물론 전쟁이란 게 다 그렇긴 하다만, 이 작품이 전쟁 영화이기도 하고. ‘어? 나 그런 거 싫은데?’ 아니, 한국말은 끝까지 다 들어야 한다고 어느 현인이 말하지 않았는가. 뒤로 가기 버튼을 멈추시라. 이 영화는 장르 통념과 조금 다른 타입이니.
”여기서 일하다 보면 우리 모두 다 그렇게 돼. 정상에 대한 정의가 바뀌지.”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은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전쟁의 참혹함이나 영웅담에 집중하지 않고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평범한 직장인이 낯선 곳으로 발령되었는데, 그 장소가 전쟁터인 것이다. 그리고 그 장소가 주는 자극에 중독되어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모습, 그건 마치 어디선가 본 듯하다.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나임에도 어쩐지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마침내 생각하게 만든다. ‘내 일상을, 나를 좀먹고 있는 익숙한 어떤 것에 대하여’ 즉,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전쟁이라는 극단적이고 거대한 배경 속에서, 작고 평범한 한 사람이 겪는 혼란과 성장으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쟁 영화’와 다소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오히려 ‘자기 계발적’이라고 말한다면 모를까.
즉 이 작품은 끊임없이 해내고 싶은 욕망, 자극을 좇는 삶만이 진실이라는 착각, 이 혼란 속에서만 내가 진실로 빛날 수 있다는 위험한 확신에 깔아뭉개진 사람(킴이든, 당신이든)에게 ‘나는 정말 괜찮은 걸까?’하는 질문을 던진다. 전쟁터를 묘사하면서도 결국 평범한 우리 각자의 이야기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가끔은 멀리까지 돌아가야 가까운 곳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법이라고도 하니. 이번 주는 아프가니스탄까지 직접 가서 이 사실을 깨닫고 돌아온ー고맙게도!ー 킴을 보며 마음챙김? 마음 전쟁?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