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작품을 보러 다녔다거나, 같은 작품을 배우를 달리하며 예매해 볼 만큼 열성적이진 않았다는 말이다.
사실 음악을 하겠다고 퇴사한 후, 레슨비나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도 심적인 여유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매일 똑같이 작업실로 출근해 도를 닦는 일상 속에서
자극과 영감이 고팠다. 볼만한 공연을 찾다가 두 가지를 골랐다.
뮤지컬 '그날들'과 '다시, 동물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룹 '동물원'의 음악을 맘껏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우선, 뮤지컬 '그날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줄거리는 인터넷 창에 검색하면 알 수 있겠지만,
간단히 소개하자면, 1992년 청와대 경호실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미스터리 한 이야기다.
청와대 경호원 '정학'과 그의 자유분방한 동기 '무영'이 등장한다. 한중 수교를 앞두고 이 둘은 신분을 알 수 없는 '그녀'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게 되는데, '그녀'와 '무영'이 사라진다. 2012년 한중 수교 20주년 행사에서, 경호부장이 된 '정학'은사라진 대통령 딸 '하나'와 수행 경호원 '대식'의 행방을 찾으며 20년 전 흔적들을 찾아나가게 된다.
위의 줄거리 정도만 알고 공연을 관람하러 갔는데,
무대 위에서 개인적으로 익숙한 요소들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학부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나로서는 한중 수교 기념식도 흥미로웠고, 통역대학원을 졸업한 나는 공연 초반에 '무영'이 TV화면을 보며
'저 통역사분 아름다우시다'라고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통역사라는 존재는 국가 원수들이 만나는 자리에서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화려하게 앞으로 나서기보다는 단정한 복장으로 국제적인 행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도록돕는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 미덕이기 때문. 아름다운 전제가 있었던 건 씁쓸하지만(ㅎㅎ?)통역사의 존재를 단번에 알아채준 '무영'의 이 대사와 씬이 난 좋았다.
이후, 나는 왜 '무영'이 '그녀'를 잠깐이나마 언급했는지 깨달았다.극 전반의 스토리를 이끌고 있는 '그녀'역이 바로 통역사였기 때문이었다. 국가 간의 중요한 회의가 있을 때, 이 극비를 외부에 유출해서는 안 되지만어쩔 수 없이 가장 처음 접하게 되는 사람 중에 통역사가 끼어 있게 된다.
한중 수교 전 회의에서 많은 정보를 알게 된 통역사를 정부에서는 경호하고 비밀을 누설할 수 없게 살피라고 한 것이다.
통역사는 기밀 보장에 항상 힘써야 하고, 중요한 비밀 정보를 먼저 접했다는 자부심을 갖기도 한다.하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났으면 저렇게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구나 서글펐다. 극 중 '그녀'도 목숨이 위태로워져서 사랑하는 '무영'과 함께 도망을 친 것이었으니.
다만, 직업병이라 그런가... 조금 의문이었던 점은
통역사 '그녀'의 국적이다. 내가 정보를 놓쳤을 수도 있지만...
'그녀'는 이모가 중국에 있다고 하고 편지를 주고받는다. 어머니도 돌아가셨지만처음에는 '무영'에게 중국에 계시다고 말하기도 한다. 두 경호원의 엄호를 받으며 중국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그녀'는 중국인인 것인가.
그런데 뭔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보통 두 국가의 원수가 회의를 진행하면 각 나라마다 전문 통역사가 수행하게 된다.
한국 지도자 옆에는 (중국어를 잘하는) 한국인 통역사,
중국인 지도자 옆에는 (한국어를 잘하는) 중국인 통역사가 있지 않았을까.
한국 정부는 중국인 통역사를 중국에 보내지 않고 가두어 놓은 후 없애버리려고 했던 것일까...
만약 한국인 통역사였다면 왜 중국에 있는 이모를 보러 가는 거지... 여러 가지 가설을 품으며 궁금해했지만 아직 답을 못 찾았다.
전반적으로 스토리 구성이 짜임새 있으면서도, 초반에 눈치를 빨리 채지 못하면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을 듯하다.
1부 쉬는 시간 잠깐 화장실을 갔다가, 어떤 여학생이 무슨 내용인지 헷갈린다며 친구에게 묻는 걸 들었다.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20대 청춘을 보낸 나는 뮤지컬을 보는 내내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눈물짓기도 했다.
한중합작 경력이 많으신 '장소영' 음악감독이 참여하셨다고 하는데, 편곡된 음악들이 참 좋았다.